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이태원특별법 재의요구안 재가…취임 후 9개 법안 거부권[종합2보]

2024. 1. 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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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송 11일 만에 거부권 결정…국무회의 의결
“헌법 원칙 훼손…재난관리시스템 운영 차질 공산”
국무총리 직속 피해자지원委 설치…배상 확대 대책
유가족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野, 유가족 면담
與 “재협상 응하고 독소조항 제거되면 합의 처리”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제2테크노밸리기업지원허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일곱번째, 상생의 디지털, 국민권익 보호'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태원특별법)에 대한 재의(再議)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 19일 정부로 법안이 이송된 지 11일 만이며, 윤 대통령 취임 후 9건의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로 기록된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후 3시45분 출입기자단에 “윤석열 대통령은 오늘 오전 국무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10·29 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안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고 공지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이태원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상정·의결했다. 한 총리는 “이번 법안에 따라 특별조사위는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이는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한 총리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11명의 위원을 임명하는 절차에서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상당하다”며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이번 특별법안을 그대로 공포해야 하는지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무회의 의결 직후 국무조정실은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이 거부권 재의 요구 이유와 배상·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법안의 주목적인 참사의 진상 규명이 그동안 검경 수사와 국정조사, 헌재 탄핵심판선고 등을 거치며 정상적으로 진행돼 왔다”며 “국회예산처는 앞으로 2년간 특조위 인건비로만 96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면서 일선 재난관리시스템 운영에도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10·29 참사 피해지원 위원회’를 설치하고, 유가족과 협의해 10·29 참사 피해지원 종합대책을 수립하기로 했다.

피해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금과 의료비, 간병비 등을 확대하겠다고, 진행 중인 민형사 재판 결과에 따라 최종 확정 전이라도 신속하게 배상과 필요한 지원을 실시한다. 참사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근로자에 대한 치유휴직도 지원하며, 유가족과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여 희생자들을 기릴 수 있는 추모시설도 건립한다.

방 실장은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일관되게 정쟁 대신 실질을 지향해왔다. 그것이 정부의 변치 않는 충심”이라며 “이제 정부는 더욱 낮은 자세로 더욱 치열하게 같은 목표를 추구해 나가려 한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정부·여당의 거부권 결정에 반발해 왔다. 유족들은 지난 18일 삭발투쟁을 시작으로 삼보일배, 특별법 공포 촉구대회를 열었고, 29일에는 이태원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1만5900번의 오체투지 삼보일배를 하며 특별법 공포를 호소했다.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 모인 유가족들은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이 의결에 항의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정권이다. 우리가 1년 동안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만들어달라고) 원하고 호소하고 사정했다”며 “우리를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정부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발해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를 무력화했다며 비판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면담했다. 홍 원내대표는 회의에서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아내의 범죄 의혹을 덮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대통령이 참사의 진실마저 가로막는다면, 최소한의 인간성과 도덕성도 없음을 만천하게 공표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미 국회에 재의요구된 쌍특검법과 함께 이태원특별법까지 묶어 설 연휴 이후에 재표결을 하는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정치’에 대한 비판 여론을 4월 총선 이슈로 이어가면서 여당의 공천 과정에서 발생할 이탈표를 계산하고 있다. 헌법과 국회법상 대통령의 재의요구를 받은 법안에 대한 재표결 시점에 기한은 없다. 재표결에서 재적 의원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 의원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재의결은 무기명 투표로 치러진다.

이에 대해 여당은 내달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개정안과 쌍특검법 재표결을 의결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이태원특별법에 대해 “민주당이 재협상에 응하면 공정성이 담보되고 전례에 없던 독소조항들이 제거된다면 여야 간에 합의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 5월 간호법 제정안, 12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른바 ‘노란봉투법’)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상 ‘방송 3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올해에는 지난 5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별검사법(이상 ‘쌍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silverpap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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