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준석과 '을들의 전쟁'
지하철을 탈때마다 무임승차에 관한 안내방송을 듣는다. 팔 하나 꿈쩍할 수 없을 만큼 빽빽하게 밀리는 출근길 객차안에서 안내방송은 매일 울린다. "무임승차는 지하철 적자의 원인입니다.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라고 안내방송은 말한다.
이 방송을 듣지 않고는 지하철을 이용하기 어렵다. 지하철 적자와 안전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공감한다. 그러나 안내 방송이 끝나고 다른 노선 열차로 갈아타는 순간, 잊는다. 지하철 이용자 누구나 비슷한 시각, 비슷한 객실 안에서 반복 학습을 당하지만 출근길 승객 누구 하나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다.
지하철 무임승차의 처음 시작은 70세 이상인 노인을 상대로 요금을 50% 깍아주는 것이었다.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100% 요금을 면제해주기 시작한 것은 1984년의 일이다. 벌써 40년의 유구한 역가가 되었다.
서울교통공사의 무임승차 손실금이 연간 8천억원 안팎에 이른다. 이 비용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의 안전과 직결돼 있다. 심각한 것은 매년 적자가 쌓인다는 것이다. 지하철공사는 채권을 발행해 안전비용을 조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갈수록 철도시설이 노후화되고 있는데 적자로 시설투자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교통공사 내부에선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정강정책으로 '65세 이상 지하철 무상이용 혜택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인회장과 맞짱토론까지 이어지면서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은 총선 초반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다.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떠나 이준석 대표의 문제 제기는 옳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이준석이 아니면 세대에 따라 찬반이 뚜렷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정치인은 드물다.
이 대표의 무임승차 폐지의 명분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지하철 유무와 역세권.비역세권 간 공정성 문제다. 수도권과 부산,대구 등 광역 도시를 제외한 고연령층에게 무임승차는 '그림의 떡'과 같은 제도라고 했다. 두 번째는 국가가 부담해야 할 복지 비용을 지자체에 떠넘겨 미래세대에 부담을 준다는 비판이다.
지하철이 없는 고연령층에게 불이익이라는 말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지만 크게 보면 일리가 있는 명분이다. 노인 복지문제는 총량으로 따질 것이냐, 아니면 사안 별로 볼 것이냐에 따라 기준선이 달라진다. 노인 무임승차에서 지역간 공정성을 측정하는 일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염려하는 것은 정치인 이준석의 용감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노인 무임승차가 '을들의 전쟁'으로 회자되고 있는 현실이다. 지역간,세대간 불평등 문제로 이 사안을 바라볼 수 있다. 가장 손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시각은 해결책을 만들 수 없다. 백퍼센트 세대 간 전쟁으로 비화되고 헛심만 쏟게 되는 길이다.
무임승차는 경제 문제이고 인구 문제이며 국가의 문제이다. 그 중에 경제 정책과 국가의 자원 배분이 투입되지 않으면 해소할 수 없는 문제이다. 사정이 뻔한대도 윤석열정부의 기획재정부는 마치 '남의 일'처럼 먼산만 쳐다보고 있다.
무임승차 문제는 노인의 노동권리를 확대하는 경제정책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초고령화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은 젊은세대 뿐만 아니라 노인세대도 마찬가지이다. 노인의 일자리 확대 노력과 함께 '피크시간 관리제' 같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출퇴근 시간 할인제가 그 예이다. 무임승차 문제는 사회적 갈등 가운데 그나마 등급이 낮은 축에 속한다.
이준석 대표가 공정성과 미래세대 부담론을 제기하는 것과 함께 국가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현 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부의 기획재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등한시하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려 하는지를 고발하고 집권 시 개혁 방향으로 토론을 진전시키는 것이 옳았다.
무음승차 논란은 교육과 노동,연급개혁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 해야겠다. 이들 문제를 '공정성'과 '미래세대 부담론' 만을 명분 삼으면 한 발도 나가기 힘들다. 그것은 한쪽을 배척하자는 얘기가 된다. 그 끝은 해결책도 없이 결국 '을들의 전쟁'으로 귀결된다. 그렇지 않아도 혐오가 넘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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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구용회 논설위원 goodwil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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