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이태원참사 특별법'도 거부…유가족 "분노" 野 "지독한 대통령"

박숙현 2024. 1. 30.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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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발생 459일만…대통령실 별도 입장 안 내 
정부 보상 지원안 발표했지만 여파 지속될 듯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이태원참사특별법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별도의 입장문은 내지 않았다. 2023년 12월 19일 국무회의 주재 모습. /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이태원참사특별법'(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참사 발생 459일만,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21일 만이다. 정부는 보상 및 지원 방안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희생자 유가족 측은 "보상보다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당분간 여파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3시 40분께 언론 공지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앞서 이날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해당 법안이 의결된 지 약 5시간 만이다. 특별법은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의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설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국회로 되돌아가게 된 이태원참사특별법은 재의결 요건(199명 이상)을 충족하지 못해 폐기될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이날 재가하게 된 배경 등 별도의 입장문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 9일 "여야 합의없이 또 다시 일방적으로 강행처리 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만 낸 바 있다. 또 전날(29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 행사'에 대한 취재진 질의에 "여당이 의원총회에서 낸 입장이 있고 정부에서 모인 입장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시점에 그 입장을 발표하고 관련된 정부의 후속적인 조치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했다.

대통령실 대신 한 국무총리가 나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 이유를 설명했다. 한 총리는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태원참사특별법안'이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어 정부에 이송됐다.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특별법의 특조위 권한에 "특조위는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했다. 특조위 구성에 대해서도 "위원회를 구성하는 11명의 위원을 임명하는 절차에서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을 하던 중 국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안(거부권)이 의결되자 슬퍼하고 있다. 유가족 측은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159명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윤 정부야말로 '위헌 정부'라고 비판했다. /뉴시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에 비해 정부의 거부권 행사 근거가 다소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야당은 "재난을 정쟁화한다"는 여당 반발에 따라 정부·여당 입장을 일부 반영한 수정안을 마련해 처리했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수정안은 원안에 있던 특조위의 특검법 도입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빼고, 정치적 영향을 고려해 특조위 구성 시점도 4·10 총선 이후로 명시했다. 특조위 활동기간 동안 이태원 참사 관련 범죄행위의 공소시효를 정지하도록 한 조항도 삭제했다. 또 특조위원 추천 방식도 '유가족 추천 2명'을 국회의장 추천 몫으로 돌렸고 특조위 활동 기한도 최장 1년 6개월에서 1년 3개월로 바꿨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도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특조위 구성이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은 결국 대통령 마음대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임명하고 싶다는 것 아닌가"라며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조사기구를 구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동행명령장 발부와 압수수색 의뢰 조항이 헌법 가치를 훼손한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선 "똑같은 법조항을 가지고 있는 여러 법률들이 존재함에도 마치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만 (해당 조항이) 있는 것처럼 호도한다"며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159명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윤석열 정부야말로 '위헌 정부'"라고 비판했다.

부정 여론을 의식한 듯 정부는 이날 국무총리 소속으로 '10·29 참사 피해지원위원회(가칭)'를 구성해 내실 있는 지원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피해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금과 의료비, 간병비를 확대하고,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 결과에 따라 최종 확정 전이라도 신속하게 배상과 필요한 지원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또 희생자를 기릴 수 있는 추모시설도 건립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유가족 측은 "유가족들이 언제 재정적 지원과 배상을 요구했던가. 유가족들이 오직 바라는 것은 진상규명"라며 "참담함을 넘어 이루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이어 "10.29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야당도 윤 대통령의 잇따른 거부권 행사를 조준사격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취임 후 개별 법안으로는 9번째다. 특히 최근에는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까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가족 감싸기' 공세에도 휩싸였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아내의 범죄 의혹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으로 부족해서 사회적 참사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민의를 거부하는 수단으로 삼다니 참 지독한 대통령"이라며 "재난을 막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의 이 같은 기본책무를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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