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나올 것 같아요” 흉물 돼버린 농촌 폐주유소
철거비용만 1억원 이상…해결책 없어
농촌 주민들 “정부가 활용방안 찾아야”
농촌 주유소 폐업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폐업비용 부담이 큰데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폐주유소가 쓰레기더미로 변하거나 심지어 범죄 현장으로 악용되는 사례까지 나온다. 주유소가 문을 닫는 것은 ‘수송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농촌 주유소 부지를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예컨대 폐업 주유소를 ‘공공 에너지충전소’로 새단장해 농촌의 관계인구를 늘리는 식이다.
◆농촌 경관 크게 해치는 폐업 주유소=“저기 보이는 주유소는 장사 안한 지 5년은 족히 넘었을걸요. 안에 들어가 봐요~아주 흉물스럽죠. 밤에 보면 꼭 귀신 나올 것 같다니까요.”
강원 화천군 상서면의 한 마을. 읍내에서 차로 30분가량 굽이굽이 산길을 달려 도착한 이곳엔 문을 닫은 주유소의 각종 시설이 덩그러니 방치돼 있었다. 주유기는 잔뜩 녹이 슬었고 부서진 주유 노즐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천장 구조물 일부는 내부 철골까지 그 속을 훤히 보이는 채였다. 사무실 안은 오래전 비운 듯한 모습이었다. 각종 잡동사니 위엔 희뿌연 먼지가 내려앉았다.
상서면의 60대 마을주민 정금례씨는 “저렇게 오랫동안 운영되지 않는 주유소가 버려져 있으니 마을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워졌다"면서 “주민 삶의 질에도 악영향을 미칠까봐 걱정이 앞선다”이라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전국 주유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 주유소는 2017년 폐업했다. 영업을 접은 지 무려 7년이 지났건만 주유소 시설은 철거되지 않았다.
상서면엔 폐업한 주유소 외에도 계속 휴업 신고를 이어가는 곳도 있다. 명목상으론 휴업이지만 수년째 운영을 멈췄다. 이곳 역시 사실상 폐업한 것과 마찬가지로 시설물이 그대로 방치된 상태다.
◆문닫은 주유소에 농촌 주민 불편 가중…쓰레기장으로 변하기도=농촌 주유소가 사라지고 그대로 방치되는 현상은 비단 화천군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횡성군은 2년새 전체 주유소의 5분의1이 사라졌다. 2021년 34개였던 것이 27개로 급감했다. 경남 창녕은 55개에서 49개로 줄었다. 전북에서는 군단위 가운데 완주의 감소세가 가장 뚜렷했다. 2년만에 71개에서 66개로 감소했다.
폐주유소가 쓰레기장처럼 변하는 곳도 쉽게 발견된다. 이른바 ‘사소한 문제를 방치하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원주시 신림면의 한 폐주유소에는 각종 생활 쓰레기가 난무하고, 홍천군 서석면의 한 휴업주유소엔 못쓰게 된 가구와 차량이 방치된 채로 놓여 있다.
신림면 폐주유소 주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소연씨는 “사람들이 계속 오가는 곳인데 갈수록 쓰레기 더미가 쌓이고 있다”라면서 “누구 하나 폐주유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질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폐주유소는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수년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경남 창원 골프장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범죄자가 40대 여성을 납치해 고성의 한 폐주유소에서 살해한 뒤 장소를 옮겨 시신을 유기했다.
농촌의 폐주유소 문제는 주민 불편으로도 이어진다. 가령 1820㎢ 면적에 48개 주유소가 있는 홍천군의 경우 100㎢ 당 주유소는 2.6개다. 반면 서울(605㎢, 주유소 440개)은 72.7개로 약 28배에 이른다. 주유소 한개가 없어졌을 때 주민 불편 측면에서 도시보다 농촌이 훨씬 타격이 크다는 뜻이다.
상서면 마을주민 안선애씨(52)는 “주유소가 마을에서 20~40분 떨어져 있어 멀리 나갈 일이 있으면 기름을 미리 채워넣어야 한다"면서 “특히 외지인은 뒤늦게 동네 근처에 주유소가 없다는 걸 알고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다반사”라고 귀띔했다.
◆철거비용만 1억원 넘게 들어…마땅한 출구전략 없어=농촌 주유소 폐업문제는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도시는 지대 가치가 높아 업종 전환이 용이한 것과 견줘 농촌은 그렇지 못해 흉가처럼 전락하곤 한다.
한 지역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서울은 주유소 대신 유명 브랜드 드라이브스루 커피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겨난다”면서 “농촌이 도시보다 해당 업종의 폐업 속도가 더딘 이유는 경쟁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출구전략을 찾지 못해 한계상황을 견뎌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농촌 주유소가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는 주장도 나온다. 전북 완주군 에너지관리팀 주유소 담당자는 “사람 구하기 어려운 농촌 주유소는 인건비도 상대적으로 더 들고, 운영시간도 단축할 수밖에 없다”면서 “접근성이 떨어지는데다, 불편하기까지 한 농촌주유소에 손님이 줄고, 경영악화로 가격을 높게 받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1억원이 훌쩍 넘는 폐업비용도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내놓은 ‘주유소 폐업을 위한 시설물 철거비용(2018)’을 살펴보면 992㎡(300평) 기준으로 6343만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토양환경보전법에 따라 주유소 주변 오염토양을 복원하는 비용만도 992㎡(300평) 기준으로 최대 2억원이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면서 “폐업하려는 주유소 상당수가 영업실적 부진을 겪고 있을 텐데 수억원이 넘는 폐업비용은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유소를 관리하는 기초 지방자치단체도 손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폐업과정에서 시설물 철거 여부, 토양정화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폐업 신고를 수리하고 있는 곳이 상당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군청 주유소 관리 담당자는 “폐주유소가 환경을 훼손하고 있다고 해도 사유지이기 때문에 ‘행정권고’ 말고는 이를 개선할 방도가 마땅히 없다”고 말했다.
◆수송에너지 전환 정책에 맞춰 문제 접근해야=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촌 주유소의 폐업 문제를 단순히 시장논리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환경부 산하 사단법인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의 김성태 협회장은 “주유소 감소는 정부의 ‘수송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이뤄지는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여기서 발생하는 ‘전환 비용’이 일방적으로 주유소 업자나 지역 공동체에 떠넘겨지지 않고 사회 전체에 분배되도록 정부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촌의 폐업주유소를 ‘공공 에너지충전소’로 변모시켜 농촌이 충전인프라에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충전소 주변 관광상품을 개발해 관계인구가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제언했다.
정부가 폐업 비용 일부를 보전해 부지 재활용을 위한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농촌형 지자체 주유소 관리 담당자는 “주유소 폐업과 부지 활용 문제는 예산 부족과 관계 법령 미비 등의 이유로 지자체가 감당할 범위를 넘어섰다”면서 “주유소 폐업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가 철거비용을 지원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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