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보도 전수조사 결론 "노동자 없는 노동보도"
[토론회] 지난해 분석 대상 노동 보도 5721건 중 노조법 개정 관련 기사는 5% 불과
맥락기사도 정쟁·사용자 관점 많아...균형 없는 사건 기사, '전부 익명' 비난 기사까지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지난해 노조법 2·3조 개정안 보도의 주인공은 '정쟁'과 '사용자'였다. 현안의 중대성에 비해 보도량이 적고, 노동 현실을 다룬 해설 보도가 극히 드물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기존의 진보-보수 언론 구분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해석도 등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언론정보학회 미디어이론과현장연구회가 지난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서울외신기자클럽에서 '한국언론과 노동보도 실태와 노동담론의 정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안수찬 교수와 곽영신 연구원이 지난해 노조법 개정안 관련 보도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지난해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6곳(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한국일보)과 경제일간지 2곳(매일경제·한국경제)의 지면 기사를 분석했다. 방송사에선 지상파 3곳과 종합편성채널 4곳, 보도전문채널 2곳의 저녁 메인뉴스를 살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손해배상·가압류 남용을 막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2조의 사용자 정의 등 규정을 넓히고, 3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구체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법안이 발의된 지 9년 된 장기 의제지만,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와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 장기파업 뒤 원청이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서며 개정 운동이 시작됐다. 법안은 2023년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나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뒤 최종 부결됐다.
노동보도의 5%·전체의 0.1%…특정 시점 쏠려
맥락기사도…정쟁·사용자관점 기사 가장 많아
연구진은 “노동자 없는 노동보도”로 연구 결과를 요약했다. 안수찬 교수는 “노동자의 입장과 관점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기사가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고 지적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관련 보도는 절대량부터 적었고, 특정 시기에만 보도가 집중됐다. 곽영신 연구원은 이를 “냄비보도와 무보도를 왔다갔다하는 현상”으로 요약했다.
지난해 노동 보도 5721건 중 노조법 개정 관련 기사는 5%였다. 1년간 신문 기사가 총 185건, 방송 기사는 총 126건이다. 월 평균으로는 1.9건(신문) 혹은 1.2건(방송)꼴이다. 연구진은 “1년 내내 지속한 첨예한 이슈를 전체 노동 기사의 5% 정도 비중으로 다룬 것이 충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전 분야에서 노동 관련 보도는 2%에 그쳤다. 매체별 보도량은 신문의 경우 한국경제(34건), 한겨레(31건) 순으로 많았다. 방송사 보도량은 KBS(22건)가 가장 많고 JTBC(9건)가 가장 적었다.
노란봉투법 보도는 특정 시점에 집중됐다가 현격히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지난해 관련 보도가 집중된 세 번의 국면은 △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2월 △국회 본회의 부의가 이뤄지고 노란봉투법을 뒷받침하는 취지의 판결이 나온 6월 △본회의를 통과한 11월 등이다. 안수찬 교수는 “7~10월, 심층 보도 맥락 보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었을 시기에는 아예 보도하지 않는 현상을 확인했다”고 했다.
사건을 단순 전달한 '사실 기사'와 달리, 분석과 해설을 담은 '맥락 기사'의 경우 여야 정쟁 기사(34%)와 사용자 관점에서 '불법파업' 우려를 키우는 법안 정보 기사(28%)가 가장 많았다. 정부·여당과 사측 우려를 반박하는 법안 정보 기사는 23%였다. 노동 현장의 현실을 다룬 보도는 2건에 그쳐 비중을 나타낸 그래프에 들지도 못했다.
균형 없는 사건기사부터 '전부 익명' 비난기사까지
뉴스룸의 원칙적 관행을 벗어난 보도 유형도 두드러졌다. 특히 “그야말로 한 줄의 반박도 담지 않은” '완전히 단일한 관점의 기사' 비중이 높았다. 단순한 사건 중심 기사는 '기계적 중립'을 띄는 경우가 많은데, 노란봉투법 보도에선 하나의 관점만 담은 사건 기사가 44%에 이르렀다. 한국경제(71%), 매일경제(52%), 조선일보(44%) 경향신문(43%) 한겨레(39%) 순으로 단일 관점의 보도 비중이 높았다.
'익명의 비난 보도' 현상도 눈에 띄었다. 각 매체가 인용한 취재원 가운데 조선일보(40%)와 한국경제(47%)의 투명 취재원 비중이 가장 낮았다. 곽영신 연구원은 “특이한 곳은 조선일보다. 취재원을 많이 활용한 매체 가운데 하나인데, 투명 취재원의 비중은 굉장히 낮았다”고 지적했다.
단적인 예로 <김명수 퇴임전 노조 손 들어주나… 대법 '노동조합법' 쟁점 심리'>기사가 있다. 해당 조선일보 기사에 등장한 4명의 취재원은 △법원의 한 관계자 △한 법조인 △법원 안팎 △한 법조인 등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난하는 주장을 했다. 안 교수는 “갈등 이슈인 노동 보도에서 (언론사가) 일방적 비판을 용이하게 하는 관습적 방식으로써 취재원을 활용”했다고 봤다.
반면 짧은 시간의 방송 보도에서도 여러 이해 당사자들 관점과 정보를 전한 사례로 KBS의 지난해 2월20일 <용역·하청도 교섭 가능해지나…노사 극명한 입장 차> 기사가 꼽혔다. △청소노동자 당사자 △전문가 △한국노총 대변인 △경총 부회장 △노동부 장관 △판결 내용 등이 소개됐다.
안 교수는 이번 분석 결과를 두고 “발생 사안을 단순 전달하는 표피 보도가 많고, 맥락과 배경을 전혀 찾을 수 없는 보도가 많았다. (맥락보도도) 대부분 기사가 여야 대립과 갈등, 정쟁으로 프레이밍하고 있었다”며 “이런 기사를 많이 보도하면 결국 해결의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이슈에 냉소를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또 기존의 '보수언론 대 진보언론의 구분법'으로 노동 보도를 볼 때는 지났다고 했다. “한국경제와 매일경제가 강력한 기업 관점의 노동보도를 대량으로 내놓았다. 중앙일간지 가운데선 조선일보 정도가 강력한 기업 관점의 보도를 내놨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다른 방식으로 노동보도를 하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정규직·비정규직 같이 한 운동에 '소수 기득권' 한마디로 끝내”
이날 토론회에선 노동운동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고민도 나왔다.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정책실 부실장은 이날 개별 언론사 분석을 넘어 “공론장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묻지마 비판이 거리낌 없이 이뤄지는 현상”을 언급했다. 일례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공론화 과정에서 불거진 '노조 채용비리 의혹'을 언론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사실무근이라고 밝혀진 뒤에도 '노노갈등과 취업의 공정성'에 담론의 초점이 맞춰졌다고 했다.
전호일 민주노총 대변인은 노동계가 마주하는 여론 지형의 현실을 '동네 빵집' 프레임에 비유했다. 최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5~50인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주장하면서 '동네 음식점이나 제과점 사장님도 적용 대상'이라고 말한 것이 언론 보도로 확산된 일을 거론한 것이다. 전 대변인은 이를 “민주노총이 이들을 공격한다고 비치도록 하는 악의적 프레임”이라고 규정하면서 “한국은 5인~50인 규모 기업이 상당히 적다”고 했다.
2019년 경동건설 현장에서 중대재해(추락)로 숨진 정순규씨의 아들 석채씨는 “한국에선 산재 사망 70% 이상이 추락과 끼임인데 주로 건설 현장이고, 나머지는 제조업이 대다수”라며 “2월1일 본회의에 다시 (적용 유예 법안이) 상정될 가능성이 높으니 이번 주가 최대 고비다. 언론노동자들이 많이 나서주길 바란다”고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동오 언론노조 YTN지부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방송 보도 수가 적고 이슈가 발생했을 때에만 집중 보도했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아프다”며 “다만 24시간 보도전문채널 특성도 고민해주길 바란다. 보고서는 8월 연구에서 앵커대담이 없었다고 지적하는데, 오전 8시 당사자 목소리를 듣는 대담이 고정이고 메인뉴스 외 시간 노란봉투법 발의 의원 대담을 했다”고 말했다.
전혜원 시사인 기자는 “진보언론은 야당 단독으로 통과한 법안을 대통령에게 그저 받아들이라고만 하고 있지는 않나”라고 되물으며 “반복되는 거부권 행사 국면에 언론은 여야 합의 가능한 지점을 발굴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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