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무죄, 사법 흑역사 지울 계기다[포럼]

2024. 1. 30. 11:4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26일 법원은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사법부 수뇌부가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에 박근혜 정권의 협조를 얻기 위해 직권을 남용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등의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관은 다른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어 권한남용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6일 법원은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부 수장이 사상 최초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고 정치권력과 유착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 무려 4년11개월 만에 내려진 1심의 결론이다. 함께 기소됐던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에게도 역시 무죄가 선고됐다.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이 사건은, 2011년 9월∼2017년 2월 양 대법원장 등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판사들의 성향을 기재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며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고 정권과 재판 결과를 거래해 왔다는 이유로 수사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특히, 사법부 수뇌부가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에 박근혜 정권의 협조를 얻기 위해 직권을 남용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등의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 대법관은 다른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어 권한남용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됐는데, 어느 조직에나 있는 인사 자료가 판사들의 성향을 분류하는 블랙리스트로 보고 기소한 것은 무리였다.

이 사건은 사법권의 독립과 아울러 신속한 재판이라는 헌법 원칙을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헌법상 사법권 독립은 재판(심판)의 독립의 원칙이나 판결의 자유를 목표로 한다. 헌법 제102조 1항 이하에 따르면 재판부는, 입법부나 행정부로부터의 ‘법원의 독립성과 자율성’ 및 재판에 있어 어떠한 내외적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법관의 직무상 독립’과 ‘신분상 독립’을 통해 실현된다.

재판부의 이번 1심 결과는 양 대법원장 등이 재판에 관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사건이 보도된 2018년 5월 3차에 걸친 대법원의 자체 조사위원회 결론도 이와 유사했다. 그런데도 전임 대법원장은 이 결론을 뒤집었고, 법원행정처가 압수 수색받고 100명이 넘는 판사가 소환 조사당하는 결과를 빚으면서 스스로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했다. 특히, 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내부 인사자료와 각종 보고서 등 판사들을 압박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검찰에 내줬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 법원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괴감을 호소하는 판사가 늘어나고 2021년 1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80여 명의 판사가 법복을 벗으면서 역대 최고의 이직률을 기록했다. 이 사건에 연루돼 수사받은 엘리트 법원행정처 심의관,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많은 이가 스스로 사직했다. 특히, 특정 성향의 판사들이 고속 승진하고, 고법 부장판사 승진 제도를 폐지하며, 지방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한 것이 실력 있는 판사들의 업무 몰입도를 저해하고, 주요 재판일수록 계속 지연되는 주요인이 된다는 평가도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법사에 있어 발생하지 않아야 할 흑역사로 기록될 것 같다. 유한한 정권이 사법의 근간을 흔들고 일부 혐의를 침소봉대해서 법원의 행정 체계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상 사법권 독립의 진정한 의미다.

비록 만시지탄이지만 부디 향후의 재판 과정에서 정의가 실현되고, 양 대법원장을 비롯해 오래 고초를 겪은 이들이 신원설치(伸冤雪恥)하기를 기원한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