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클라스는 영원하다'…전신마비 극복한 더크로스, 리메이크 3곡도 발매 계획 [김기자의 문화이야기]
AI 도움 없이 전곡 녹음…"팬들의 옛 향수 건드리겠다"
김혁건 "세월 지나도 변하지 않아…초심 잃지 않을 것"
이시하 "'쟤네도 했는데 우리가 왜 못해?' 더크로스 보고 힘 얻으면 보람"
'Don't Cry (울지 마세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노래가 떠오르십니까?
해외 팝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전설의 디바 마돈나가 노래를 부른 'Don’t Cry For Me Argentina (1996년)'를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세계적인 뮤지컬 거장인 앤드류 로이드 웨버(작곡)와 팀 라이스(작사)가 함께 만든 아름다운 명곡으로, 뮤지컬 <에비타>의 넘버이죠.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노래방을 즐겨 갔던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락밴드 더크로스의 'Don't Cry (2003년)'를 바로 떠올릴 겁니다. 더크로스의 데뷔곡이지만 지금도 노래방의 인기 차트에 있고 힘이 있는 목소리가 특징인 히트곡입니다.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 And then I cry for you. 이 밤 지나면 이젠 안녕. 영원히~"
설령 노래 제목을 몰랐던 사람들일지라도 이 가사를 보고 음악의 후렴구를 듣게 되면 나이를 불문하고 "아 그 노래?"라고 외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요.
국내 최고로 꼽힐 정도로 듣기에도 편안한 아름다운 음색의 '초고음'을 자랑하는 김혁건이 노래를 불렀고, 작곡과 작사 능력이 탁월한 이시하가 작사와 작곡을 한 곡입니다.
김혁건이 12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고 전신마비 판정을 받으면서 한동안 그의 노래는 듣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재기하려는 꾸준한 노력 덕에 지난해부터 그의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게 됐는데요. 2인조 그룹 더크로스를 만나 근황과 올해 신곡 소식을 들었습니다.
불법 유턴을 하는 차량에 부딪혀 목 아래로 전신 마비가 된 김혁건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다시 음악입니다. 노래를 좋아한 아들에게 아버지는 다시 노래하기를 권유했고, 우연히 배를 누르면 노래 소리가 커진단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복압기 덕에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게 된 김혁건은 2014년 스타킹(SBS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2020년 슈가맨(JTBC 프로그램)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끔씩 무대에 오른 모습을 보여주다가 슈가맨에서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무대 위에 올랐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노래하기 위해 배를 많이 누르다가 판이 갈비뼈를 많이 눌러서 갈비뼈에 금이 가고 몸에 경직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행히 김혁건은 취재진에게 "복압기는 수정·보완했고 지금은 몸도 많이 좋아졌다"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김혁건의 둘도 없는 친구인 더크로스 멤버 이시하는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서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이시하는 "매번 복압기를 차고 노래하다보니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라 몸에 무리가 간다"며 "그렇지만 신곡 작업은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픔을 이겨내고 지난해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장수 락밴드 더크로스가 준비 중인 신곡은 리메이크 3곡입니다. 김혁건은 MBN 취재에 "'당신을 위하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별의 간주곡'이라는 곡으로 팬들의 옛 향수를 건드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의 더크로스의 곡을 올해 버젼으로 새로 편곡해 내놓을 예정이고 녹음도 거의 마쳤다는 설명입니다. 보컬 김혁건이 더 성숙해진 목소리로 모든 노래를 직접 불렀습니다.
절친한 둘은 농담을 하며 장내의 웃음도 이끌어냈습니다. 김혁건이 "더크로스의 곡이지만 최신 스타일"이라고 설명하면 이시하는 "'최신'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옛날 사람이라고 방증하는 것 같다"며 "요즘 '갬성'('감성'을 뜻하는 신조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0주년을 맞아 더크로스는 앞서 지난달에 '너에게 닿기를'과 '바람의 시'라는 곡도 발매했는데요. 두 곡은 모두 김혁건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담고 있습니다.
김혁건은 "(사고를 당한 이후에) 헤어진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곡들"이라며 "그렇지만 그 친구가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크고 그 친구로부터 제가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고 말을 하는 가사 내용"이라고 밝혔습니다.
멤버 이시하도 김혁건이 평소에 생각나는 대로 한 구절, 두 구절씩 써두었던 메모가 두 곡의 창작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바람의 시'는 20년을 반추하는 곡이라면, '너에게 닿기를'은 향후 우리의 음악이 어때야 할지를 반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곡이 다른 점이 있다면 '바람의 시'는 더크로스가 원래 부르던 스타일의 곡이라 김혁건의 몸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았다면 '너에게 닿기를'은 더크로스가 하지 않았던 장르물이고 멜로디도 빨라 혼자 부르기가 버거운 노래라는 점입니다.
더크로스는 "'너에게 닿기를'은 AI와도 부르는 것도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치고 받는 형태로 갈 수 있겠다' 싶어서 처음부터 멜로디를 쉼표 없이 몰아치게 썼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곡으로 AI와 듀엣 무대를 시도한 이유는 사고 이후 김혁건의 폐활량이 일반인에 비해 월등하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압기를 차면 예전처럼 고음을 낼 수 있지만, 몸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큰 목소리로 노래를 1분 이상 부르기가 아직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최근 촬영한 노래 영상들도 이러한 폐활량의 한계가 있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곡을 만들어내겠다는 목표도 있기 때문에 여러 차례 나눠서 녹음한 결과물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유일하게 아쉬워 한 것은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쉽지 않단 점입니다. 그 아쉬움을 김혁건의 20년치 음성을 학습한 AI와 파트를 나눠 가며 부른 듀엣 무대가 달래줬습니다. 신곡 '너에게 닿기를'도 그렇게 관객 앞에서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AI와 협업 무대를 한 김혁건은 한계를 느꼈지만 만족도 그만큼 컸습니다. 김혁건은 "AI 음성 작업을 할 경우, 고인이 된 분들은 목소리가 그대로 멈춰 있지만 제 목소리는 계속 변하니까 그런 부분이 굉장히 힘들었다"면서도 "그래도 만족스러웠다"고 답했습니다.
이시하도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무대 위에서 건반을 칠 때는 혁건이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이 무대에서 본 풍경이었는데 20대의 혁건이가 AI로 바뀌어서 무대 위로 걸어나오는 모습을, 제가 20대 때 보던 모습을 보니까 제게 굉장한 위로가 왔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AI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더크로스는 입을 모았습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이시하는 "부족해진 폐활량이 라이브를 할 때 늘 불안한 부분이었는데 AI와 라이브를 하는 것이 조금 더 간편해진다면 '우리 같은 팀은 굉장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면서도 아직 AI와 '라이브'를 하려면 상당한 장비가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김혁건도 현재로서는 AI를 활용한 녹음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I 음성이 자신의 마음에 쏙 들지도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AI 음성을 수백 번, 수만 번 다시 재생해서 김혁건의 목소리와 꼭 맞는 것을 발췌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설명입니다.
사지 마비 장애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명곡 꾸러미를 들고 찾아온 더크로스는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합니다. 누리꾼들이 입을 모아 더크로스의 무대는 아름답고 감동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가운데, 더크로스에게 노래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김혁건은 "노래하는 게 행복하고 좋아서 노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제 노래를 듣고 용기를 얻었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제가 더 용기 얻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가족들과 손을 내밀어준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 덕에 노래하는 것 같다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이시하는 "음악이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이 됐고 인생이 됐다"며 "혁건이랑 AI 콘서트를 하면서 오랜만에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꼈는데 바람이 있다면 저희 무대를 보시는 분들도 '내가 살아있구나'라고 느끼시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슬픈 이야기나 힘든 이야기보다 웬만하면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다는 더크로스.
이시하는 "언젠가 (저희가) 나이를 먹고 '쟤네(더크로스)도 했는데 우리가 왜 못해?'라는 (힘을 얻어가는) 그런 것을 훈장으로 가져갈 수가 있다면 음악을 한 보람이 너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김혁건도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라 가사 내용처럼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같은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는 더크로스가 되겠다"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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