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오렌지? 짙은바다색? 22대 국회까지 물들일 ‘제3지대 정당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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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쓸만한 색깔이 없어요. 초록색, 노란색, 남색이나 파란색 모두 이미 사용하는 데가 있잖아요. 남은 건 검정색뿐인데 이걸 쓸 수 있겠어요?”
‘남아있는 정당의 상징색이 없다.’ 제3지대 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한 실무진의 푸념입니다. 4·10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정당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색깔’로 신당의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각인시켜야 하는 실무진의 고민이 깊어보입니다.
정당을 새로 만들거나 기존 정당이 쇄신을 모색할 때 정치인들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게 ‘정당색’입니다. 정당 이미지(PI, Party Identity)와 더불어, 유권자를 가장 먼저 시각적·직관적으로 사로잡아 이 당의 ‘느낌’을 전달하는 요소가 색깔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국민의힘 전신인 한국 보수 정당들은 대체로 파란색을 정당색으로 사용했지만, 2012년 2월 새누리당이 출범하면서 이를 버리고 빨간색을 전면 채택했습니다. 조동원 당시 홍보기획본부장은 빨간색이 “열정을 상징한다”며 정당색 변경 이유를 설명했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디도스 공격 연루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등으로 벌집이 된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재정비·쇄신했다는 이미지를 전파하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정당들은 초록색이나 노란색을 사용하다, 2013년 9월부터 파란색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대선 패배 뒤인 이듬해 5월 민주통합당에서 민주당으로 당명을 바꾼 데 이어, 같은해 9월 중앙당사를 서울 영등포에서 여의도로 옮기면서 정당색도 바꾼 거죠. 당시 민주당은 파란색이 신뢰·희망·진취성·미래를 상징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전까지 민주당이 빨간색을 사용하지 않은 건,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레드 콤플렉스’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현재 ‘파란색 대 빨간색’으로 양분되는 거대 양당 사이를 파고들려는 제3지대 신당들로선, 이들과 차별화를 꾀하는 동시에 ‘새로움’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어떤 색이 가장 적합할지, 고심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과거에 명멸했던 정당색과 겹치지는 않는지는 필수적인 고려사항이라고 하고요.
오는 4월 총선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최대한 빠르게 당 인지도를 높이려면 강렬하거나 ‘튀는’ 색깔이 필요할 법도 하지만, 흔치 않은 색으로 정했다간 실무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다. 정당 로고와 누리집, 보도자료 양식, 펼침막과 선거운동복까지 모두 이 색을 적용해 디자인해야 하니까요.
‘베이직 민트’가 정당색인 기본소득당 관계자는 “정확히 이 색깔의 단체복을 구하는 게 어려워, 시중에 판매되는 옷 중에 그나마 가장 민트에 가까운 색을 골라요. 펼침막이나 공보물을 인쇄할 땐 우리가 의도하는 ‘쨍한’ 민트가 잘 안나와서, 미리 인쇄소 등에 가서 살펴보기도 해요”라더군요.
이번 총선을 앞두고 움직이는 신당 세력 가운데 창당 작업에 가장 속도를 내고 있는 건 개혁신당입니다. 개혁신당의 색은 ‘개혁오렌지’입니다. 양당 체제에 지친 유권자들에게 ‘젊다’ ‘역동적’ ‘미래지향적’ ‘대담성’을 떠올리게 하려는 취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애초 개혁신당 정당색은 남색이 될 뻔했다고 합니다. 유권자에게 신뢰감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차분하고 안정적인 이 색이 한때 후보에 올랐다는군요. 하지만 허은아 최고위원 등이 주황색을 강하게 주장했다고 합니다.
“선거 현장을 떠올려보면 돼요. 파란색은 민주당이 선점했잖아요. 아마, (그와 같은 계열인 남색으로) 선거복을 입으면 누가 어느 당인지 더 구분이 쉽지 않을 거고요. 눈에 잘 띄는데, 대중적이고 익숙한 색으로 주황색만한 게 없죠. 택시, 하물며 김밥집도 주황색 간판을 쓰잖아요. 총선이 치러지는 계절인 봄에도 잘 어울리고요. 그래서 네이비 말고 주황색을 쓰자고 설득했죠.”(허은아 최고위원)
이번 4·10 총선을 앞두고는 여러 신당들이 ‘제3지대 통합 정당’을 외치는 탓에, 각자 ‘임시 정당색’을 쓰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민주당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새로운미래’(가칭)와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 등의 ‘미래대연합’(가칭)은 파란색 계열인 ‘짙은 바다색’, ‘스카이블루색’을 각각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새달 4일 ‘개혁미래당’(가칭)으로 합칠 예정인데, 아직 어떤 색을 쓸지는 정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금태섭 전 의원 등이 이끄는 ‘새로운선택’은 보라색과 민트색을 쓰고 있는데, 다른 신당 세력과 통합을 모색 중이라 이 역시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제3지대 정당의 한 실무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누리집이나 보도자료 등에 필요해 정당색을 쓰고는 있지만) 지금 쓰는 색이 확정된 건 아니에요. 앞으로 다른 당과 통합될 수 있으니까, 지금 단계에서 정당색을 확정하는 게 큰 의미가 없죠.”
사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당색을 ‘개혁오렌지색’으로 정하기 전에, 지금은 합당 선언을 한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에게 이 색을 사용해도 될지 양해를 구했다고 합니다. 한국의희망의 정당색이 주황색과 남색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대표의 선택은 두 당의 통합을 염두에 둔 일종의 ‘스포일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임시’인 이 여러 색깔들 가운데 과연 어떤 색이 이번 총선에서 끝까지 남을까요? 아니면 어떤 색이 어떤 색과 어우러져 또 다른 색깔을 만들어낼까요? 아직은 “제3지대 신당들이 여러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유권자에게 대안으로 인식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하다. 정당 안팎으로 통합을 모색하거나 마땅한 정책적 비전을 세우기에 쉽지 않아 보인다”(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망도 적지 않지만, 과연 어떤 색깔이 4월10일까지 앞으로 70여일의 여정을 마치고 22대 국회를 물들일지, 지켜볼 일입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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