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 "20분에 팡틴 모든 것 다 보여줘야…속으로 난리 피우죠"
"눈앞에 놓인 것 하나하나를 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24년 배우 생활"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팡틴이 15∼20분 정도 출연하는데 그 안에서 캐릭터의 기승전결을 다 보여줘야 해요. 예전에는 그것이 쉽게 되지 않아서 갑갑한 마음을 느끼기도 했죠."
공연 시간이 3시간에 달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팡틴은 20분 남짓한 시간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다.
팡틴은 공장 직공으로 일하며 홀로 딸 코제트를 기르는 미혼모로, 작품 초반 등장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공장에서 해고된 뒤 머리카락과 이빨까지 팔아넘기는 등 온갖 수모를 겪는 과정은 관객에게 애처로움을 안긴다.
단독으로 부르는 노래도 한 곡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한때 사랑과 꿈을 품었지만, 이제는 모든 희망을 잃어버렸다는 애달픈 가사의 곡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은 작품 전체를 대표하는 노래로 꼽힌다.
팡틴을 연기하는 배우 조정은(44)은 무대에서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을 부르는 마음이 한 작품 전체를 소화하는 것처럼 무겁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조정은은 29일 공연장인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곡 하나가 작품 하나처럼 느껴진다"며 "최대한 기량을 발휘해서 노래 한 곡으로 캐릭터의 이야기를 다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2013년 한국어 공연 초연과 2015년 재연에 이어 지난해 11월 개막한 세 번째 시즌에서도 팡틴 역을 맡고 있다. 역할이 익숙하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매번 새로 발견할 점이 보인다고 한다.
조정은은 "팡틴을 연기할 때 속으로 정답을 정해놓지 않는다"며 "연습할 때부터 이렇게도 연기해보고, 저렇게도 연기해보고 속으로 난리를 피운다. 그 과정을 겪으면 감정이 정제되고 나중에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며 캐릭터의 대사도 다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처음 팡틴을 연기할 당시에는 연출이 요구하는 내용을 수행하기에 급급했다. 대사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전달하는 과정에 집중하다 보니 작품을 즐길 여유조차 없었다.
경험이 쌓인 지금은 대사가 마음에 와닿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작품 속에서 딸을 대하는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비록 딸은 없지만 자기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존재를 대하는 심정이 마음에 와닿는다"며 "예전에는 대사를 표현할 방법을 고민했다면 지금은 인물의 심경이 어떠한지 고민한다. 말이 가진 의미를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다만 팡틴이라는 캐릭터가 익숙해지지 않게 신경 쓰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그는 이번 시즌 오디션 도중 제작진에게 '팡틴에게 일어난 일을 처음 겪은 사람처럼 연기하라'는 주문을 들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조정은은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면 익숙해지게 된다"며 "시간이 지나면 팡틴에 관해 알게 되는 부분은 많아지지만, 그 나이에만 보여줄 수 있는 감성도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팡틴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매 공연을 애틋하게 치르고 있다. 최근 부친상을 계기로 매 순간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면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관객들도 죽음 앞에 섰을 때 어떤 가치를 가지고 살았는지 고민해 보는 작품이면 좋겠어요. '레미제라블'은 누구나 한 번은 고민해야 할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조정은은 2001년 서울예술단 소속 앙상블로 뮤지컬에 데뷔한 뒤 어느덧 24년째 무대에 서고 있다. '지킬 앤 하이드', '드라큘라' 등 대극장 뮤지컬에서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아왔다.
한때 배우로서 장점이 없다고 생각해 그만둘까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자신만의 섬세함을 발견한 뒤로는 무대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다.
그의 목표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관객의 기분을 전환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눈앞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해내다 보니까 어느덧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저로 인해 관객의 기분이 전환되고 좋은 기분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cj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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