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의 4번째 여성 배역…‘남성창극 살로메’

임석규 기자 2024. 1. 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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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연출가 만든 최초 남성창극
‘남성창극 살로메’에 출연한 국립창극단 간판 배우 김준수. ⓒJoonyeol

여성 배우들만 출연하는 ‘여성국극’이 유행한 적은 있어도 남성 배우들로 무대를 채우는 창극은 처음이다. ‘남성창극 살로메’(2월 2~4일 대학로예술극장)가 화제다.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탐미적 희곡 ‘살로메’를 ‘각색의 달인’ 고선웅(현 서울시립극단장)이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다. 참수와 나체춤, 근친상간 등 온갖 금기를 담은 원작에 엇갈리는 애정의 화살표를 더욱 꼬이게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이다.

젊은 여성 연출가가 시도하는 최초의 남성창극에 국립창극단 ‘간판 투톱’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나란히 출연한다. 김준수의 여성 배역은 이번이 네 번째. 또다시 여성을 연기하는 게 부담스러워 처음엔 배역을 고사했다고 한다. 지난 28일 서울 강동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거침없는 욕망을 드러내는 분방한 살로메는 이전에 했던 여성들과 전혀 다른 캐릭터더라”며 “틀을 벗어난 연기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트로이의 여인들’, ‘패왕별희’, ‘내 이름은 사방지’에서 빼어난 여성 연기를 선보였던 김준수다. 서울예술단 ‘순신’에 출연한 윤제원이 살로메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남성들로 무대를 채우는 최초의 ‘남성창극’ 살로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원작이 같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의 오페라 ‘살로메’는 1905년 초연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뉴욕 메트 오페라가 27년이나 공연을 금지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자주 공연된다. 살로메가 추는 ‘일곱 베일의 춤’이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남성창극 살로메’에서도 코르셋 드레스에 양쪽 어깨선이 드러나는 의상을 입은 살로메가 관능적 춤사위를 선보인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이 의상을 맡아 더욱 눈길을 끈다. 김준수는 “이 장면에 한국적 관능미를 넣어보려 했다”고 소개했다. 안무를 맡은 신선호는 뮤지컬 쪽에서 명성이 높다. 연출가 김시화도 한국무용을 전공한 안무가 출신이다.

남성창극이란 새로운 형식은 김시화 연출이 먼저 떠올렸다. “전부터 남성창극이란 걸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성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시점이라 전통 공연에서도 이런 시도가 필요하다고 봤거든요.” 2021년 국립창극단 창극 ‘귀토’의 조연출로 일하면서 연출가 고선웅에게 이런 생각을 털어놨다. 고선웅은 즉석에서 ‘살로메’를 첫 남성창극으로 제안했고, 각색도 맡아줬다. 정은혜 작창가, 이아람 음악감독이 합류하면서 속도가 났다. 김시화 연출은 “탐미적이면서도 잔혹하고, 팜므파탈의 매력과 막장 드라마가 뒤섞인 작품”이라며 “비극성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판소리가 이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원작의 선정성에 형식의 독특함, 화려한 출연진과 제작진 면면이 입소문을 타면서 예매 오픈 1시간 만에 5회차 좌석이 대부분 매진됐다. 4월 강동아트센터 공연이 확정됐는데, 전국 여러 공연장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유태평양은 “남성창극이란 게 존재할 거란 상상조차 못 했다”며 “해볼수록 창극의 새로운 형식이 될 수 있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준수도 “5년 안에 상업 창극이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성창극 살로메’는 오스카 와일드의 원작을 극작·연출가 고선웅이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원작의 소재는 신약성서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삼촌과 재혼했고, 삼촌에서 의붓아버지로 변한 헤롯왕은 조카 살로메에게 춤을 춰달라고 추근거린다. 원작에서 헤롯왕의 시종은 경비대장을, 경비대장은 살로메를, 살로메는 세례요한을 갈구한다. ‘고선웅표 각색’에서는 어머니 헤로디아가 시종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총체적 파국,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김시화 연출은 “사랑과 욕망과 집착이 넘쳐나는 현대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배우들이 가장 낮은 음역부터 최고의 높은음까지 소화해야 한다는 점도 남성창극의 어려움 가운데 하나. 정은혜 작창가는 “작품이 비극으로 치닫다 보니 굉장히 높은 음역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며 “배우들이 소리를 좀 낮춰달라고 하소연할 정도”라며 웃었다. 아쟁과 첼로, 전자기타와 태평소, 피리, 생황, 피아노, 타악기를 사용한 음악이 음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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