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심장약”이라더니… 러 피겨 천재 소녀, 도핑 결과 나왔다
2021년 15살이었던 러시아의 카밀라 발리예바는 ‘피겨 천재 소녀’ ‘피겨 샛별’로 떠올랐다. 4회전 점프를 자유자재로 선보이며 7주 동안 3개 대회 연속으로 세계 최고점 기록을 갈아치웠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발리예바는 올림픽 무대에서 ‘도핑 요정’으로 추락했다. 대회 초반 열린 피겨스케이팅 단체전에서 여자 싱글 쇼트·프리 프로그램을 모두 뛰어 러시아의 금메달에 일조했지만, 단체전 시상식 직전 소변 샘플에서 금지 약물(트리메타지딘) 성분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협심증 치료제 성분인 이 약물은 운동선수의 신체 효율 향상에 사용될 수 있어 2014년 금지약물이 됐다.
당시 발리예바는 트리메타지딘을 심장약으로 복용하는 할아버지와 같은 컵을 사용한 것이 양성 반응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는 자체 조사를 거쳐 ‘발리예바가 도핑 규칙을 위반했지만, 과실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세계도핑방지기구(WADA)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이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항소했다.
◇발리예바, 도핑 인정…4년간 선수 자격 정지
발리예바에 대한 결정이 약 2년 만에 내려졌다. 스위스 로잔의 CAS는 29일(현지시각) 발리예바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도핑 방지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정하고 4년간 선수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재판부는 발리예바가 약물을 사용할 당시 15세였다는 이유만으로 관대한 처분을 받을 여지가 없다고 봤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도 무효 처리됐다. 재판부는 “발리예바가 단체전 우승에 도움을 준 만큼 해당 금메달은 무효가 된다”면서 “그 이후로 발리예바가 달성한 모든 경쟁 대회의 결과도 무효로 한다”고 판시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은 2위를 차지한 미국에게 돌아가게 됐다. 은메달과 동메달은 각각 일본과 캐나다에게 돌아간다.
러시아는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는 이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이어 “우리는 러시아 선수의 이익을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며 “항소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발리예바를 공개 석상에서 옹호했다. 그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을 크렘린궁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발리예바는 작품을 통해 스포츠를 진정한 예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며 “이렇게 완벽한 경기는 약물이나 조작의 힘으로 부정직하게 달성할 수 없다”고 추켜세웠다. 정부 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도핑 결론 앞두고, 최악의 성적
발리예바는 도핑 파문이 불거진 이후에도 2022-2023시즌 러시아 국내 대회에서 꾸준히 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러시아 타타르스탄공화국 카잔에서 열린 러시아 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대회에서는 4위에 그쳤다.
발리예바에게 4위는 이례적인 성적이다. 게다가 카잔은 발리예바의 고향으로, 높은 성적을 받을 것으로 더욱 기대됐던 곳이다.
이 때문에 도핑 징계 발표를 앞두고 그가 심리적 압박 때문에 무너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발리예바가 출전한 대회에서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것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발리예바는 도핑 논란 속에서 베이징 올림픽 피겨 개인전에 출전을 강행했으나, 여러 번 넘어지는 등 실수를 한 끝에 4위에 머물렀다.
발리예바는 음악이 멈춘 순간부터 눈물을 터트렸다. 예테리 투트베리제 코치는 “왜 포기했어? 왜 싸움을 멈췄어?”라며 그를 질책했고, 발리예바는 한동안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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