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만 원짜리 ‘디올백’ 유감[김지현의 정치언락]
2022년 9월 김건희 여사가 자신의 서초동 사무실에서 재미교포 목사로부터 디올백 선물을 받는 듯한 몰카 장면이 지난해 11월 한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이후, 해가 넘어가도록 디올백이 정치권을 계속 뒤흔들고 있습니다.
김건희 여사 ‘함정 클러치 백’ 사과해야 수도권 승리한다는 망상! ○ FL이 받은 백은 명품백 범주에 들지 않는 싸구려 파우치, 용어 재정립 필요 - 사회과학적 접근을 위해서는 용어 정의가 중요 - 1천만원 상당 샤넬, 에르메스 버킨백 등을 통상 명품백이라 칭하며, FL이 받은 건 3백만원 상당 파우치에 불과 - 좌파들의 용어 선점에 맥없이 당한 것 (중략) ○ FL이 사과하면,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올라가나? - 사과를 하든 안하든 지지율은 올라가지 않으며, 사과를 하는 순간 민주당은 들개들처럼 물어뜯을 것임 - 특히 사과의 진정성이 없다며 매도하고 남편이 책임지라는 수순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 - 김경율은 이론적 투사에 불과, 실전적 투사 아니기에 그저 앉아서 한 생각에 지나지 않음 ○ 사과하면 선거 망치는 길이며, 이런 마타도어에 속으면 안됨 - FL이 싸구려 파우치 받은 걸 다 알고,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나서놓고 이제와서 FL 때문에 선거 망칠 것 같다는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음 - 박근혜 대통령도 사과해서 범죄가 기정사실화되고 탄핵까지 당한 것 - 사과와 용서, 관용은 정상적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하는 것이며, 좌파들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님 - 침묵도 사과의 한 방법 |
보수 성향의 지지자나 유튜버라면 얼마든지 이런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칭타칭 ‘친윤’이라는 현역 의원이 이를 정리해 자기 페이스북도 아니고 전체 여당 의원 채팅방에 공유하는 건 또 다른 얘기입니다. 곧장 기사로 보도돼 공론화됐으니 말입니다. 자기들끼리 보고 끝날 줄 알았다면 정말 나이브한 것이고,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라면 처참한 전략 같습니다. 이용 의원은 당시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해당 글을 올린 배경에 대해 “종북 좌파 목사가 (김 여사) 아버님과 친구라고 접근해서 함정 취재를 한 것 아니냐”라며 “그런 원초적인 것은 빼고 영부인이 사과하게 되면 민주당에서 가만히 있겠느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틀 뒤엔 또 한 번의 황당한 발언이 이번에도 ‘친윤 핵심’ 입에서 나옵니다.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장 겸 공천관리위원을 맡은 이철규 의원은 1월 2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김 여사 건은) 몰카 공작이잖아요. 교통사고 나면 교통사고를 야기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합니까? 왜 집에 안 있고 길거리에 나와서 교통사고 당했느냐고 여러분께 책임을 묻는다면 동의하시겠어요? 똑같은 케이스잖아요.”
“(디올백은) 이미 국고에 귀속이 됐는데 국고에 귀속된 물건을 반환하는 것은 국고 횡령이에요. 그 누구도 반환 못합니다. 그건 대한민국 정부 거죠. 그런데 그걸 반환해라 또 사과해라…. 사과라는 것은 불법이라든가 과오가 있을 때 사과하는 거예요.”
이미 국고에 귀속된 물건이기 때문에 ‘반환하면 국고 횡령’이라는 주장도 황당합니다. 디올백이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 같은데요,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과 관련해 국민‧국내 단체로부터 받은 선물로 국가적 보존 가치가 있는 선물’, 또는 ‘직무와 관련해 외국인‧외국 단체로부터 받은 선물’이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합니다.
김 여사에게 선물을 건넨 재미교포 목사가 설령 미국 시민권자라 하더라도, 해당 선물은 직무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같은 당 김웅 의원이 “우리 당에서 말이 안 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게 대통령기록물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그 디올백이 만약에 기록물에 해당된다고 하면 갤러리아 명품관은 박물관이냐”고 했겠습니까.
“너무 사소한 일로 부각을 많이 시키는 가방 스캔들. 이거는 너무너무 작은 일이고 또 전 대통령, 심지어 존경하는 우리 김대중 대통령 사모님도 굉장히 안 좋은 일이 있었고, 누구인지 잘 알겠지만 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데 친하지 않은 사람은 거절하기가 쉽죠. 그런데 아버지하고 지인이 왔다? 굉장히 아는 얼굴이다? 그러면 예의 있게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걸 가지고….” (1월 25일 채널A 유튜브 중)
당을 혁신해야 한다고 큰소리쳤던 분조차 어느덧 당내 주류와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본질은 몰카’이며, ‘사소한 일’에 불과하며, ‘민주당은 했으면 더 했다’는 겁니다.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에게 기대하는 건 저런 식의 하향평준화가 아닌데 말이죠.
외신들도 이런 광경이 신기한가 봅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A $2200 Dior handbag shakes South Korea’s ruling Party(2200달러짜리 디올 핸드백이 한국 집권당을 뒤흔들다)”고 썼고, 영국 가디언도 ‘The first lady and the Dior bag: the scandal shaking up South Korean politics(영부인과 디올백: 스캔들이 한국 정치를 흔들고 있다)라는 기사에서 “한국 드라마(K-drama) 속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 한국 정치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습니다.
선물을 받은 것은 김 여사이고, 국민들이 돌려달라 한 것도 아닌데, 방귀뀐 놈이 성낸다고 “별 것도 아닌 걸로 왜 사과하라는 거냐”고 따지는 집권여당 수준이 참 한심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치언락’ 칼럼을 쓰면, 칼같이 세금까지 떼서 건당 약 5만 원 정도 들어오는 것 같던데, 이번이 56번째 언락이니 4번 정도 더 쓰면 마침내 ‘싸구려 파우치’ 하나 ‘내돈내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너 엄마 없잖아” 아들 놀림받자…괴롭힌 학생에 욕하고 반성문 쓰게한 아버지
- “맞은편 아파트에 SOS가 보인다”…20시간 갇힌 노인 극적 구조
- 800만원 산후조리원 경험한 NYT기자…“한국 출산율 낮은 이유 알겠다”
- “이 차에서 또 불이?” 화재 원인 파헤친 소방관, 8만대 리콜 이끌어
- 음주운전 사고 내고 식당 돌진한 20대女…도주했지만 결국 검거
- 버리려 내놓은 가구 속 1500만원 귀금속 슬쩍…범인은 수거업체 직원
- “해병이 차렷도 못하냐” 후임병 때리고 흉기로 위협한 20대 선고유예
- 윤재옥 “野, 상임위를 李 피습 음모론 낭독대회장으로 만들어”
- 인터넷 생방송 중 남자친구에게 흉기 휘두른 30대 유튜버…시청자가 신고
- 얼음낚시 하려다 하천에 빠진 60대 남녀…병원 이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