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록 "돈키호테처럼 낭만 있게 '경록절' 밀고 나갔죠"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무대에서 제 음악만 하면 되던 제가, '경록절'이라는 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많이 배웠죠. 돈키호테처럼 재미와 낭만을 가지고 밀고 나갔습니다."
밴드 크라잉넛의 한경록은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홍대 인디 축제 '경록절'에 대해 "엄청난 내구력, 추진력, 끈기가 있어야 하더라"며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그는 작년 이맘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언제까지 (경록절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이제 이 일에도 '근육'이 붙어서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면 어느 정도 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한경록은 지난 2007년 작은 호프집에서 친한 음악인과 조촐하게 생일잔치를 연 것을 시작으로 매년 그의 생일인 2월 11일께 홍대 인디 음악 축제 '경록절'을 열고 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에도 온라인으로 행사를 열며 관객과의 '끈'을 놓지 않았고, 어려운 시기 축제를 이어간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한경록이 꺼내 든 '돈키호테'라는 비유는 과언이 아니었다.
록 음악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거창한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재미와 낭만만 믿고 '남기는 것 없이' 대규모 인디 음악 축제를 매년 연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최백호, 이적, 양파, 크라잉넛 등 내로라하는 음악인을 앞세운 지난해 행사를 '선착순 무료'로 진행할 수 있던 것은 이러한 그의 '뚝심' 덕분이었다.
한경록은 "시간과 여유가 생긴다면 '경록절'을 세계적인 축제로 키웠으면 좋겠다"며 "홍대 인근에서 길을 막고 공연하고, 지역 주민도 함께 어울리는 자리로 만들고 싶다"고 포부도 드러냈다.
예전의 활력을 잃고 쇠퇴한 인근 신촌·이대 상권과 오버랩되자 그의 이 같은 말은 더욱 묵직하게 들렸다.
그는 "인디 문화와 공연장은 홍대를 숨 쉴 수 있게 하는 아마존 숲 같은 공기 정화 지대"라며 "그런 것이 없어지고 소비적인 가게만 생긴다면 이 지역도 금방 재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행사는 '2024 경록절 로큰롤파라다이스'라는 이름으로 30일 막을 올린다.
한경록은 인천 영종도 복합 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와 손잡고 이날 오후 1시와 7시 리조트 내 플라자와 라이브 뮤직 바 루빅에서 각각 공연도 연다.
오후 1시 공연에서는 크라잉넛, 더베인, 신유미, 유발이, 리치맨과 그루브나이스가 무대에 오르고, 오후 7시 공연에서는 크라잉넛, 노브레인, 크랙샷 등이 음악을 풀어낸다.
'경록절'이 홍대 인근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그 영역을 확장한 셈이다.
한경록은 지난 2018년 도슨트(전시 해설)를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파라다이스 측과 인연이 닿았다. 이후 지난해 미팅 자리에서 '경록절'에 대한 자기 생각을 펼쳐낸 것이 현실이 됐다고 설명했다.
"솔직히 이게 말이 되나요? 보통 사람의 생일 파티 혹은 인디 밴드의 공연이 5성급 호텔 예술품 앞에서 열린다니요. 신기하고 꿈만 같아요."
이날 공연이 열리는 파라다이스 플라자는 미술품 전시 공간 바로 앞이다. 지난해 행사에서 미술전을 함께 연 데 이어 올해도 미술과 인디 록 음악을 접목한 셈이다.
그는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것"이라며 "인디 밴드의 공연도 하나의 예술 오브제라고 생각한다. 공연장이 '미술관 같은 놀이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무대 단을 90㎝ 정도로 낮게 해서 뒤편 전시 공간도 보일 수 있게 꾸며놓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달 11∼12일에는 온라인 공연이 열리고 13일에는 홍대 무신사 개러지 개관 1주년 기념을 겸한 기획 공연이 펼쳐진다.
14일에는 '경록절'이 이미 '클래식'이 됐다는 의미의 '2024 경록절 클래식'이 진행된다. 이 자리는 음악인은 물론, 음악 산업·예술·방송 관계자들이 두루 참여하는 네트워킹 파티로 열린다.
한경록은 예년 행사와 마찬가지로 공연장에서 비어바나 등 국내 수제맥주 양조장과 함께 '2024 경록절 시그니처 맥주'를 무료로 푼다.
그는 "올해 맥주 소비 목표는 100만㏄"라고 했다. 그 양이 가늠이 안 간다는 기자에게 "무신사 개러지 3면 벽을 맥주 캔으로만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경록절'은 매년 그의 개인 회사 캡틴락컴퍼니 주최로 열린다. 담당자는 한경록 본인과 그의 매니저까지 단 두 명. 파라다이스시티와 비어바나 등 도움의 손길도 있지만 두 명이서 모든 축제의 틀을 짜다 보니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라고 했다.
한경록은 "항상 힘에 부친다. 하루에 100∼200가지를 선택해야 해서 일 하다 보면 바보처럼 '멍' 해지기까지 한다"며 "그래도 왜 하냐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답하는 그의 눈에서는 '반짝' 빛이 났다.
"인지도가 부족한 팀을 조명하고, 홍대 밴드 신(Scene)에 활력을 주고, 인디 밴드에 소속감을 주는 일이에요. 인디 밴드(크라잉넛) 29년 차 멤버로서 이 신을 위해 웃음과 희망이 될 수 있다면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도 괜찮습니다."
ts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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