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따라 장내미생물 구성도 다르다
강석기│과학칼럼니스트
언제부터인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엠비티아이(MBTI) 성격 유형 검사가 유행하고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여러 질문에 답하면 외향(E)/내향(I), 감각(S)/직관(N), 사고(T)/감정(F), 판단(J)/인식(P) 네가지 지표의 선호도가 정해져 개인의 성격 유형을 알려준다. 네가지 조합이므로 모두 16가지 유형이 나온다. 예를 들어, 아이에스티피(ISTP)인 사람은 ‘조용한 편이고, 상대 기분에 맞추려고 마음에 없는 얘기를 하지는 않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이다.
엠비티아이 성격 유형 정보는 나와 남의 다름을 인정하고 맞춤형 대인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 인간의 복잡한 성격을 설문을 통해 16가지로 나눈다는 자체가 무리인데다 자칫 확증 편향으로 이어질 수 있어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아무튼 과거 유행했던 ‘혈액형 성격 유형’에 비하면 과학(심리학)에 한층 다가선 느낌이다. 네가지 혈액형에 맞춰 성격을 나누는 것부터 무리이고, 심리 설문을 바탕으로 한 엠비티아이와 달리 생리 특징인 혈액형을 성격과 연관 지을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나쁜 남자라는 식의 엉터리 해석을 담은 책까지 나왔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에는 혈액형이 공생하는 장내미생물의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에이비오(ABO)식 혈액형은 적혈구 표면의 탄수화물 구조가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결정된다. 즉 A형의 탄수화물과 B형의 탄수화물은 각각 다른 항원으로 작용하고 AB형은 두가지 항원을 다 갖고 있고 O형은 둘 다 갖고 있지 않다.
이 탄수화물은 적혈구 표면뿐 아니라 분비 여부를 결정하는 유전형에 따라 장 점막에도 존재할 수 있다. 장내미생물 가운데는 점막에 있는 A형 탄수화물(엄밀히 말하면 구성 당분인 아세틸갈락토사민)을 먹이로 삼는 종류가 있다. 네덜란드 흐로닝언대가 주축이 된 다국적 공동연구팀은 네덜란드인 9000여명 분변 시료의 메타게놈을 분석했다. 시료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게놈인 메타게놈은 분변의 경우 섞여 있는 장내미생물 수백종의 정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분석 결과 A형이나 AB형이면서 분비형인 사람의 장내미생물에는 점막에 들어 있는 아세틸갈락토사민을 흡수해 에너지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효소 유전자 세트를 게놈에 지닌 미생물의 점유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효소 유전자가 없어 이를 먹이로 삼을 수 없는 미생물보다 생존 경쟁에서 유리할 것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특혜를 받은 미생물은 무엇으로 보답할까.
연구자들은 피험자를 A형이나 AB형이면서 분비형인 그룹과 A형이나 AB형이지만 비분비형이거나 O형이나 B형인 그룹(다들 점막에 아세틸갈락토사민이 없다)으로 나눈 뒤 장내미생물의 효소 유무와 건강 지표의 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A형이나 AB형이면서 분비형인 사람이 관련 효소를 지닌 미생물과 공생할 경우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항목별로 보면 체질량지수(BMI)와 혈당, 중성지방 수치가 낮고 좋은 콜레스테롤인 에이치디엘(HDL) 수치가 높다. 이는 미생물이 만들어 내보내는 대사물질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사례처럼 사람의 유전형은 장내미생물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고 궁합이 맞는 장내미생물과 공생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부적절한 식단이나 항생제 복용 등 환경 요인으로 장내미생물 생태계가 교란되면 장 질환은 물론 신체 곳곳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손상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약물이 바로 프로바이오틱스로, 유익균 몇종으로 이뤄져 있다. 이번 연구는 사람의 유전형에 따라 프로바이오틱스 구성도 맞춤형으로 해야 효과가 클 것임을 시사한다. A형이나 AB형이면서 분비형인 사람을 위한 프로바이오틱스에는 아세틸갈락토사민을 먹이로 이용하는 미생물을 포함하는 식이다. 혈액형 성격 유형론은 유사과학조차 되지 못하지만 혈액형 프로바이오틱스 유형론은 과학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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