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가둬라? 일상 뒤흔든 사건들에도 '찬반' 팽팽한 이유
[편집자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을 습격한 만 15세 소년은 정신질환이 의심돼 응급입원 조치됐다. 2023년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도 정신질환과 무관치 않다. 국민의 일상이 위협받고 있지만 사법입원제 도입 등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 개선은 감감무소식이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 사건의 피의자가 정신질환 의심으로 응급입원 조치되면서 사법입원제도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환자 가족과 의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당사자 의사에 반한 인신 구속은 그 자체로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사법입원제도란 정신질환이 악화해 다른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당사자와 보호자의 동의 없이 법원의 판결에 의해 입원 치료를 받게 하는 제도다. 미국의 대부분 주와 독일, 프랑스 등에서 법원 심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강제 입원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보호 입원 △행정 입원 △응급 입원 등 3가지만 허용된다. 배 의원 피의자는 경찰과 의사 동의에 따라 3일 입원하는 응급 입원 조치가 취해진 상태다.
사법입원제도는 정신질환자의 가족과 의사에게 부과된 책임을 국가가 덜어주자는 취지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2018년 12월 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지난해 경기 성남 분당 서현역 쇼핑몰 흉기 난동 사건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해 8월 사법입원제 관련 논의를 위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가동됐다. 법무부는 당시 "현행 제도가 가족이나 의사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면이 있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며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사법입원제 도입에 찬성하는 쪽은 사법 기관을 통해 정신질환자의 입원 여부가 결정되면 일반 시민뿐 아니라 환자 인권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강제 입원) 판단 기준을 세우기 위해 의료계 견해를 원칙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70%는 의료진의 판단, 30%는 사건의 특성 등을 고려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의 중요성과 형사재판 진행 일정에 따라 입원제도를 적절히 마련해야 한다"며 "일부에서 인권 탄압의 지적이 있더라도 피의자의 사정과 재판 일정을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절한 범위에서 공동의 의견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인신을 구속한다는 점에서 기본권 침해 논란이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오히려 정신질환자에 대한 혐오와 교화 가능성 차단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해성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사법은 최종적인 사안이고 사법자가 개입하면 강제적 성격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 자체로 기본권 침해 소지가 크다"며 "차라리 정신질환 의심이 될 경우 어릴 때부터 국가가 치료를 돕고 모니터링하는 데 사회적 비용을 들이는 게 낫다"고 밝혔다.
박은하 용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결국 치료 목적이 아닌 사회에서 격리하겠다는데 방점이 있어 정신질환자에 대한 오해가 심화할 수 있다"며 "지금도 행정부 차원에서 강제 입원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나. 사법부가 결정 과정에 의견을 낼 순 있겠지만 최종 결정권을 갖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로마법은 '광기' 있는 사람을 수용소에 감금해 도덕훈련을 시켰고 19세기 정신의학도 이 맥락에서 태동했다. 미국에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들의 치료 경험과 열악한 치료 환경이 폭로되면서야 '광기' 있는 사람을 배제하는 흑역사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정신질환자의 시민권 운동은 활발해졌지만 비자발적 입원이 필요한 환자가 적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나라마다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한국과 차이점이 보인다.
'법무사' 675호에 실된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사법입원 인프라 부족, 거부감 없는 입원·치료가 최선' 논문을 참고하면 강제입원 절차에 법원이 개입하는 방식은 국가마다 다르다.
독일은 강제입원 전 지방법원(Amtsgericht)의 판결을 받아 입원시킨다. 법원 결정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급할 땐 정신과 의사가 환자를 진단해 입원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입원 다음날까지 법원의 결정이 없으면 퇴원시킨다. 법원은 본안판결 전 가처분으로 강제입원을 허락할 수 있다. 전체 정신질환 환자의 평균 입원일 수는 26.5일(2020년 기준)이지만 강제입원은 2주를 넘지 않는다.
미국은 주마다 법원의 개입 방식이 다르다. 입원 단계부터 개입하는 주는 법으로 단계마다 입원 기간을 정한다. 캘리포니아는 정신과 의사가 필요한 경우 72시간 응급입원시키고 계속 입원하려면 법원에 신청해 4일 내 14일간 강제입원을 유지할 수 있다. 추가 치료가 필요하면 14일간 연장 입원을 결정하며, 최장 180일까지 강제입원이 가능하다. 미국의 평균 입원일수는 6.4일이다.
영국은 정신병원의 장이 강제입원을 결정할 수 있다. 대신 환자가 '정신건강재심위원회(현재 제1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의신청 결정에 대해서도 상급위원회(upper tribunal)에 항고할 수 있다. 제1위원회는 법률가가 위원장이고, 1명의 정신과 의사, 1명의 다른 분야전문가로 구성된 3인 위원회가 대등한 지위에서 결정한다.
호주도 영국과 유사하지만, 강제입원 여부를 '정신건강심판위원회'에서 결정한다. 프랑스는 정신병원의 장이 강제입원을 결정하지만, 인신보호법관에게 이를 통보해야 한다. 인신보호법관은 언제든 병원을 방문해 조사할 수 있고, 정신질환자도 언제든지 그 법관에게 부적법한 강제입원이라는 이유로 퇴원을 소구할 수 있다.
한국은 강제입원 이후 1개월 이내 적법성을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판단하고, 계속 입원은 '정신건강심사위원회'에서 심사한다. 강제입원된 환자는 언제든지 인신보호법에 따라 지방법원에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제도적 틀 자체는 영국과 프랑스의 제도를 절충한 셈이다. 그러나 강제입원 자체가 까다롭다.
현행법상 환자가 입원을 거부하면 보호의무자 2명, 국공립의료기관에 소속된 정신과 의사 1명을 포함한 전문의 2명의 동의가 있어야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 엄격한 요건 탓에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제 때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된 정신질환자가 강력 범죄를 일으키는 일이 잇따르자 정부가 사법입원제를 검토 중이다.
그러나 현장 여건은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정신과 의사 수가 매우 적고(영국 1만3130명, 한국 4404명) 정신병상은 반대로 몇 배 많다(영국 2만3379석, 한국 6만4188석). 평균입원일 수는 200일이 넘는다. 10년 이상 입원한 환자도 1만5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신질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평소 '지원'과 '치료'를 병행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특정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필요성을 미리 알기가 어렵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시설 입소자 중 첫 사망자도 정신병원에 20년 동안 입원한 조현병 환자였다. 약물 투여 이외의 치료는 되지 않고 수십년간 감금될 수 있다는 우려에 아예 치료 자체를 거부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제철웅 교수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의대 정원을 늘려 선진국처럼 지금보다 3배 정도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외래치료를 하고, 정신건강복지센터장급 급여를 받으며 현장을 뛰어야 한다"며 "법학전문대학원도 정원을 늘려 독일처럼 2만여명의 법관 중 강제입원만 전담하는 판사가 1000여 명 정도 돼야 한다"고 짚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해법이다.
제 교수도 이 때문에 사법입원 인프라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선 거부감 없는 입원과 치료 환경을 조성하는 게 차선이라고 제안한다. 장철영 대경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정신질환자가 보호관찰과 의료기관을 이용하면 해당정보를 경찰과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신질환자 예방·관리를 책임지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인력과 예산증대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정신 질환자의 범죄 예방 및 대응 방안 : 조현병 환자를 중심으로', 2020년 논문).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이지현 기자 jihyunn@mt.co.kr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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