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원죄…80년 살아온 집 잃게 된 독일인 가족

유영규 기자 2024. 1. 3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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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사지 슈피겔은 가브리엘레 리스케(83)의 가족이 베를린 교외 반달리츠에 있는 집을 유대인 단체에 무상으로 넘겨야 하는 사연을 28일(현지 시간) 전했습니다.

리스케의 집은 소송이 걸린 수천 건의 옛 유대인 재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리스케의 집을 둘러싼 소송은 1992년 제기돼 판결이 선고되기까지 20년 넘게 걸렸습니다.

리스케 가족이 생존해 있는 동안 임시로 집에 머물도록 하는 조정안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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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한 독일인 가족이 나치의 만행에서 비롯한 '원죄' 때문에 80년 넘게 대대로 살아온 집을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독일 시사지 슈피겔은 가브리엘레 리스케(83)의 가족이 베를린 교외 반달리츠에 있는 집을 유대인 단체에 무상으로 넘겨야 하는 사연을 28일(현지 시간) 전했습니다.

이 집은 리스케의 외가 어른인 펠릭스 뫼겔린이 1939년 사들였습니다.

이전 주인인 앨리스 도나트와 헬레네 린덴바움은 이곳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이들은 집을 넘겨야 했고, 아유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계약서 사본에는 거래 당사자들의 '인종'이 기록됐습니다.

나치의 상징 문양인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히틀러 만세'라는 문구도 적혔습니다.

나치 독일의 패망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연합국들은 유대인 희생자가 강제로 빼앗긴 재산을 돌려주는 법을 도입했습니다.

돌려받을 후손이 없는 재산은 1951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유대인청구권회의(JCC)가 회수해 홀로코스트 생존자 지원에 사용했습니다.

연합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던 동독 지역에서는 이같은 재산 환수 절차가 1990년 통일 이후에야 이뤄졌습니다.

리스케의 집은 소송이 걸린 수천 건의 옛 유대인 재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리스케의 집을 둘러싼 소송은 1992년 제기돼 판결이 선고되기까지 20년 넘게 걸렸습니다.

통일 직후 이 집의 가격은 20만 유로(2억 9천만 원)였지만 현재는 150만 유로(21억 7천만 원) 정도입니다.

이 집으로 이사할 때 3살이었던 리스케는 2015년 재무부로부터 집을 넘기라는 내용의 문서를 받고 나서야 집에 얽힌 역사를 알게 됐습니다.

그는 집을 지키려고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습니다.

법원은 "국가사회주의의 통치가 없었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리스케 가족이 생존해 있는 동안 임시로 집에 머물도록 하는 조정안이 논의되기도 했습니다.

리스케는 자신의 가계에도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이 있었다고 항변했지만 결국 패소했습니다.

리스케는 연방행정법원에 항소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일은 일종의 원죄이고 이제 참회할 때라며 집에 더 머무를 수 있다면 장미화단을 계속 가꾸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JCC는 동독에서만 1만 6천800건의 재산 반환을 청구해 24억 유로(약 3조 4천700억 원)를 모았습니다.

슈피겔은 유대인 배상 청구를 연구한 논문을 인용해 서독의 배상은 빨랐지만 불충분했고, 동독은 늦었지만 철저했다고 전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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