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ye] "그 마동석에, 그 마동석"…'황야', 아는 맛의 함정
[Dispatch=정태윤기자] 확실한 건, 한 가지다. 아포칼립스물? (반) 좀비물? 액션물? 아니다. 그냥, 마동석물이다. 그 서사에, 그 연출에, 그 마동석.
심각할 때 던지는 유머, 분노할 때 터지는 주먹, 족히 3번 이상 봤던 패턴이다. (물론, 3,000만 관객을 끌어모은 검증된 공식이다.)
그래서일까. 기시감은 어쩔 수 없다. '남산'이나 '마석도'나. 하이라이트 결투에서 말장난으로 한 템포 쉬어주는 방식까지 비슷했다.
"혼자 왔어?" (장첸) / "응 아직 싱글이야" (마석도)
"네가 그 사냥꾼이냐?" (권상사) / "그럼 사랑꾼이겠냐" (남산)
마동석이 하니까 볼만 했지만, '황야'(감독 허명행)의 색깔은 사라졌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아포칼립스는 이용당했다
'황야'는 아포칼립스물이다. 가장 최근 공개된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비교해 보자. 두 작품 모두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가 등장한다.
'콘유'는 아파트 내부인과 외부인을 완벽하게 나누는 극명한 계급 사회, 갈등이 심화하면서 벌어지는 분열. 그 안의 인간 본성을 깊이 탐구했다.
그러나 '황야'의 분위기는 평면적이다. 조금의 다툼도 없었다. 현재의 삶에 순응하며 살아갔다. 배경만 멸망 직전 세상의 모습일 뿐.
황궁아파트도 마찬가지다. 남산 일행이 등장하기 전까진 (표면적으로는) 별 탈 없이 살아갔다. 양기수(이희준 분)의 지휘 아래 로봇처럼 복종했다.
허술한 서사 아래 이야기는 힘을 잃었다.
위협요소는 깽단 정도? 그러나 이미 '반도'에서 봤던 집단이다. 장르적 클리쉐를 차치하고서도, 마동석 덕분에 긴장감을 조성하진 못했다.
재난 상황에 대한 질문, 고민, 갈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도 그저 넋놓고 있었나?', '식량은 어떻게 구할 수 있었나?' 등….
불친절한 설정에, 끝없이 반문을 던지게 했다.
◆ 두 아버지의 부성
'황야'를 이끄는 핵심 이야기는, 두 아버지의 부성애다. 남산과 양기수는 딸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부성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남산은 수나(노정의 분)를 향한 사랑으로 양기수는 수많은 이의 희생으로, 그 상실감을 해소했다. 두 아버지의 부성애가 대립하며 이야기에 힘을 실었다.
문제는 남산이 수나에게 쏟는 사랑에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딸의 사진을 보며 "수나와 많이 닮았다"고 말하는 신이 두 사람의 유일한 서사다.
(다른 의미로) 양기수는 개연성이 필요 없었다. 이희준은 미친 과학자 같은 비주얼에 광기 넘치는 열연을 펼쳤다. 어긋난 부성애를 제대로 보여준다.
양기수는 딸 소연이를 살리기 위해 생체 실험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허비했다. 몸 절반 이상이 사라진 채 심장만 뛰는 소연의 모습은, 그의 집착을 더 도드라지게 했다.
양기수는 마지막까지 "난 틀리지 않았어. 너희들이 다 망친 거야"라고 외친다. 죄의식이 털끝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그의 외침은, 캐릭터를 더 생동감 있게 했다.
수나를 구하기 위한 남산의 싸움보다, 양기수의 마지막 절규가 더 설득력 있었다.
◆ 또 마동석
멸망한 세계에서 무법화된 사람들. 그 안에서 먼치킨(아주 강한 캐릭터)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마동석의 아포칼립스물. 예상되긴 했지만, 기대가 더 컸다.
일단, 첫 등장은 통쾌했다. 지완(이준영 분)은 악어를 발견하고 사냥에 나섰다. 위기의 순간, 남산이 등장했다. 시원하게 악어의 목을 댕강 잘라버릴 때. 우리가 알던 그 모습에 박수를 쳤다.
하지만 끝까지 그럴 줄은 몰랐다. 남산은 마동석 그 자체였다. 긴장감을 끌어올렸다가 유머로 호흡을 조절하는 방식,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주먹.
때문에 마지막 하이라이트 액션에 몰입이 안 됐다. 수나를 구하기 위한 남산의 혈투가 아닌, 마동석의 액션 스쿨로 전락했다.
액션은 짜릿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범죄도시' 시리즈 무술 감독이었던 허명행 감독의 첫 연출작. 늘 그래왔듯 마동석을 제대로 활용했다.
이번엔 난이도가 더 올라갔다. 상대는 사람이 아닌 반좀비 상태. 때리고 관절을 꺾어도 다시 살아났다. 마동석은 무자비하게 머리통을 절단해 버리고, 샷건을 연발했다.
모두가 바란 시원한 액션이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황야'가 기다려진 이유는, 마동석이 새로운 장르를 만났기 때문이다. 어떤 스토리에 붙여도 상관없는, 액션 시퀀스를 보고 싶었던 게 아니다.
결국 '황야'는 시청자들에게 마동석의 액션 영화 중 하나로 남았다. 킬링타임 무비로는 볼만하다. 글로벌 영화 부문 1위도 차지했다. '황야'가 영화관이 아닌 넷플릭스 행을 택한 건 가장 잘한 일 아닐까.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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