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 연출한 허명행 감독 "서사 빈약하다는 평, 호불호 반응에 공감" [인터뷰M]
넷플릭스 영화 '황야'를 연출한 허명행 감독을 만났다. 그동안 '범죄도시'시리즈, '유령', '헌트', '부산행' 등의 작품에서 무술 감독을 맡으며 한국 영화 역사에서 여러 레전드 액션신을 탄생시켜 온 허명행 감독은 이번에 '황야'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작품 공개 이후 글로벌 1위에 오르는 등 전 세계적인 흥행을 하고 있지만 시청자 중에서는 빈약한 서사가 아쉽다는 평도 많이 받고 있는 중이다. 이런 반응을 알고 있다는 허명행 감독은 "주변에서 '욕 많이 먹고 있더라'는 말도 해주고 한편으로는 재미있게 잘 봤다는 말도 해주더라. 하지만 마동석 배우의 청불 액션을 전 세계 시청자에게 선보일 수 있어서 기분이 좋고 1위를 했다니 신난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허명행 감독은 '황야'의 매력을 '마동석의 청불액션'으로 꼽았다. "개인적으로 마동석은 성품도 너무 좋고 영화 캐릭터로도 장점이 많은 배우다. 액션도 강하면서 개그코드도 갖고 있고 부드러운 배우가 어디 흔하겠나. 이런 독보적인 면을 글로벌 시청자들도 공감해 준 거라 생각한다."며 마동석이 가진 인간적, 배우적 매력을 영화에 담아내려 했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며 "그동안 마동석이 청불 영화에 출연을 했었지만 마동석의 액션 때문에 청불이었던 건 아니다. '범죄도시' 시리즈에서의 마석도의 액션은 모두 제압용이고 방어용. 상대를 죽이는 액션은 아니었고 빌런들의 액션 때문에 청불 판정을 받았던 것. 하지만 이번 '황야'에서는 마동석의 거침없는 액션 자체가 청불"이라며 '청불액션'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영화에 대해 호불보가 많이 갈리고 서사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는 평을 공감한다는 허명행 감독은 "처음부터 액션 영화를 만들려고 기획했다. 그런 장르물은 러닝타임이 1시간 50분을 넘기면 지루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1시간 45분으로 끝내려 했다. 그러다 보니 양기수의 상황, 남산과의 관계, 은호와 군인들의 이야기들은 덜어내야 했다. 서사가 아쉽지만 덜어내더라도 액션에 중점을 두고 러닝타임을 맞추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라며 빈약한 서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며 "서사 아쉽다는 건 공감하고 죄송하기도 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작품 속 양기수가 어떤 신인류를 만들고자 했는지, 악어와 뱀 혀를 가진 사람들은 왜 등장했는지는 이날 인터뷰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허명행 감독은 "초반에 도마뱀이 나오는데 그 형태가 기이하다. 발이 잘렸는데도 걸어 다니는 등 파충류의 분위기는 전반에 깔려 있다. 파충류들이 겨울잠을 자고 악어는 꽤 오랫동안 식량을 먹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양기수 박사는 파충류에 가까워야지만 지진으로 인해 사막화가 된 세상에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그가 했던 많은 실험에서 실패한 게 지하 감옥의 뱀 인간들이었다. 반면 파충류 인간의 끝판왕이 권상사의 모습인 것"이라며 왜 권상사가 쥐를 먹는지, 왜 신인류라는 주장을 한 건지, 양기수의 실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영화가 아닌 말로 풀어냈다.
이날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나온 황궁아파트 세트와 얽힌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다. 허명행 감독은 "한 부모 밑에 두 자식이 있는데 그 자식들이 모두 성격과 외모가 다른 것처럼 이 기획 자체가 한 장소이지만 두 영화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됐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적인 정서로 휴머니즘을 보여줬다면 우리 영화는 장소는 같은데 다른 이야기, 다른 구조, 다른 설정을 보여준다. 그래서 같은 세계관이라 볼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두 영화는 지진으로 지구에 재앙이 닥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상에 유일하게 멀쩡한 건물인 아파트가 남아 있고 살아남은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 동일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허명행 감독은 세계관이 같지 않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했다.
무려 120편이 넘는 영화에 참여하며 무술감독으로 명성을 쌓아온 그가 왜 연출을 하게 된 걸까? 그는 "정두홍 감독과 스턴트 사업 말고 영화 제작 사업에 대한 꿈도 꾸고 있었고 준비한 지 10년이나 되었다. 시나리오도 개발하며 여러 훈련을 해 왔다. 무술감독이지만 편집도 잘하고 손도 빠르다. 다른 영화에 참여하면서 액션 장면의 현장 편집본이 3시간가량 나오도록 찍는데 결국 영화에 쓰이는 건 1시간 남짓인 게 많았다. 그런 걸 보며 나는 좀 더 효율적으로, 진짜 쓸 만큼만 촬영하는 것에 대한 감각과 능력을 키웠다. 나는 보고 싶은 방향만 정확하게 찍는 훈련이 되어 있다"라며 오랫동안 영화감독으로의 준비를 해 왔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마동석이 연출 제안을 해 와 이번 작품을 하게 되었다는 것. "배우를 할 때도 마동석은 아이디어가 많고 상황적으로도 유연한 사람인데 이번에도 저를 전적으로 믿어줬다. 제작자로 만나도 태도가 전혀 바뀌는 게 없더라"며 마동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눈에 띄는 훌륭한 액션을 선보인 안지혜에 대해서도 "대체 불가할 정도. 마셜아트에 있어서 그 높은 난도를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안지혜 밖에 없다."라고 칭찬을 했다.
액션 잘하기로 소문난 이준영에 대해서는 "원래 액션도 연기도 잘해 요즘 정말 많은 작품에서 찾는 배우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이준영의 귀엽고 해맑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너무 순수하고 귀여운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잘하는 액션을 많이 안 보여준 것에 대해서는 아쉽지 않다"며 배우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황야'를 보고 난 뒤 '범죄도시'3.5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마동석, 마동석 식 액션이 너무 뻔했고 너무 초강력이기에 긴장감이 없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허명행 감독은 "아파트를 차로 뚫고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는 게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다. 이후부터 거침없이 쭉쭉 간다는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끝까지 한숨에 몰고 가는 쾌감을 원했기에 주인공이 빌런들에게 위협을 받거나 혹시나 질까 봐 조마조마해지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황야'의 목적은 시원하게 깨부수는 것"이었다며 작품의 의도에 맞는 연출이었음을 설명했다.
허명행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서사가 진짜 중요한걸 나도 알고 있기에 이번 영화에서 그 부분은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한 대로 목표지점까지 끌고 가 마쳤다는 건 잘한 것 같다. 지구 저 멀리에 있는 분에게 K-액션무비스타 마동석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꽤 시원하고 재미있다는 평을 받은 건 다행"이라며 첫 연출작의 아쉬운 점과 칭찬할만한 점을 언급했다. 그러며 또 연출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계속할 것. 액션 말고 다른 장르는 고민을 안 해 봤는데 아무래도 액션이 아예 안 들어간 장르는 힘들지 않겠냐"라며 액션 장르에 특화된 연출에 뜻이 있음을 짐작케 했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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