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부터 AFC까지, 카타르가 축구에 진심인 이유
● 카타르, 중동 최초 메이저 축구대회 2연속 개최
● 사우디‧UAE도 선수, 구단 사들이며 축구경쟁 돌입
국토는 작지만 세계정세에 미치는 영향력은 작지 않다. 카타르는 러시아와 이란에 이어 세계 3위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원 부국이다. 석유 매장량도 세계 14위다.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국제 천연가스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다. 아라비아 반도의 수니파 왕정 산유국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의 일원이기도 하다.
카타르는 1990년대부터 중동의 미디어와 외교 중심지를 지향했다. 1996년 '중동의 CNN'으로 불리는 알자지라방송을 설립했다.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는 무장정파 탈레반, 현재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펼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정치사무소(대외협상 창구) 설치를 허가하기도 했다. 지금도 탈레반과 하마스와 관련된 중재 및 협상은 카타르 수도 도하에서 주로 진행된다. 작은 나라지만 천연가스와 중동 외교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
하지만 최근 카타르를 가장 주목하게 만드는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축구다.
중동서 축구에 가장 진심인 나라
‘2022 카타르 월드컵'만 봐도 카타르가 얼마나 축구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는 '최초'란 수식어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일단 중동 최초의 월드컵이었다.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겨울(2022년 11월20일~12월18일)에 열렸다. 하루에 두, 세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 있다는 점도 사상 최초다. 통상 월드컵은 개최국의 주요 도시에서 경기가 분산돼 열린다. 한 도시에서는 하루에 한 경기만 열린다. 이동 시간까지 생각하면 하루에 두 경기 이상을 관람하기는 어렵다.카타르는 좁은 나라인 만큼 하루에 두, 세 경기를 큰 어려움 없이 직관할 수 있었다. 현재 열리고 있는 아시안컵 경기도 하루에 두 경기 이상을 관람하는 게 어렵지 않다.
최근에는 이웃나라 사우디아라비아도 자극을 받아 축구 인프라 육성에 나섰다. 특히 국내 리그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사우디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워 지난해 여름 2023~2024년 시즌을 앞두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네이마르(브라질), 카림 벤제마(프랑스), 은골로 캉테(프랑스), 사디오 마네(세네갈) 같은 월드 스타를 대거 영입했다.
슈퍼스타 영입 전략의 원조는 카타르다. 현재 FC바르셀로나 감독을 맡고 있는 사비 에르난데스가 대표적인 예다. 사비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카타르에서 뛰었다. 그는 카타르 프로팀인 알 사드 SC의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스페인 출신으로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가비 페르난데스와 라울 곤잘레스도 카타르 리그에서 뛰었다.
상대적으로 스페인 출신 축구 선수들이 카타르에서 많이 뛰었던 것을 두고 카타르항공(카타르 국영항공사)과 카타르재단(카타르 정부가 설립한 국제 교육문화 재단)이 과거 FC바르셀로나 후원을 진행한 것을 배경으로 꼽는 경우도 많다.
카타르는 이강인이 뛰고 있는 프랑스 리그앙(리그1)의 명문 구단 파리생제르맹을 소유하고 있다.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와 킬리안 음바페의 프랑스가 맞붙은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을 놓고 카타르가 '최대 승자'란 말이 나왔다. 당시 메시와 음바페는 모두 파리생제르맹 소속 선수였기 때문이다.
카타르 사람들은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결승전에서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국왕이 메시와 음바페와 환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꼽는다. 그만큼 축구가 카타르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의미다.
GCC 국가간 '축구 전쟁'은 계속된다
카타르가 축구에 유독 관심을 두는 이유는 국가 발전 전략과 맞물려 있다. 카타르는 1990년대 중반 본격적인 개혁·개방에 나서면서부터 문화산업에 유독 관심을 가졌다. '중동의 BBC'라 불리는 알자지라방송 설립, 미국과 유럽 명문대의 캠퍼스를 유치한 교육연구 특구인 에듀케이션 시티 조성, 아랍현대미술관과 이슬람예술박물관 설립 등이 모두 '중동의 문화허브'를 지향하는 전략에서 비롯됐다.카타르보다 먼저 개혁‧개방에 나서며 '중동의 허브' 전략을 구사한 인근의 아랍에미리트가(UAE)가 중동의 금융, 물류, 교통, 관광 등의 중심지를 지향한 것과는 차별화된 행보이기도 하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대적으로 UAE가 먼저 허브 전략을 구사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주목을 많이 받았다"며 "카타르로서는 후발 주자로서 주목을 받으려고 집중 육성 분야를 UAE와 달리했고, 이 과정에서 축구를 국가 브랜드 제고 전략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카타르의 축구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이제는 다른 중동 산유국도 축구를 이용한 홍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중동 '축구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사우디도 유명 선수 유치뿐 아니라 축구를 이용한 국가 홍보 활동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2021년 사우디 국부펀드(PIF)가 주도하는 컨소시움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구단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했다. 사우디는 '2034 월드컵' 유치도 눈앞에 두고 있다. 경쟁자였던 호주는 유치 경쟁 포기를 선언했다. 사실상 중동에서 두 번째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는 것.
UAE도 상황은 마찬가지. 아부다비 왕실 구성원인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EPL의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했고, 두바이는 아스널을 오랜 기간 후원하는 등 '축구 마케팅'에 나름 공을 들여왔다. GCC 국가들 간의 치열한 경쟁의식을 감안하면 UAE도 축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 가능성이 높다. 역시 석유 부국이지만 사우디, 카타르, UAE에 비해 조용했던 쿠웨이트도 언제든지 축구 투자에 동참할 수 있다.
삼성전자 중동법인장(상무)과 KOTRA 리야드관장을 지낸 윤여봉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은 "GCC 국가들 간의 축구 경쟁은 젊은 리더들의 등장과 성장, 오랜 기간 이어져온 국가 간 자존심 대결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세형 채널A 기자·前 동아일보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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