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되는 인문학 구하자”··· 소통과 연대, 자성의 한국현대문학자 대회

김종목 기자 2024. 1. 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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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재난과 한국 사회의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 인문학 학술장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5~26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 중 나온 ‘한국현대문학자 공동선언’ 한 구절이다.

가장 최근의 학술장 붕괴 사례는 정부가 무전공 입학 확대를 대학 재정지원과 연동하려는 일이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신입생 선발부터 수도권 대학은 모집정원의 20%, 국립대는 25%를 전공 구분 없이 모집하는 대학에만 대학혁신지원사업·국립대학육성사업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했다.


☞ ‘대학 무전공 확대’ 교육부 방침 논란 가열···교수단체들 “학문생태계 위협”
     https://m.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401231533001

공동선언은 이렇게 이어진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학생의 급감,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심화, 산업적 수요를 내세운 사회적·정책적 홀대 및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한 학과 폐지 등 인문학 연구와 교육은 근본적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문학 연구 및 교육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현대문학자들도 “진리 탐구와 자유의 실현이라는 학술의 내재적·사회적 가치 추구에 전력을 다하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각자도생 중”이다.

커먼즈(commons, 공유자원)로서 학술 장을 추구한 대회는 ‘한국 현대문학의 새로운 의제와 미래’, ‘한국학이란 何(하)오’ 등 3개 학술 세션을 진행했다. 비정규직 강사인 이봉범(고려대 국어국문학과)이 대회 제2세션 ‘현대문학자의 위치와 연구자의 지리: 연구, 실천, 행위’에서 발표한 ‘나는 누구이며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에 위기와 각자도생 상황이 잘 나온다. 이봉범은 문학 연구가 사회 변혁 운동의 일환이라고 여긴 1990년대 대학원 시절부터 “논문(쓰는) 기계, 기획서(쓰기) 노예란 자조가 과장만은 아닌” 연구자의 일상을 이야기한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원들이 2020년 1월 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사랑채 앞에서 강사 고용 안정을 위한 정부 재정 확대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그가 보기에 ‘대학(국문과 학부·대학원, 부설연구기관 등)-학회-연구자’의 유기적 관계망으로 구성된 연구공동체는 “위기를 넘어 사회문화적 토대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는 징후가 역력”하다.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아니면 적어도 현재의 입지조차 유지할 수 있는 방법적 대안이 없다는 의견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봉범은 “대다수 주체가 약자임을 고백·자처하며 무력감에 탄식한다. 자기 위치를 보존하는 데 급급한 모습도 없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 같은 사태를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위기감과 동반 상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미 지역 여러 대학 국문학과의 상당수가 폐과되거나 통합됐다. 앞서 ‘사건’으로 거론된 무전공 입학 추진 방안도 붕괴의 ‘역력한 징후’다.

이봉범은 한국연구재단이 한국학술의 양적·질적 확대와 발전을 이룬 점과 재단의 학술(지원) 정책이 연구자 개개인의 지속 가능한 연구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기반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발휘하는 장치”라는 점을 지적한다. “자발적 참여이든 동원이든 모든 연구자는 주기적으로 연구재단 지원 사업의 수혜를 받기 위해 발버둥치고 그 결과가 연구 활동 전반을 좌우하는 형편이다. 취업이 안 돼 더 가난한 연구자들에게는 연구의 생명력을 위협할 정도다. 수혜를 받지 못하면 모멸감, 자괴감, 박탈감 등으로 신음한다. 이를 위무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연구공동체 모두가 “조삼모사식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무제한적 내부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라고도 했다. 등재(후보)학술지가 아니면 학술지로서 존립이 불가능한 현실을 두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등록제도 및 납본제도를 통해 미디어, 문예, 학술 등을 직·간접적으로 통할했던 방식이 자꾸 연상”된다고도 했다.

학술대회도 그 수가 줄고, 열기도 식었다. 발표자(토론자) 외의 지적 호기심을 지닌 단순 참가자도 찾기 힘들다. 학회지 논문 투고는 극히 저조해 기한 (재)연장이 빈번하다고 한다. “학술지의 난립과 부실화, 논문의 총량적 비대화/질적 저하의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상황”이다. “국내외 학술지에 자신이 쓴 논문을 실을 때 돈을 내야 하고 (대학 도서관의 전자저널 등을) 구독하면서도 돈을 내는 이중 지불구조”도 연구 생태계를 좀 먹는다.

이봉범은 자신을 두고 “그저 학회를 매개로 지속 가능한 연구를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기대하고 또 그 바탕 위에서 나의 연구가 인문학의 발전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희구하는 이 시대의 약자이자 서생”이라고 했다.

한 개인의 극한 사례가 아니다. 수도권과 지역, 신진 연구자와 중견 연구자, 대학원생과 정규직 교수가 대회 한자리에 모인 건 위기에 대한 공감과 극복 의지 때문이다. 158명이 대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학회·연구자단체 23개가 공동 주최한 대회엔 이틀간 230명이 참석했다.

제1회 한국현대문학자대회 참가자들이 대회 2일차인 26일 성균관대학교 경영관 라이브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조직위원회 제공

대회 조직위원장인 정종현(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은 “한국의 인문학 분야에서 연구자의 숫자라는 양적 측면에서나 한국 인문학 학술의 의제를 제시하고 선도해 온 질적 측면에서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던 한국 현대문학 연구자들이 개별 학회를 넘어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자율적으로 23개 학회와 단체를 중심으로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기금도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냈다고 한다.

대회와 선언문의 핵심은 ‘연대와 소통’이다. “고립적 각자도생” 극복을 위해 국적, 지역, 세대, 젠더, 직위의 차이를 넘어서 상호존중에 기반한 연구자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기로 했다. 대학과 학회를 비롯한 학술 지식 생산 및 유통체계 정비와 제도 혁신도 약속했다. 연구윤리 엄수와 지식의 공공성 지향이라는 책무도 넣었다.

이 대회의 각별한 의미는 하나 더 있다. “그동안 신진연구자에게 부과되었던 그림자 노동을 최소화하기 위해, 참여 연구자들의 공동 책임과 노동 분담을 지향”한 것이다. 학술 대회 내용은 이 대회와 선언문에 담긴 현대문학 연구자들이 어떤 문학, 어떤 세상을 지향하는지에 닿아 있다. 바로 문학 속 장애, 돌봄, 커먼즈, 기후위기 등을 논의했다.

정종현은 “한국의 학술과 대학 교육의 위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며 타개책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건 커다란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위기를 외부 환경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우리 자신의 태만이나 잘못된 관행은 없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말했다.

선언문에도 “그동안 정량적 평가체제 아래에서 문제를 외부의 탓으로만 돌리고 자기성찰을 소홀히 했던 것”과 “경쟁적인 학술 문화 아래에서 연구자 공동체의 붕괴와 연구자의 고립을 방관하였던 것”에 대한 반성을 담았다.

정종현은 “서로 돌보며 바람직한 학술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료라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큰 의미였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는 “23개 참여 학회를 중심으로 ‘한국현대문학자회의’의 상설화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 참여 단체는 국어국문학회, 한국문학회(부산, 경남), 한국문학언어학회(대구, 경북), 어문연구학회(충청), 배달말학회(경남), 한국 현대소설학회, 한국시학회, 한국극예술학회,국제한국문학학회, 상허학회, 대중서사학회, 한국여성문학학회, 광주모더니즘, 인문학협동조합, 지식공유연대 등이다.

현대문학자대회 참가자들이 대회 1일차인 25일 성균관대학교 국제관에서 발표를 듣고 있다. 조직위 제공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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