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은 거절하는데 손은 받으니…서민 안방까지 들어온 명품백
이광이 | 잡글 쓰는 작가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의 ‘부글부글 끓고 있는 여론’이라는 말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바닥 민심을 알고는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을 두고 내가 자주 다니는 탁구장에서도 왈가왈부하고, 탁구 끝나고 들르는 호프집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지니 바닥에서 뭔가 끓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가부 논박의 소리가 대등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함정에 당했다”는 얘기가 좀 들리더니 요새는 쏙 들어갔다. 대신에 “말이 안 되지, 거기서 받으면 누구인들 안 받고 싶겠냐고?” 하는 소리가 판을 점령한다. 그렇게 명품 가방은 술안주가 되었다가, “자네 집은 저것 있는가?” 하는 자조와 조롱과 울화로 이어진다.
원래 사소한 문제로 비위가 상하는 법이다. ‘유지’(Yuji)로 유명한 논문 표절이나 모녀가 24억을 해먹었다는 주가조작 문제가 훨씬 중죄이기는 하나, 먹고살기 바쁜 서민 형편에 직접 닿지는 않는다. 반면 이 사건은 너무나 쉽다. 일수지갑 같은 손가방 하나 값이 한달 월급이라 분통 터지는 것이고, 갖고 싶어도 그림의 떡인데 김 여사는 떡 하고 받으니 울화통 치미는 것이다. 이 문제는 삶의 최전방에서 하루하루 고되게 사는 서민의 심사를 직접 건드리고 있다.
동영상을 보면 ‘함정’이라는 김 여사의 주장에 일리가 없지 않다. 다소 억울한 구석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본래 덫을 놓을 때는 그 앞에 먹이를 놓아두는 법이다. 먹이도 없는 덫에 여우가 걸리겠는가. 그 먹음직스러운 것을 덥석 무는 순간 덫에 걸리고, 올가미에 빠지는 것이다. 입으로는 거절하면서 손으로는 받은 그 디오르 백이 먹이였다. 검사 부인과 대통령 부인은 다르다. 전자는 개인이라 억울해할 수 있으나 후자는 만인의 본보기가 되는 자리다. 만에 하나, 그 자리에서 단호히 거절하는 동영상을 국민이 보았다면 박수를 쳤을 것 아닌가. 하물며 대통령 부인이 그것을 덥석 받았으니 장차 누구를 꾸짖을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덫에 걸린 여우를, 미끼에 걸린 물고기를 어리석다 하지, 동정하지 않는다.
‘맹자’ 첫머리에 유명한 ‘하필왈리’(何必曰利)가 나온다. 양혜왕이 “천리를 멀다 않고 걸음을 하셨는데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안을 갖고 오셨겠지요?” 하니 맹자의 일성이 “왕께서는 하필 이(利)를 말씀하십니까!”이다. 왕이 이익만 중하게 여기면 대부는 가문을 챙길 것이고, 또 사(士)와 서민은 어떻게 내 한몸 이롭게 할 수 있을까 할 것이니,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다투면 나라가 위태로워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말문이 막히게 하는 맹자의 논리가 서늘하다. 이 말은 대통령 부인이 명품 가방을 받았으니, 총리 부인인들 그것을 받고 싶지 않을 것이며, 장관 부인인들 제 이익을 챙기고 싶지 않을 것이며, 또 하급 관리의 부인도 명절인데 어디 선물 들어오는 데 없나 할 것 아니냐는 논리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저 명품 가방은 서민인 우리 집 안방까지 들어온다. 뉴스를 본 처의 눈꼬리가 올라간 듯하여, “당신도 저것 갖고 싶은가?” 하고 물었더니, “저것 안 갖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한다. 어디 예식이나 팔순잔치 같은 경사에 들고 갈 하나쯤은 갖고 싶고, 다들 그럴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큰딸이 서른 넘도록 살면서 명품 가방은 고사하고 소가죽 핸드백 하나 사준 적이 없다. 이렇듯 저것은 장삼이사의 삶 깊숙한 곳에까지 들어와 우리의 ‘역린’을 건드린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야무야 덮을 일이 아니다.
‘맹자’ 후반부는 이렇게 이어진다. 제선왕이 성이 같은 정승의 역할에 관해 물으니 맹자가 답한다. “임금에게 큰 과오가 있을 때는 간언합니다. 거듭 간언해도 듣지 않으면 임금을 교체(易位)합니다.” 간명하다. 여민동락하지 않고 인의를 도적질한 폭군은 주살(誅殺), 즉 처벌해야 한다는 맹자의 혁명론, 이 대목 간담이 서늘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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