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근절’ 공천, ‘이재명 민주당’에서 가능할까 [아침햇발]

강희철 기자 2024. 1. 30. 16: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관련 1심 12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희철│논설위원

“보스 중심의 독과점 체제를 보장하고 있는 한국의 정당 지배구조는 유권자의 선호와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계속 공천을 주어 유권자에게 원하지 않는 선택지를 강요하고 있다.”

정당의 ‘보스’ 마음대로 “무능·부패·반인권·부적격자”인 ‘그들’에게 공천 주는 건 민심 역행이다, 그런 공천 못 하게 압력 넣고(낙천), 기어이 출마시키면 표로 심판하자(낙선)는 시민운동은 정당하다. 이런 내용의 칼럼―‘낙선운동은 시민의 권리다’―을 2000년 4·13 총선 전 한 일간지에 기고한 정치학 교수가 있었다.

그 교수가 얼마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한테서 ‘공천관리위원장’ 임명장을 받았다. “공천 관리의 전권을 부여받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세계적 석학”이라고 소개된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다. 민주당 내 ‘비명’ 쪽이 “이재명의 사람”이라고 했으나, 근거는 못 댔다.

다만, 그의 최근 언행이 24년 전과 달라진 건 사실이다. 민주당엔 금품수수 또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 중인 의원이 많다. 그 사람들 공천심사를 어떻게 할 거냐고 기자들이 묻자 답변이 이랬다. “대법원 유죄 판결 전까지는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 덕분에 노웅래·기동민·이수진(비례)·황운하·한병도 의원 등이 공천 기준 합격 도장을 받았다.

24년 전에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다. 민주당 김상현 전 의원이다. ‘한보 사건’으로 1심에서 유죄였다가 2심에서 뒤집혔다. 지금 임 위원장식 잣대라면 공천 적격이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지목한 김 전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됐고, 당시 임 교수는 이를 지지·옹호한 셈이다. 헌법의 무죄추정 원칙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달라진 건 임 교수가 ‘이재명 민주당’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위촉됐다는 사실뿐이다.

일반 공무원은 금품 관련 비위로 수사만 받아도 직위해제를 당한다.(국가공무원법) 무죄추정은 언감생심이다. 기소되면 최고 파면 등 별도 징계가 기다린다. 같은 공직자인데 왜 민주당 국회의원은 예외인가. 이런 게 특권 아닌가. 민주당 공천으로 배지 달았다가 나중에 유죄가 확정되면 선거 다시 치러야 한다. 그 막대한 비용은 민주당이 부담하나.

그런데 임 위원장이 무죄추정의 예외로 든 것이 있다. 이른바 ‘5대 범죄’다. 성범죄, 음주운전, 직장 갑질, 학교 폭력, 증오 발언 연루자는 자체 조사만으로 공천 탈락시키겠다고 밝혔다. 금품수수 같은 부패 범죄는 죄질이 덜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죄명 따라 기준이 왜 제각각인지 설명이 없다.

사실 이 모든 일은 이 대표로 인해 벌어지고 있다. 그 당이 공개한 ‘총선 예비후보 검증 통과자 89명 명단’을 보면, 보인다. 이 대표는 각종 부패 혐의로 여러건 기소됐지만, 5대 범죄는 해당이 없다. 그런 이재명이 민주당 도덕성의 절대 기준이자 공천 룰이 된 것이다. 그에 맞춰 지난해 5월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도 출마에 지장이 없게끔 당규를 손질했다. 부정부패는 ‘예외 없는 부적격’ 대상(총선 특별당규)에서 빠졌고, 최고위원회의가 의결하면 부적격 심사조차 면제된다. 최고위 의사봉은 이 대표가 두드린다.

이러는 게 총선에서 유리할까. ‘가장 중요한 공천 기준’을 국민에게 물었더니 1순위가 ‘부패 근절’로 나타났다고 민주당이 지난 29일 밝혔다. 공천심사 첫 단계부터 ‘빨간불’이다. 이미 다수 국민은 ‘청렴하고 도덕적인 사람’을 국회의원 선택 기준 1번으로 꼽았다.(갤럽·12일치) 도덕성은 민주당 자체 조사에서 최하 점수를 받은 항목이기도 하다. 대선 패배 원인을 광범위하게 조사·분석한 ‘새로고침 보고서’에 나온다. “민주당은 도덕성에서 다른 정당과의 차별성을 논할 만한 상황에 있지 않다.”

일주일에 두세차례씩 재판정을 드나드는 이 대표의 모습도 도덕적 우위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많은 경우 실재보다도 이미지에 더욱 좌우된다.”(마키아벨리) 바로 그 지점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연일 때리고 있다. 이 대표라는 약한 고리를 타격해 민주당 전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찍으려는 시도다. 이런 상황을 이 대표는 직시하지 않는다. 성찰도 혁신도 없이 그저 큰소리만 칠 뿐이다. “(원내) 1당, 151석, 반드시 과반.”

그런 이 대표를 임 위원장이 거들기로 한 모양이다. 정치권 보스의 일방적 공천을 준열히 비판했던 24년 전 정치학자 임혁백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hckan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