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바퀴벌레 한 쌍처럼...'내남결' 살린 송하윤·이이경의 끝판 빌런 연기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회귀물이라는 형식적 틀을 벗겨 놓고 보면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막장에 가깝다. 치정 복수극이 그것인데, 회귀물을 더해 '인생 재설계'의 개념을 넣었다는 게 이 드라마가 선전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다.
그런데 아쉽게도 회차가 거듭될수록 회귀물의 색채보다는 일종의 '인생 대반전'의 사이다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시트콤에 가까운 전개로 흘러간다. 8회가 가을워크샵에서 숙소를 얻는 게임을 통해 벌어진 정수민(송하윤)과 강지원(박민영)의 거의 결투에 가까운 대결을 통해 결국 끝내 좋은 숙소를 강지원이 차지하는 사이다 결론을 보여줬다면, 9회에서는 박민환(이이경)의 부모님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이를 뒤집어버리는 강지원의 사이다를 보여줬다.
반전 사이다의 결말이 끝내 보여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긴 하지만, 그 전개 과정을 들여다보면 아쉬움이 적지 않다. 너무 뻔한 전개들이 고구마로 채워지는데 그건 결국 정해진 사이다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드러나게 그려지고 있어서다. 또한 이러한 '고구마-사이다 패턴'이 반복되면서 스토리가 지지부진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유지혁(나인우)은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그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데, 그건 이 드라마가 '고구마-사이다 패턴'을 반복하며 시트콤적으로 회차를 채우고 있다보니, 이 캐릭터를 둘러싼 서사를 속도감 있게 전개하고 있지 않아서다. 아직도 도대체 이 인물이 왜 강지원을 이렇게 도우려하고 챙기려 하는지(그것이 그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공감갈 정도로 납득을 시켜주진 못하고 있다. 또 너무 진지함만을 강조하는 스테레오타입형 왕자님으로 그려지다 보니 캐릭터의 매력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주인공 강지원이 보여주는 사이다도 꾹꾹 눌러 놓은 고구마 전개의 반작용으로 오는 카타르시스일 뿐, 그 감정적인 공감대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왜 그가 그냥 박민환과 헤어지거나 정수민과 결별하는 그런 선택을 쉽게 하지 못하고, 굳이 연인, 친구 관계를 이어가며 변화를 주려는 어려운 선택을 하는가가 납득이 잘 안된다. 물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이 드라마 설정의 대전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런 방법밖에 없을까 싶은 것이다. 이렇게 된 건 이런 방법을 고구마-사이다 전개를 위해 억지로 세워놓은 설정 같다 여겨지게 만드는 틀에 박힌 전개 때문에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 9.8%(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만큼 사이다 결말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이 크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갈증을 계속 유발하는 빌런들의 공이 크다고 보인다. 특히 정수민 역할의 송하윤은 사실상 이 드라마의 극적 갈등을 끝없이 만들어내고 이어가는 빌런 연기의 끝판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하는 빌런 연기가 다른 건 겉과 속이 다른데서 나오는 섬뜩함이 묻어나서다. 친구친 척 하지만 사실은 이용해 먹으려 하고 가진 걸 모두 빼앗으려는 욕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이 빌런은 약한 척, 착한 척, 예쁜 척 하는 식의 '척 연기'로 얄미움을 극대화시켰다. 특히 여성 시청자들에게는 눈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는 가장 싫어할만한 캐릭터를 진짜처럼 끄집어내 보여주고 있어 다소 뻔한 구도로 느슨해질 수 있는 긴장감을 이 인물이 계속 조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정수민과 잘 어울리는 바퀴벌레 한 쌍처럼 박민환 역할을 특유의 코믹한 방식으로 희화화해 보여주는 이이경의 연기가 더해지면서 빌런의 시너지가 만들어졌다. 이이경이 하는 빌런 연기에서의 백미는 그가 역으로 당할 때 다소 과장된 형태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의 통쾌함을 더해주는 점이다. 일종의 '타격감' 좋은 빌런이라고나 할까.
심지어 주인공들인 박민영과 나인우의 존재감이 도드라지지 않을 정도의 너무 뻔한 전개 속에서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스토리 전개는 느슨해진 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하윤의 얄미움 끝판왕 연기와 이이경의 타격감 좋은 빌런 연기가 있어 그 긴장감이 생겨나고 또 핵심적 재미라 할 수 있는 시원시원한 사이다가 가능해졌다. 빌런 역할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토록 역할이 클 수 있다는 걸 이들은 보여주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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