동행명령이 위헌?···이태원 특별법 거부권 사유 따져보니
한덕수 국무총리가 30일 국무회의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 행사)을 의결하며 제시한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①동행명령,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 등 조항이 영장주의를 위배한다. ②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구성이 공정하지 않다. ③특조위 권한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④검·경 수사를 통해 진상규명은 이뤄졌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이 타당한지 사유별로 조목조목 따져봤다. 정부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전문가과 유가족은 지적했다.
동행명령이 영장주의 위배?
정부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 첫번째 이유로 영장주의 훼손을 들었다. 특조위가 조사 대상자 및 참고인에 대해 영장 없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하고 자료 제출 요구 거부를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를 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특별법은 특조위 조사에 관해 결정적 증거자료를 보유하거나 정보를 가진 사람이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이상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특조위 의결로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우선 동행명령은 강제처분이 아니다. 이태원참사 특별법은 동행명령에 불응한 사람에게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부과한다. 특조위에는 체포 등 인신을 구속할 권한이 없다. 더구나 동행명령은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과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도 동행명령권이 명시됐다. 2014년 세월호참사 특조위 구성 당시에도 여당(당시 새누리당)은 동행명령이 영장주의 위배라는 주장을 폈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 조항이 신체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별법은 이태원참사 진상규명에 필요한 자료나 물건을 가지고 있는 개인 또는 기관 등이 정당한 이유 없이 2회 이상 제출을 거부할 때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 또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처장에게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특조위는 말 그대로 검찰이나 공수처에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는 권한만 있을 뿐이다.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이 발부한다. 검찰이 범죄혐의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수 있다. 검찰이 영장을 청구해도 법원이 기각할 수 있다.
윤복남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참사대응TF 단장은 이날 서울시청 앞합동분향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행명령권이나 압수수색 영장 청구 의뢰권은 세월호 특조위나 사회적참사조사위원회(사참위) 등 유사한 조사위원회에 모두 있었던 권한”이라며 “과거 조사위들이 활동하는 동안에도 위헌성이 문제가 된 적 없다”고 말했다.
특조위 구성이 공정하지 않다?
정부는 국회가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조위원 11명이 편향적이라고 주장한다.
특별법은 대통령이 소속되거나 소속됐던 정당의 교섭단체(국민의힘)와 그 외 교섭단체(더불어민주당)가 각각 4명을,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 등과 협의해 3명을 추천하도록 했다. 이중 정부·여당이 문제 삼는 것은 국회의장이 관련 단체 등과 협의해 3명을 추천하도록 한 대목이다. 사실상 유가족단체 몫 아니냐는 주장이다.
특별법은 ‘관련 단체’를 특정하지 않았다. 국회의장과 협의해야 하므로 독립적인 유가족단체 추천권이라고도 할 수 없다. 특별법 원안에 포함됐던 유가족단체 추천 몫은 여당 반대로 본회의를 통과한 최종안에는 빠졌다.
10·29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은 특조위 위원장 추천권을 대통령 또는 자신들이 가져가겠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협상을 중단했다”며 “특조위 구성이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은 결국 대통령 마음대로 특조위원장을 임명하고 싶다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특조위 권한이 광범위하다?
정부는 특조위 권한이 광범위해 사법부와 행정부의 역할과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윤 단장은 기자회견에서 “행정부가 재난원인 조사도 실시하지 않는 등 이태원참사 전 과정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해야 되는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할을 대신 하기 위해 특조위 설치가 필요하다”며 “특조위는 사법적인 판결을 하는 기관이 아니므로 사법부의 역할을 침해한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정부·여당은 특조위가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확정된 사건, 불송치 또는 수사중지된 사건의 수사기록 등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을 독소조항이라고 봤다. 이에 대해 윤 단장은 통화에서 “특조위가 재조사를 하는 데 있어서 이 사람들은 왜 불기소했는지 그 시작점을 보겠다는 것”이라며 “조사의 편의성을 위한 것에 불과하지 특조위에 불기소했던 걸 다시 기소할 권한이 있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박했다.
여당의 반대로 ‘특별검사(특검)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 조항’도 이태원참사 특별법에서 빠졌다. 세월호참사 특별법과 사회적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에는 있는 조항이다. 이태원참사 특조위는 세월호 특조위와 사참위와 마찬가지로 고발 및 수사요청권을 갖는다.
검·경 수사로 진상규명 이뤄졌다?
정부는 경찰·검찰 수사, 국정조사, 헌법재판소 판결 등을 통해 진상규명이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특별법의 목적인 진상규명이 이미 완료됐기 때문에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유가족 지원방안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이태원참사가 발생한 지 1년3개월이 지나도록 윤 대통령이 책임을 물어 경질하거나 스스로 물러난 고위 공직자는 0명이다. 고위직에 대한 법적 처벌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참사 직후 구성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지난해 1월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혐의 처분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소환 조사 없이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로 처리됐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서는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지난 15일 기소를 권고하자, 검찰은 지난 19일에야 김 청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구청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유가족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꼬리 자르기로 끝난 경찰 특별수사본부 수사, 거짓 증언과 자료 미제출 등으로 퇴색된 국회 국정조사에서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 소재는 따져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무엇이 충분하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유가족들이 언제 재정적 지원과 배상을 요구했나. 오직 바라는 것은 진상규명이었다”며 “그럼에도 정부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묵살했다. 참담함을 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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