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 ‘이태원 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안 의결
정부가 30일 오전 10시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면, 정부는 헌법상 대통령 권한으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국회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하게 된다.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안은 핼러윈을 앞둔 주말이었던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벌어진 압사 사고의 책임자 처벌을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법안으로,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특조위 구성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고, 재탕, 삼탕, 기획 조사 우려가 있다”며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지난 18일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한 총리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경찰에서 500명이 넘는 인원으로 특별 수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했고, 검찰에서도 보완 수사를 실시했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조사에도 성실히 임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참사의 원인과 대응·구조·수습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이 밝혀졌고, 현재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한 총리는 법안에 대해 “검·경의 수사 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명확한 근거도 없이 추가적인 조사를 위한 별도의 특조위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희생자와 유가족, 우리 국민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한 총리는 또 “법안에 따라 특조위는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는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했다. “위원회를 구성하는 11명의 위원을 임명하는 절차에서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상당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한 총리는 “진정으로 유가족과 피해자,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 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정부도 적극 수용할 것”이라며, “여야 간에 특별법안의 문제가 되는 조문에 대해 다시 한 번 충분히 논의해주기를 요청한다”고 했다. 피해자와 유족에게는 “조속히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재정적, 심리적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안타까운 희생을 예우하고 온전히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회는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본회의에서 다시 표결에 부칠 수 있다. 표결 시점은 국회의장이 정한다. 표결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면 대통령은 법안을 다시 거부할 수 없고 법률로 공포해야 한다. 부결되면 법안은 폐기된다. 국회의장이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5월 말까지 법안을 표결에 다시 부치지 않는 경우에도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윤 대통령이 지난 5일 먼저 거부권을 행사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이른바 ‘쌍특검’ 법안들도 국회로 돌아와 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쌍특검 법안들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오는 4월 총선이 임박한 시기에 한꺼번에 표결에 부쳐, 윤 대통령이 이 법안들을 한 차례씩 거부했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환기시키려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안,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른바 ‘노란봉투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이른바 ‘방송 3법’)과 쌍특검 법안 등 8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 가운데 쌍특검 법안을 제외한 6개 법안은 재의결에서 부결돼 폐기됐다. 여당 국민의힘이 재석 298석의 3분의 1이 넘는 113석을 갖고 있어, 쌍특검 법안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재의결에서 가결되려면 국민의힘에서 이탈표가 나와야 한다.
다음은 한 총리의 관련 발언 전문.
한덕수 국무총리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3개월이 지났습니다.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젊은 청춘들이 불의의 참사로 유명을 달리했던 그날의 슬픔이 아직도 우리 가슴속에 먹먹한 충격과 아픔으로 남아있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여전히 고통을 겪고 계신 유가족과 피해자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가 우리 사회에 남긴 아픔과 상처를 무겁게 통감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는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사고 수습과 후속조치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국민께 약속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여간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부단히 노력하였습니다.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경찰에서 500명이 넘는 인원으로 특별수사를 진행하여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였고, 검찰에서도 보완수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정부는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조사에도 성실히 임했습니다. 이를 통해 참사의 원인과 대응‧구조‧수습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이 밝혀졌고, 현재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안’이 지난 1월 9일 야당 단독으로 통과되어 정부에 이송되었습니다.
특별법안은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추가적인 조사를 실시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간 검·경의 수사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명확한 근거도 없이 추가적인 조사를 위한 별도의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우리 국민께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칫 명분도 실익도 없이 국가 행정력과 재원을 소모하고, 국민의 분열과 불신만 심화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조사위원회가 운영되어야 한다면, 이는 모든 법률이 그렇듯 헌법 질서에 부합해야 합니다. 진상 규명 조사 등 막중한 권한에 상응하는 공정성과 중립성도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법안에 담긴 특별조사위원회는 그 권한과 구성에서부터 이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 법안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는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소지가 큽니다. 위원회를 구성하는 11명의 위원을 임명하는 절차에서도 공정성과 중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상당합니다.
이태원 참사는 유가족과 피해자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헌법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이번 특별법안을 그대로 공포해야 하는지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으로 유가족과 피해자 그리고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 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정부도 적극 수용할 것입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여야 간에 특별법안의 문제가 되는 조문에 대해 다시 한번 충분히 논의해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직후, 피해자들의 아픔을 달래고 다시는 유사한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가용한 정책 자원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약속드린 바 있습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이 약속을 전심전력을 다해 지켜나갈 것입니다. 안타까운 희생을 기억하고, 우리 사회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조금도 흔들림없이 기울여나가겠습니다.
정부는 유가족과 피해자 여러분의 요청사항에 귀 기울이며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유가족과 피해자께서 조속히 일상을 회복하실 수 있도록 재정적, 심리적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안타까운 희생을 예우하고 온전히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도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0·29 참사 피해 지원 위원회’를 조속히 구성하여 내실있는 지원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분들과 그때의 여전히 고통을 겪고 계신 피해자 여러분께 마음 깊이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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