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이태원특별법 거부권 수순…정부, 재의요구안 국무회의 의결[종합]

2024. 1. 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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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단독처리·특조위 구성·권한에 문제제기
韓 “헌법원칙 훼손하고 기본권 침해 소지”
정부, 피해자지원委 구성…재정·심리 지원
유족 “배상문제 본질 아냐”…오체투지 호소
野, 쌍특검법과 설 연휴 이후 재표결 추진
한덕수 국무총리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최은지·양근혁 기자] 정부는 30일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및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안(이태원특별법)에 대한 재의(再議)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윤 대통령 취임 후 9개의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6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이태원특별법 재의요구안을 상정·의결했다. 한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이번 법안에 따라 특별조사위는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이는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11명의 위원을 임명하는 절차에서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상당하다”며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이번 특별법안을 그대로 공포해야 하는지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진정으로 유가족과 피해자 그리고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 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정부도 적극 수용할 것”이라며 “여야 간에 특별법안의 문제가 되는 조문에 대해 다시 한번 충분히 논의해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덧붙였다.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 19일 정부로 법안이 이송된 지 11일 만에 정부는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헌법상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정부는 이송된 날로부터 15일 안에 국회로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이태원특별법은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특조위원은 11명으로, 이중 국회의장이 3명, 여야가 각 4명씩 추천하도록 돼 있고, 특조위는 불송치나 수사 중지 사건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했고, 특조위원 중 7명을 야권 성향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한 것에 반발해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했다.

유가족들은 정부·여당의 거부권 결정에 반발해 왔다. 유족들은 지난 18일 삭발투쟁을 시작으로 삼보일배, 특별법 공포 촉구대회를 열었고, 29일에는 이태원에서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1만5900번의 오체투지 삼보일배를 하며 특별법 공포를 호소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종교인들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용산구청을 지나 대통령실 방향으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 공포를 촉구하는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연합]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특별지원책을 함께 발표하며 후속조치에 착수했다. 유가족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 전에 재정적·심리적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이다. 또한 이태원참사 피해지원위원회를 구성하고, 추모공간도 추진한다.

다만 유가족들은 정부의 배상안에 대해 “유가족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일”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이날 SBS 라디오 ‘김태훈의 정치쇼’와의 인터뷰에서 “(유가족들이) 지난 1년 동안 단 한 번도 배상문제를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던 것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거부권 행사를 위한 여론 물타기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발해 삼권분립의 헌정질서를 무력화했다며 비판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아내의 범죄 의혹을 덮는 수단으로 전락시킨 대통령이 참사의 진실마저 가로막는다면, 최소한의 인간성과 도덕성도 없음을 만천하게 공표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미 국회로 재의요구가 넘어간 쌍특검법과 함께 이태원특별법까지 묶어 설 연휴 이후에 재표결을 하는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정치’에 대한 비판 여론을 4월 총선 이슈로 이어가면서 여당의 공천 과정에서 발생할 이탈표를 계산하고 있다. 헌법과 국회법상 대통령의 재의요구를 받은 법안에 대한 재표결 시점에 기한은 없다. 재표결에서 재적 의원 과반수가 출석하고 출석 의원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재의결은 무기명 투표로 치러진다.

윤 대통령이 이번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취임 후 다섯 번째, 총 9건의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 5월 간호법 제정안, 12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른바 ‘노란봉투법’)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상 ‘방송 3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올해에는 지난 5일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별검사법(이상 ‘쌍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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