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앞세운 ‘스트롱맨’ 득세… 세계 각국 정교분리 원칙 ‘흔들’[Global Window]

황혜진 기자 2024. 1. 3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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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Window - 위협받는 ‘세속주의’ 기치
독재·장기집권 노리는 세력들
종교로 지지기반 구축 공고화
印 모디, 힌두 민족주의 내세워
대규모 힌두사원 개관식 참석
‘親이슬람’ 튀르키예 에르도안
지지세력 덕 위기 넘기며 재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2일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에서 열린 힌두교 라마신 사원 개관 행사에 참석해 손을 모으고 인사하고 있다. EPA

20세기 들어 세계 각국에서 보편적 원칙으로 자리 잡았던 세속주의가 최근 들어 위협받고 있다. 종교 원리주의를 앞세운 정치 세력의 대두에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세속주의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종교 원리주의와 세속주의 간 뿌리 깊은 갈등을 넘어 독재와 장기 집권을 노리는 일부 ‘스트롱맨’들이 이를 교묘하게 부추기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확실한 지지 기반을 구축하고 내부 갈등과 경제 위기 등에 대한 반발을 덮어버릴 수 있는 방어기제로 종교가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디 총리, 3연임 성공하면 인도 국호·공용어 바뀔까=세속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인도다. 인도는 1947년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후 헌법에 세속주의를 원칙으로 규정한 국가다. 당시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는 정치에서 민족과 종교를 배제하고 세속주의를 추구하며 다양한 종교의 국민을 묶으려 했다. 하지만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인도인민당(BJP)이 2014년 집권한 후 상황은 달라졌다.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를 앞세워 다수의 힌두교도를 우선시하고 이슬람 신자 및 소수 민족을 배제하는 노선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14억 명의 인구 중 80%는 힌두교, 14%는 이슬람 신자다.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디 총리는 지난 22일 북부 아요디아의 이슬람 사원(모스크)이 있던 곳에 새롭게 들어선 힌두교 사원의 개관식에 참석했다. 이 부지엔 16세기 초 세워진 모스크가 존재했지만 1992년 힌두 광신교도가 모스크를 파괴했다. 이를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충돌하면서 최소 2000명이 숨졌다. 아요디아는 지금까지도 인도 최대의 종교 분쟁지로 꼽힌다. 그런데도 이곳에 힌두교가 가장 숭배하는 ‘라마’ 신을 모신 사원이 들어선 것이다. 모디 총리는 이날 개관식에 참석해 라마 신상(神像)의 봉헌식을 직접 주재했다. AP통신은 “힌두교 사원 개관식이 대규모 국가 행사로 변질됐다”며 “사실상 모디 총리의 선거 운동이 시작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모디 총리가 오는 4월 총선에서 승리해 3연임에 성공하면 힌디어를 인도의 단일 언어로 지정하는 방안을 재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명을 ‘바라트’(Bharat)로 바꾸겠다는 모디 총리의 꿈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바라트는 힌두교의 토대가 되는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유래된 단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해 2월 8일 강진 피해가 난 카흐라마나스를 방문해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100년 전통도 허물은 튀르키예=2003년부터 튀르키예를 철권통치하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옛 오스만제국과 이슬람 전통을 복원하려 애쓰고 있다. 지난해 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맞은 튀르키예는 이슬람교를 믿는 국민이 대다수다. 하지만 헌법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세속주의가 명시돼 있다. 국부(國父)이자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가 근대화를 위해 건국 이념을 세속주의로 삼았다.

하지만 수니파 신자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3년 총리로 집권한 후 여성의 히잡 착용, 공공장소에서 애정 표현 금지, 주류 판매 규제 등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을 폈다. 동로마 제국의 문화유산이며 박물관이었던 ‘아야 소피아’도 2020년엔 이슬람 사원으로 바꿔 버렸다. 장기 집권을 위해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 과정에서 세속주의를 고수한 군부와의 갈등이 있었지만 2016년 군부 쿠데타를 진압하고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경제위기와 지난해 2월 발생한 대지진 사태 수습 실책 위기도 이슬람 지지 세력에 힘입어 넘기며 지난해 5월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임기는 2028년 끝나지만 재임 중에 조기 대선을 실시해 승리할 경우 2033년까지 임기가 연장돼 사실상 종신 집권을 할 수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지상작전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시오니즘과 복음주의에 흔들리는 이스라엘·미국=지난해 10월부터 계속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의 단초가 시오니즘(유대 민족주의)을 앞세운 이스라엘의 정치 상황에서 일부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22년 시오니즘을 내세우는 극우 정당과 연합해 집권에 성공했다. 이후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 기조를 유지하면서 하마스를 자극했다는 것이다. 특히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유대교 초정통파인 ‘하레디’(haredi)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다. 이들은 유대교 경전 ‘토라’를 공부하며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는 종파다. 영화에서 유대인을 묘사할 때 흔히 등장하는 하얀 셔츠·검은 정장·챙 모자를 쓰고 수염과 옆머리를 길게 기른 사람들이 하레디다.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3%가량을 차지하는 하레디는 군 복무를 면제받고 있어,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6년 1월 아이오와주 퍼스트 크리스천 교회 목사로부터 안수기도를 받고 있다.AP 연합뉴스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열리는 공화당 경선에서는 복음주의 교인들의 표를 얻기 위한 선거전이 한창이다. 대통령이 취임 선서 때 기독교 성서에 손을 얹는 관례가 있지만, 미국도 국교는 인정하지 않는 세속주의 국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달 중순 치러진 공화당 첫 경선인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압승한 것은 아이오와주의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들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복음주의 단체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지지도 선언했다. 폴리티코는 “이번 대선에서 복음주의자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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