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선 청소부로 위장취업한 기자, 착취의 현장에서 저널리즘을 묻다[리뷰]
프랑스 노르망디의 위스트르앙 부두에는 영국을 오가는 여객선이 하루 세 번 들어온다. 부두에 다다른 여객선이 닻을 내리면 주황색 조끼를 입은 청소노동자 10여명이 빠르게 배에 오른다. 240개의 객실은 이들의 ‘전장’이다. 정박 시간 90분 동안 모든 객실 청소를 끝내야 한다. 이들은 2인 1조로 나뉘어 쓰레기통을 비우고, 화장실을 반짝반짝하게 닦고, 1~2층 침대의 시트를 간 뒤 주름 없이 각을 잡는다.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객실 하나당 4분. 허리를 펴는 여유를 부렸다간 꼼짝없이 ‘영국행’이다. 하지만 영국행보다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 “시켜보고 아니면 끝”이라는 관리자의 말이다.
<두 세계 사이에서>(31일 개봉)는 중년 여성 ‘마리안’(줄리엣 비노쉬)이 구직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하고 23년간 주부로 살다 이혼해 구직 시장에 나온 마리안에게 상담사는 말한다. “저희가 제안하는 맞춤형 취업 솔루션은 ‘유지 관리 담당자’입니다. 전망이 좋아요. 어디든 수요가 있어서 이사 가지 않아도 되고요.”
“청소부 말인가요? 좋아요, 할게요.” “업체에서 고용해 줘야 일을 할 수 있죠.”
어렵게 일자리를 구한 마리안의 손길은 영 서투르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안의 진짜 직업은 저널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취약계층의 노동현실을 책으로 쓰기 위해 ‘위장 취업’했다. 그는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고 또 친구가 되며 이들이 놓인 현실을 몸소 겪는다.
‘유지 관리’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바꿔 부를 뿐 청소부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마리안을 비롯한 청소노동자들은 파리 목숨이다. 마리안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청소업체 관리자에게 항의하다 반나절 만에 해고된다. 여기서 2시간, 저기서 3시간씩 일하던 마리안이 ‘청소계의 극한 직업’인 여객선까지 간 것도 수없이 해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2010년 출간된 소설 <위스트르앙 부두>가 원작이다. 주로 분쟁지역을 취재해 온 국제문제 전문 기자 플로랑스 오브나가 2009년 ‘시급 8유로’의 청소부로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썼다.
원작이 저널리스트인 주인공과 노동자들 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들의 현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영화는 관찰자인 주인공의 내면 갈등을 드러내는 데 공을 들인다. ‘윤리적 안전장치’를 제거한 세계에서 마리안은 저널리즘과 기만 사이에 갈등한다. 동료들은 마리안에게 내밀한 고민까지 털어놓지만 마리안이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거짓뿐이다. <두 세계 사이에서>가 취약계층 노동 현실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저널리즘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인 이유다.
<퐁네프의 연인들>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으로 잘 알려진 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마리안을 연기했다. 그는 원작을 읽은 뒤 직접 원작자를 오랜 시간 설득해 영화화를 이끌어냈다. 비노쉬를 제외한 대부분 역할은 비전문 배우들이 맡아 현실감을 더했다.
소설가이기도 한 에마뉘엘 카레르가 연출했다. 상영시간 103분. 12세 이상 관람가. 제74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이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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