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이태원특별법도 거부권…5번째 'No'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 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참사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재가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취임 후 다섯 번째다. 거대야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최후 견제장치를 적극 활용하는 셈이다. 대통령실은 논란이 있더라도 반헌법적이라고 판단한 법안은 막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30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이태원참사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 안건을 이날 오후 재가했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정부로 이송된 날로부터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이태원참사특별법은 지난 19일 이송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반목과 갈등, 정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헌적 법률안은 막고 피해를 입은 분들의 실질적 회복을 위해 지원하겠다는 게 정부의 취지"라고 밝혔다.
정부는 거부권 행사의 근거로 △영장주의(강제처분시 원칙적으로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근거해야한다는 개념) 등 헌법가치 훼손 및 국민 기본권 침해 우려 △특조위(특별조사위원회)의 공정성 중립성 미확보 우려 △광범위한 특조위 업무·권한으로 인한 행정·사법부 역할 침해 우려 △불필요한 조사로 국가 예산 낭비 및 재난관리시스템 운영차질 등 4가지를 들었다.
한 총리는 "진정으로 유가족과 피해자 그리고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 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정부도 적극 수용할 것이지만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며 "여야 간에 특별법안의 문제가 되는 조문에 대해 다시 한번 충분히 논의해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이와 별도로 피해자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위헌적이라고 판단한 법률안은 국회로 돌려보내되 유가족 등의 실질적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노력하겠다는 취지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이날부터 국무총리 직속 피해지원위원회 설치에 본격 착수하는 한편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의료비·간병비 확대 △치유휴직 지원 △심리안정 프로그램 및 피해아동 지원 △이태원 상권 경제활성화 방안 등을 추진한다. 또 지방자치단체, 유족 등과 협의해 추모시설을 건립하고 관련 민·형사 재판 결과에 따라 최종 재판 확정 전이라도 피해배상·지원을 검토하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여야 합의 없이 일방처리된 법안,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갈등이 심각한 법안, 반헙법적인 법안 등에 대해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라고 밝혀왔다. 야권의 비난 등 논란이 생기더라도 국민과 국가의 이익에 배치되는 법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이처럼 국회 무시와 독주라는 비판 속에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거부권을 계속 행사하는 것은 이를 '의무'로 해석하는 인식이 깔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권분립의 원리 아래 입법부 견제를 위해 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법률이라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라기보다 헌법 체제 수호를 위해 나라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법안을 막아야 하는 대통령의 의무(헌법 제66조 2항)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이는 여론 지형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단행한 쌍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 재가 직후 이례적으로 직접 언론 브리핑에 나서 "만약에 이러한 입법이 잘못된 선례로 남는다면 인권과 헌법 가치는 다수당의 전횡에 의해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러한 헌법상 의무에 따라 대통령은 오늘 국회에 두 가지 총선용 악법에 대한 재의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법안을 거부할 권리를 행사한 게 아니라 악법을 막아야 할 의무를 이행했다는 뜻이다.
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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