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정부는 없다”…‘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절규
3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보라색 목도리를 두른 이태원 참사 유가족 10여명이 둘러앉았다. 이날 국무회의에 상정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 재의요구권(거부권) 의결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전날부터 거부권 행사를 점치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지만 유가족들은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며 서로를 다독였다.
고 신애진씨 어머니 김남희씨는 “늘 아침에 집을 나선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일상을 산다. 대한민국 국민 중 누구도 나와 같은 불안을 품고 살아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고 김의진씨 어머니 임현주씨도 “459일째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몸부림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희생당한 아이들의 진상규명이고 그 외에는 어떤 것도 필요 없다”고 했다. 고 진세은씨 아버지 진정호씨는 “내 아이가 몇 시에 어디 있었는지 알고 싶은데 밝혀진 건 ‘군중유체화’로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 뿐”이라며 “대통령은 이전에 ‘(특검은) 거부한 자가 범인’이라고 말한 적 있다. 잘못한 게 없다면 떳떳할 텐데 왜 거부권을 행사하나”라고 했다.
이날 오전 10시40분쯤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는 소식을 접한 유가족들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한 유가족은 “이게 나라고 대통령이냐. 우리를 죽이고…”라며 흐느꼈다. 일부 유가족은 정부서울청사 정문을 두드리며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라고 외쳤다. 이들을 정문에서 떼어내려는 경찰과 유가족이 뒤엉켜 20여분간 소란이 일었다. ‘거부권을 거부한다’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이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무회의의 재의요구안 의결을 재가했다.
이정민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이다. 우리가 1년 동안 부탁하고, 호소하고, 애원했다. 그런데 오늘 거부권으로 정부는 유가족을 두 번 죽였다”면서 “정부는 우리를 국민으로 여기지 않았고, 우리도 오늘부터 이 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정부가 내놓은 피해자 종합 대책을 두고 “교묘하게 프레임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참사 초기 ‘가족 팔아 돈 벌려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들으며 가슴을 움켜잡았다. 정부는 또다시 참사의 프레임을 진상규명에서 배·보상으로 바꾸려 한다”면서 “당장 정부 발표에 댓글부대가 앞장서 반응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유가족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는 꼴”이라고 했다. 오지민씨 아버지 오일석씨는 “정부는 그간 유가족과 한 번도 면담한 적이 없다. 배·보상도 지금까지 관심이 없다가 총선을 앞두고 궁여지책으로 꺼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했다.
오씨는 “여당과 협상 과정에서 강제조사권과 피해자의 범위를 줄였다. 국회의장 중재로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유가족 추천 위원도 빼고 여당이 해달라는 데로 다 해줬다”면서 “여당·정부에 특조위원장 자리 결정권을 주지 않았다고 ‘특조위 구성이 편향적’이라는 건 적반하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거부권 행사 근거를 반박했다. 유가족들은 입장문에서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내놓은 공식 설명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면서 “이미 똑같은 법 조항을 가진 법률이 다수 존재함에도 동행 명령장 발부와 압수수색 의뢰조항이 특별법에만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건 헌법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조위가 사법부·행정부의 권한을 침범한다고 주장하면서 어떻게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정부가 피해지원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한 것을 두고는 “거부권 행사를 위한 수단으로 끌고 나온 것이다. 우리와 한 차례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언론을 통해 뭔가를 해줄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한 줌의 진정성도 없다”면서 “특별법과 특조위 아닌 것은 어떤 것도 논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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