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가 죄수를 감시한다고? 2400년 전부터 ‘보초’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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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 브라질 남부의 한 교도소에서 거위를 경비로 세워 화제가 됐습니다. ‘거위 요원’이라 불리는 이 거위들은 개 대신 교도소 내부 울타리와 외벽 사이 녹지를 순찰하는 임무를 맡았는데요, 경계 상황이 벌어지면 특유의 꽥꽥거리는 울음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거위가 정말 교도소를 지킬 수 있을까요?
A. ‘보초병 거위’의 역사는 유구합니다. 기원전 390년 로마에서부터 1950년대 위스키 증류소, 조선시대 ‘지봉유설’에까지 등장할 정도입니다. 잠깐, 거위와 기러기가 같은 종이라는 건 이미 알고 계시지요?
교도소 주변을 뒤뚱거리며 돌아다니는 거위의 모습을 보면, 귀엽긴 하지만 정말 경비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긴 합니다. 그런데 브라질 교도소장의 설명은 다릅니다. 그는 “우리는 각종 전자기기와 교도관을 통한 감시를 하고 있지만, 마침내 개를 대체할 거위 보초병을 도입했다. 대장 거위 ‘피우피우’는 동료들을 이끌고 교도소를 잘 감시하고 있다”고 로이터에 전했습니다. 거위가 개보다 관리비용이 덜 들고, 조용한 교도소 환경에서는 거위의 큰 울음소리가 큰 역할을 한다면서요.
거위를 보초로 세운 건 브라질이 처음이 아니에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때 중국에서도 거위 경비병들이 활약을 벌였거든요. 2021년 중국 남부 충저우시가 베트남과의 국경 533㎞를 순찰하는 업무에 거위 500마리를 투입한 것인데요, 당시 국경순찰대는 300곳이 넘는 검문소에 거위들을 배치해 국경을 지켰다고 합니다. 실제로 거위들이 불법 입국자 2명을 잡아내는 성과를 내기도 했고요.
사실 ‘거위 순찰대’는 역사는 유구합니다. 거위가 인류와 함께한 역사는 최소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가 거위라고 알고 있는 새와 기러기는 같은 동물입니다. 야생의 기러기를 가축으로 만든 것이 거위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유적에는 거위 사육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이집트인들은 기러기가 철에 따라 이동하기 전 먹이를 섭취하고 포동포동하게 몸집을 키운다는 사실을 눈여겨봤습니다. 이때부터 기러기를 잡아 기르며 가축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죠. 거위가 개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가축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오랜 세월 품종이 개량돼 현재 거위는 몸집이 더 커지고 좀처럼 날지 못하지만, 영어 표현에서 거위(Goose)와 기러기(Wild Goose)에 모두 ‘구스(Goose)’라고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지요. 기러기의 가축화는 고대 이집트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이뤄졌는데요, 서양의 거위는 회색기러기(Anser anser)가, 중국 거위는 개리(Anser cygnoides)가 원종으로 여겨집니다.
고대인들도 거위가 영리하고 경계심이 강한 동물이란 점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미 기원전 390년 고대 로마인들도 거위를 주노 신전을 지키는 ‘보초병’으로 활용했거든요. 고대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가 기록한 ‘알리아 전투’의 한 대목에는 거위가 새벽녘에 몰래 몰려온 갈리아군을 알아보고는 큰 소리로 울어 젖혀서, 이를 눈치챈 로마군이 적을 무찌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게다가 애주가분들이라면 이미 아실 법한 이야기도 있지요. 유명한 싱글몰트 위스키 ‘발렌타인’(Ballantine’s)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증류소에 낯선 사람의 침입을 막기 위해 1959년부터 거위를 경비로 세웠다는 유명한 일화를 말입니다.
서양뿐이 아닙니다. 실학자 이수광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지봉유설’(芝峯類說)에도 “거위는 능히 도둑을 놀라게 하고, 또 능히 뱀을 물리친다”거나 “거위는 귀신을 놀라게 한다”는 내용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도 “옛 어른들은, 거위를 기르면 개 한 마리를 기르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거위는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경비 본능’을 가질 수 있었던 걸까요. 새를 사랑하는 탐조인의 모임인 미국 ‘오듀본협회’는 거위가 지능이 높은 데다가 영역 주장이 강하고, 놀라운 시력과 청력을 지니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패트릭 커민스 조류보호감독관는 “거위는 놀라운 청력과 시력을 가지고 있다. 새들은 인간보다 더 먼 거리를 잘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볼 수 없는 자외선 영역의 색까지 판별할 수 있다”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설명했습니다. 이어 “거위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데, 익숙한 사람을 자신의 무리로 여기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야생 기러기도 비슷한 감각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약 30종의 야생 기러기들은 남극 대륙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 서식하는데, 대부분 땅 위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늘 포식자를 경계해야 합니다. 잠을 잘 때도 뇌의 한쪽은 깨어있는 ‘반구형 수면’을 취하며, 그와 연결된 눈은 늘 외부의 위협을 감지하도록 진화했다고 합니다.
지난 30년간 야생조류를 관찰해온 윤순영 이사장은 야생 기러기 무리에서도 이런 행동이 관찰된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기러기는 보통 가족들과 무리를 이루는데, 큰 무리에서도 가장자리 개체들이 돌아가며 ‘보안’을 서고, 위협이 발생하면 큰소리로 경보를 한다”고 합니다. 그는 기러기를 ‘가족애가 뛰어나고 점잖은 새’라고 묘사했습니다. 윤 이사장은 “기러기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하고 새끼나 부부 중 한 마리가 다치더라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 킨다”고 합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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