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빌렸다” ‘돈’에 무지한 청년들[미래를 저당잡힌 청년들④]
불법사금융 등 노출…채무 불이행 위험↑
각종 기관서 ‘금융교육’ 프로그램 지속 추진에도
“의무교육에 실용적인 ‘금융’ 과목 포함돼야”
‘빚의 무게’에 짓눌린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줄어들던 청년 신용불량자(채무 불이행자)의 수는 최근 1년 새 다시 늘었다. 빚을 진 이유는 다양하다. 취업을 하지 못해서, 가족 부양을 위해. 물론 잘못된 투자나 도박으로 돈을 허비한 경우도 있다. 문제는 감당하기 힘든 빚을 떠안은 청년 다수가 다시 일어서고 싶어도 일어나는 법을 찾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갚을 수 있을 만큼 빌리고 성실히 상환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것’ 또한 우리 사회의 의무다. 물의 깊이를 알았는지, 빠질 가능성을 고려했는지를 묻는 건 사람을 살린 후의 일이다. 또한 이들이 물에 빠지도록 내버려둔 허술한 경고문도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청년 신용불량자들을 직접 만나 들었다. 빚을 내 감당이 어려워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시절 진 빚의 굴레에서 나오지 못한 중장년도 이야기를 보탰다. 그들은 입 모아 말했다. “지금의 청년들을 내버려 두지 말아 달라”고. 이제 다같이 빚 부담에 허덕이는 청년들을 일으켜세우는 법을 고민할 때다.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 대학생 권모(26) 씨는 2년 전 생활자금 부족으로 처음 대출을 받았다. 당시 그는 검색 포털에 ‘대출’을 검색했고, ‘무직자·대학생도 500만원까지 대출 가능하다’는 한 대부업체의 광고 문구에 혹해 개인정보를 입력했다. 대부업자는 법정최고금리(20%)를 훌쩍 넘는 이자를 제시하며 “학생이 돈을 빌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지금 진행하지 않으면 기회는 없다”고 말했다.
이후 권씨는 이자를 납부하기 위해, 여타 저축은행 등에서 추가로 소액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연체가 지속되며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그는 “지금이 아니면 대출이 안된다는 말에 초조해져 금리도 잘 모른 채 잘못된 선택을 했다”며 “추후 채무조정 상담을 받으면서 한국장학재단 생활비대출이나 햇살론 등 대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층의 채무 상황 악화 추세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기본적인 금융지식의 부재가 청년들을 ‘빚의 늪’으로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지’에 따른 대출상품 오선택 및 채무 불이행 사태, 지속적인 불법사금융 피해 등을 예방하기 위해 의무 금융교육이 도입돼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르는 이유다.
30일 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만 18~79세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20대(만18~29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5.8점(100점 만점)으로 타 연령대 평균(66.5점)과 비교해 0.7점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평균에 비해 점수가 낮은 연령대는 20대를 비롯해, 60대와 70대뿐이었다.
특히 20대는 금융지식 점수(74.9점)에서 30~50대 평균(78.2점)과 비교해 낮은 이해력을 보였다. 금융지식은 소비자가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를 비교하며, 적절한 정보에 입각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기본지식을 의미한다. 대출 등 상품을 적절히 선택하는 능력이 타 경제활동인구 연령대에 비해 부족하다는 얘기다.
실제 본지가 만난 채무 불이행 청년들은 대부분 채무 상황이 악화된 주요인 중 하나로 ‘부족한 금융 경험 및 지식’을 꼽았다. 총 3700만원의 2금융권 채무를 보유한 이모(29)씨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첫 대출을 카드론에서 받았지만, 신용점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이후 채무 상담을 진행하면서 정부 대출 등 안전한 상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동안 불법사금융에 시달렸던 강모(29) 씨 또한 “금융거래 등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으니, 1금융권과 2금융권의 차이가 뭔지도 알지 못했다”며 “결국 금융사 대출 연체가 시작됐을 때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정보를 찾게 됐고, 불법사금융을 이용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정부 또한 이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각종 금융교육 강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금융교육협의회에서 ‘2030 청년 금융교육 강화방안’으로 ▷전 금융권 공동 금융기초체력 키우기 캠페인 시행 ▷필요 시점에 맞춘 교육 프로그램 제공 ▷소득수준에 따른 단계별 맞춤형 금융교육 및 청년 재무상담 등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1사1교 금융교육’, ‘중학교 자유학기제 금융교육’ 등 프로그램과 함께 불법사금융, 금융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교육 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밖에도 은행 등 민간 금융사에서는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어린이·청소년·고령층 등 취약계층에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기관이나 금융사에서 진행하는 금융교육 프로그램은 대다수가 일회성이다. 또한 단체 및 개인의 자발적인 참여 의사가 없을 시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다수다. 의무교육 과정에 금융교육을 추가해, 본격적인 경제활동에 돌입하기 전에 관련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교육부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사회과 융합선택 과목을 신설해, 2025년 고등학교 1학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금융’을 주제로 한 과목 신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융합선택 과목의 경우 수학능력시험과 직결되지 않는 과목으로, 학교 측의 선호도가 떨어져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재근 한국금융교육학회 이사(대구교대 교수)는 “개정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고등학교에 금융 관련 과목이 들어왔지만, 선택과목이다 보니 사실상 현장에서 많이 선택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교육과정이 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다 보니, 개설이 의무화 되거나 적절한 수업시수를 보장받아야 해당 과목의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일찍이 금융 관련 과목을 의무 교육과정에 포함한 사례가 많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주요국의 금융교육 현황 및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2012년 금융교육 전담기구를 출범한 뒤, 2014년 학교 교과에 금융교육을 포함시키고 의무화했다. 특히 영국의 모든 공립 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에 금융을 포함해,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2017년에는 경제교육을 초·중등 과정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싱가포르는 2003년 금융교육 총괄기구인 금융교육운영위원회(FESC)를 설치하고, 전 국민 대상 금융프로그램 머니센스(MoneySENSE)를 개발했다. 2014년에는 중·고등 교육과정의 가정경제 과목을 ‘식품 및 소비자교육’으로 바꾸고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이를 통해 금융자산관리와 소비자권리 및 책임 등 실용성을 중심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김보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정부 또한 금융교육 지원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금융교육 전략추진 주체인 금융교육협의회를 설치하는 등 동력을 확보했다”면서도 “학교에서의 절대적인 교육시간이 부족하고 금융교육 의무화가 되지 않아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w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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