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한테 성추행당해”...딸은 재판에서 왜 ‘거짓말’했나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아빠에게 성추행당한 딸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했지만 법원은 피해자의 최초 입장을 신뢰하고 친부에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22년 9월 술에 취해 귀가한 뒤 잠들어 있던 초등학생 딸 B양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술에서 깬 A씨가 범행 이튿날 딸에게 사과하면서 사건은 아무 일 없던 듯 무마됐다. 그러나 이듬해 B양이 학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며 A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B양은 교사와의 상담부터 경찰, 검찰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피해 사실을 진술했다. 이 과정에서 아빠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도 분명히 표시했다.
하지만 성범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아, 아빠는 처벌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검찰은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 관계에 의한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재판은 시작됐고 갑자기 B양의 진술이 바뀌었다. B양은 재판에서 “매일 술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아빠가 싫어서 허위 진술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사건의 유일한 증거와 다름없는 피해자의 진술이 번복됐지만 검찰과 변호인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진술의 신빙성에 대한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바랐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재판에 이르게 되자 피해자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허위로 증언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사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무고나 위증의 죄책을 부담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사기관에서의 일관된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다.
A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이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 딸의 진술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며 “딸의 진술이 번복돼 당황스럽지만 여러가지 사실을 토대로 신빙성 여부를 잘 판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A씨도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 등을 재판부에 제출하며 “당시 만취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 “가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자신의 진술로 인해 피고인에게 중형이 선고되고 가족들이 불행을 겪게 될까 봐 상당한 부담과 중압감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며 “법정에서 진술 번복이 이전 진술의 신빙성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며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인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상당한 지장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고 그를 꾸짖었다. 이어 “피고인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피해자의 진술 번복을 근거로 법을 현혹하려고 한 죄질이 나쁘다”며 “실형을 선고하거나 법정 구속도 적극 고려함이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형량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현행법상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죄는 법정형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장기간 구속할 경우 가족 관계가 파탄에 이를 수 있고, 가족들의 생계나 피해자의 건강한 성장에 또 다른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며 “바람직한 처벌이 무엇인지 의문이라는 점을 지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하고 4년간 형 집행을 유예했다. 또 각각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및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수강도 명령했다.
홍수현 (soo0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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