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왜 아직도 트로트를 찾을까?”…서혜진 PD에게 묻다
"트로트는 끝났다." 혹자는 말했다.
2019년 ‘미스트롯’으로 촉발된 트로트 오디션 시장은 어느덧 5년째 접어들었다.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스트롯’·‘미스터트롯’을 기획·제작하며 ‘트로트 공화국’의 산파 역할을 했던 서혜진 크레아 스튜디오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재미있으면 본다"는 그의 지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 PD의 신념은 결과로 증명됐다. 지난해 11월28일 첫 방송된 MBN ‘현역가왕’은 9회까지 매회 시청률이 상승했다. 6%대로 시작했으나 지난 23일 방송 분량의 시청률은 15.2%(닐슨코리아 기준)였다.
트로트 새싹을 발굴하는 기존 오디션에서, 현 트로트 시장을 대표하는 현역 가수들의 대결로 방향을 튼 것이 주효했다. 지난 23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서 PD를 만나 ‘중꺾마’의 정신으로 ‘현역가왕’의 성공을 이끈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역가왕’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불타는 트롯맨’을 마친 후 당초 여자 편을 안 할 생각이었다. 6세대 걸그룹을 뽑는 ‘언더 피프틴’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여자 편 안 하세요?’라고 묻더라. 투자가 들어왔다. 즉, 여전히 수요와 니즈가 있다는 뜻이다. TF팀을 꾸려 두 달 간 자료 조사를 했고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 ‘현역’들의 싸움으로 방향을 틀었나?
"트로트 유망주 찾기가 아주 어려웠다. 지난 5년간 저인망으로 끌어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의 대결로 가보자’고 의기투합했다. 트로트 오디션 4년차에 접어들면서 웬만한 시청자들도 전문가가 됐다. ‘현역가왕’은 오디션이라기 보다는 실력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복면가왕’ 형태의 서바이벌 형식 예능이라고 볼 수 있다. 현역들끼리 스스로 평가하는 자체평가전 시청률이 6%대였다. 당초 8부작으로 기획했는데, 힘이 붙는 느낌을 받아서 ‘판을 키우자’고 판단했다."
◇현역들의 무대는 무엇이 다른가?
"본인들이 더 욕심 낸다. 예선 무대의 경우, 제작진의 지원이 거의 없었다. 정말 기본 무대만 제공했다. 그런데 스스로 경쟁이 붙더라. 자기 돈을 들여 백댄서를 부르고 의상을 구입했다. 무대를 향한 그들의 절박함이 느껴졌다. 이런 현역들의 열정이 ‘현역가왕’의 가장 큰 힘이자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발라드의 여왕’으로 유명한 린의 트로트 도전 배경은 무엇인가?
"‘불타는 트롯맨’을 끝난 후 린이 ‘트로트 앨범을 내고 싶다’면서 콘텐츠 협업 제안을 해왔다. 미팅 중 ‘현역가왕’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바이벌 프로그램 참여 가능성을 물었더니 흔쾌히 ‘오케이’하더라. 그 때 ‘더 큰 판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린의 참여가 ‘현역가왕’을 과감히 밀어붙이는데 큰 힘이 됐다."
◇무대 밖 탈락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편집이 인상적이었다.
"맞다. 현역들은 정말 치열하게 싸운다.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다. 그 마음이 전해지니, 1명이 탈락하면 다 같이 울더라. 시청자들도 공감하고 함께 눈물을 흘린다는 반응을 접했다. 그래서 탈락자의 이야기도 편집없이 다 보여주고 있다. ‘서혜진이 정신 차렸나 보다’라는 댓글도 봤다, 하하. 제작진 역시 꾸밈없이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힐링을 얻고 있다."
◇진행자인 신동엽이 눈물을 보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놀랐다. 20년 넘게 신동엽을 지켜봤는데,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원체 방송에서 눈물을 흘리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출연 가수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절박하게 노래부르고 열정적인지 알게 된 거다. 그들의 노력을 지켜봤기에 그들의 탈락이 안타까웠던 거다. 카메라 앞에서 꾸며진 모습이 아닌 정말 ‘날 것’의 모습을 다 지켜본 진행자이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다. 그리고 신동엽도 그런 감정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공감했다는 뜻이다. 그가 여전히 슈퍼스타인 이유다."
◇여성 트로트 서바이벌은 남성 편과 어떻게 차별화되나?
"감정 표현이 정말 풍부하다. 서로에 대한 공감대와 유대가 강하게 얽혀 있는 느낌이다. 남성 편을 연출하다 보면 대기실에서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을 때가 많다. 확실히 남성보다 여성들이 언어적 소통이 강하다. 그런 감성적인 부분을 ‘현역가왕’을 통해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현역가왕’ 톱7이 ‘트롯걸 in 재팬’ 톱7과 국가 대항전을 치르게 된다.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하게 됐나?
"한국 가수가 일본 시장에 안착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 유명하다고 무조건 일본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 접근하는 데 적잖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두 시장 간의 가교를 놓고 싶었다. 한일 대항전은 일본에서도 동시에 방송된다. 한국 트로트 가수들의 얼굴을 알릴 기회다. 이런 연결 고리가 있으면 한국의 트로트 가수들의 일본 시장 연착륙이 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일본 내 트로트 열기는 어떤가?
"단순히 ‘트로트’로 장르를 국한하면 안 된다. 엔카 가수도 있지만 보다 다양한 노래를 부른다. ‘트롯걸 in 재팬’의 톱7 중 3명이 10대다. 그들은 대중 가요를 부른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트로트도 부르지만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다. 범(凡) 트로트 무대다. 한일 대항전은 3월부터 진행되고, 양국에서 동시에 문자 투표가 진행된다. 흥미로운 판이 될 것이다."
◇트로트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나?
"제가 SBS ‘스타킹’을 오래 연출했다. 10개월쯤 됐을 때 방향성을 두고 고민에 빠지자 ‘아이템이 없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한 선배가 말했다. 트로트의 유통기한을 따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껏 트로트의 명맥이 끊긴 적이 있던가? 트로트가 ‘나이 든 사람의 노래’라 보는 건 편협한 사고다. 나이 든 분들, 그리고 트로트에 대한 모독이다. 이는 그저 하나의 장르일 뿐이다. 계속 누군가가 듣고 새로운 팬층이 확보된다. 자본은 이 흐름을 정확히 알고 있다. 여전히 트로트 프로그램이 제작된다는 것은 확실한 수요 계층이 있다는 뜻이다. 정해진 유통기한이란 없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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