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 난임 지원 두고 "터무니없다" vs "의사 패권주의" 醫·韓 갈등

박정렬 기자 2024. 1. 3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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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한방 난임 치료 지원을 골자로 한 모자보건법 일부개정 법률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두고 의료계와 한의학계의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에 국민의 혈세를 투입하는 것은 되려 산모와 태아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며 공개적인 검증과 평가를 요청한다. 반면 한의학계는 오랜 시간에 걸쳐 효과가 검증됐고 국민 90% 이상이 찬성한 법안이라는 점을 들어 '의사 패권주의'를 내려놓고 자성하라며 맞대응하고 있다.

30일 국회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난임 극복 지원사업'에 한방 난임 치료비 지원을 포함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의약 난임 치료에 관한 기준을 정해 고시할 수 있도록 한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이 지난 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존에도 인천 등 일부 지자체가 조례를 통해 한방 난임 치료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이를 전국적으로 시행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미 다수의 난임부부가 한방 난임 치료를 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가적인 지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한방 난임 치료 지원법 통과로 난임부부의 다양한 치료 선택권이 보장되고, 경제적인 부담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의료계 입장 "터무니없다" 외국 학자도 조롱해
하지만 한방 난임 치료 확대를 눈앞에 두고 의료계는 불안과 우려가 팽배하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산부인과학회가 30일 의협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한방 난임 치료 지원법 반대'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하나 같이"한 방 난임 치료는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산부인과학회가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지 않은 한방난임치료지원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교웅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 이정근 대한의사협회 상근부회장, 최영식 연세대 의과대학 산부인과학교실 교수, 이중엽 함춘여성의원 원장. 2024.1.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날 대한산부인과학회를 대표해 참석한 최영식 연세대 의과대학 산부인과학교실 교수는 앞서 2019년 보건복지부가 한방 난임 치료의 근거 확보를 위해 동국대일산한방병원, 강동경희대병원, 원광대광주한방병원에 의뢰해 진행한 연구 결과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해당 연구는 20~44세 여성 100명(실제 참여는 9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7주기(7개월)간 총 13명이 임신해 임신율은 14.4%, 이 중 7명이 출산해 출산율은 7.8%로 보고됐다.

최 교수는 이 연구의 문제점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대조군이 없다는 점이다. 한방 치료받은 난임 환자를 '실험군'으로 두면 효과 비교를 위해 자연임신을 시도하는 난임 환자를 '대조군'으로 둬야 하는데 연구 설계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영국의 의료통계학자 잭 윌킨슨은 해당 연구에 대한 학술지 등재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과학이 아니고, 임상 연구가 아니며, 터무니없다"고 자신의 SNS를 통해 '공개 저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교수는 "해당 연구가 얼마나 비상식이고 의미 없는 결과인지 보여주는 것"이라 꼬집었다.

둘째, 치료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이다. 한방 난임 치료를 통한 임신율은 단순 계산 시 1주기(1개월)당 2%로 1년 이상 원인불명 난임으로 진단된 부부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자연임신율(1주기당 2~4%)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절반에 가까운 6명이 유산한 것은 일반적인 임신 후 유산율에 비해 상당히 높은 결과라는 게 학회의 분석이다. 최 교수는 "한방 난임 치료가 유산의 위험을 높임으로써 산모와 태아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약재가 포함한 성분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고 납, 수은, 비소 등 중금속 오염도 보고돼 미국의학협회지(JAMA)에서도 사용 주의를 권고한다. 성급한 지원에 앞서 객관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먼저"라며 한방 난임 지원에 관한 법률안 철회를 요구했다.
자연임신과 임신율 비슷…유산 위험은 더 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김교웅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도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그 역시 동일한 연구를 거론하며 "참여자들은 평균 30대 초반으로 유산 위험이 높은 연령이 아니었다"며 "대조군이 없어 한약의 효과나 유산 위험을 평가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한약 복용 후 3개월 이내에 모든 유산 사례가 집중된 점을 들어 한약의 유해 성분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사진=박정렬 기자


학회를 대표해 참석한 이중엽 함춘여성의원 원장 역시 "보통 임신 후 8주~10주 사이가 위험한 시기인데, 이때 약을 먹고 유산 위험이 높다면 둘 사이에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의심할 수 있는 것"이라며 "안전성이 우려될 때는 일단 멈추고 확인을 하는 게 먼저다. 의학적인 근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법으로 이를 밀어붙이는 것은 국민 안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은 국회와 보건복지부에 객관적인 자료 제공을 요청하는 한편 향후 각 지자체장과 의장들을 만나 한방 난임 치료의 위험성을 알리고 지원 확산을 제지하도록 설득할 예정이다. 최 교수는 "난임 부부가 한방 치료 지원을 받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에 더 많이 선택할 수도 있다"며 "난임으로 힘들어하는 부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악용해 유효성이 부족하고, 되려 모체와 태아에 대한 안전성에 위협이 의심되는 분야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정근 의협 상근부회장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됐어도 의사는 정확한 의료 정보를 전달한 의무가 있다"며 "성분도 모르고 정확한 근거도 없는 한방 난임 치료가 안착하지 않도록 강경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 밝혔다.
한의학계 "수십 년간 효과 검증, 유연한 사고 필요"
이에 대해 같은 날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입장문을 내고 "국회의 입법 활동마저도 방해하고 비난하는 것은 의사만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안하무인의 '의사 패권주의'"라며 "한의약 난임 치료를 폄훼하기 전에 국정감사에서도 문제가 된 임신 성공률 0% 의료기관들에 대해 자성하고 반성하는 기회를 가지기 바란다"고 응수했다.


입장문에서 한의협은 "한의약 난임 치료는 10여 년이 넘게 지자체의 수많은 사업을 통해 검증됐다"며 "난임부부 역시 96.8% 응답률로 정부 차원의 한의 난임 치료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한의협은 "합계 출산율 0.7명대가 붕괴 직전에 놓인 상황에서 극단적 직역 이기주의의 행태로 딴지를 놓고 방해하는 일부 양의사단체의 행태는 국민의 아픔과 대한민국의 미래마저도 오직 자신의 눈앞에 놓인 밥그릇으로만 보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시선"이라며 "풍전등화에 놓인 대한민국 출산율 반등을 위해서라도 양의계는 전향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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