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하지 말자" KIA 선수들은 2년째 무슨 죄…'장정석 뒷돈·김종국 배임수재' 구겨진 명문의 자존심 회복 부담까지
[스포티비뉴스=인천국제공항, 김민경 기자] "너무 동요하지 말고 항상 우리가 운동하는 방식대로 하자고 이야기할 겁니다."
KIA 타이거즈 선수단은 28일과 29일 이틀 동안 놀라고 또 놀랐다. 김종국 감독이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탓이다. KIA는 28일 김 감독을 직무정지 조치하더니 29일 오후 김 감독과 계약 해지를 발표했다. 직무정지부터 경질까지 하루 조금 더 걸렸다. 말 그대로 속전속결이었다.
KIA가 이토록 기민하게 움직인 건 지난해 3월 장정석 전 단장의 뒷돈 파문에 당한 경험이 있어서다. 장 전 단장은 키움 히어로즈에 몸담았을 때 주전 포수로 기용했던 박동원을 2022년 트레이드로 KIA에 데려오면서 큰 성과를 냈다. 박동원은 2022년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KIA가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안방마님 부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줬고, KIA는 2022년 시즌 막바지 예비 FA였던 박동원과 다년계약 논의까지 했을 정도로 만족했다.
그런데 다년계약 협상 과정에서 장 전 단장이 박동원에게 뒷돈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박동원은 해당 내용을 녹취해 증거로 남겼고, 고심 끝에 KBO에 녹취 파일을 제공하면서 문제를 공론화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KIA는 해당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구단 자체 조사에 들어갔고, 조사 과정에서 장 전 단장과 박동원의 의견 차이는 있었으나 덮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KIA는 자체 조사를 마친 뒤 이미 사의를 표명한 장 전 단장을 전격 해임했다. 박동원은 폭로 당시 LG 트윈스와 4년 총액 65억원에 FA 계약을 마쳐 KIA를 떠난 뒤였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동했다.
KIA는 장 전 단장을 해임하면서 사태를 매듭지은 줄 알았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김종국 감독 계약 해지 사태까지 뿌리는 뽑히지 않고 남아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중요범죄조사부(부장검사 이일규)는 29일 '장정석 전 KIA 타이거즈 단장과 김종국 KIA 감독에 대하여 한국야구위원회(KBO)의 수사 의뢰 사건 및 해당 사건 수사 중 추가로 확인된 배임수재 등 혐의로 지난 24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장 전 단장과 함께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는다.
검찰은 지난해 5월부터 장 전 단장의 비위를 수사해 왔고, 지난해 11월에는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해 수사의 속도를 높였다. 28일 김 감독의 직무정지가 확정되자 장 전 단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어떤 금품이 김 감독에게도 흘러가지 정황을 검찰이 포착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돌았다. 혐의가 입증될 때까지는 추측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김 감독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고 구속 수사로 이어지면서 가벼운 추측은 아니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KIA는 지난 25일 외부 제보로 김 감독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했다. 이미 장 전 단장 사태를 겪은 KIA는 김 감독까지 비슷한 문제에 휘말리자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구단은 27일 김 감독과 면담을 진행했고, 김 감독은 이 자리에서 결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백하기에 구단에 미리 보고하지 않았다는 게 김 감독의 논리였다. 당시는 김 감독이 한 차례 소환 조사를 받은 상황이었기에 구단이 어떤 결단을 내리기는 섣부른 상황이었다. 일단 직무정지 조치를 내리고 상황을 지켜보려 했던 이유다.
하지만 29일 오전 검찰이 김 감독을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구단은 더는 두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무죄 여부를 떠나 김 감독이 검찰 조사를 언제까지 받을지도 모를 일이고, 스프링캠프는 한 시즌의 농사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김 감독 이슈로 계속 구단이 거론되면 선수단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했다.
KIA는 김 감독과 계약해지를 발표하면서 '지난 28일 김종국 감독에게 직무 정지 조치를 내렸던 KIA는 오늘 자체 조사를 통해 현재 김종국 감독이 피의자 신분이며 배임수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구단은 검찰 수사 결과와 상관없이 품위손상행위로 판단해 김종국 감독과 계약해지를 결정했다. 구단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후임 감독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수들은 2년 연속 단장과 감독이 불명예스러운 일로 물러나는 일을 경험하게 됐다. 선수들이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그라운드에서 KIA 유니폼을 입고 뛰는 건 결국 선수들이다. 팀 내에 안 좋은 이슈가 생기면 그라운드에 나서는 선수들의 고개가 자연히 숙여질 수밖에 없다.
진갑용 수석코치는 2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스프링캠프 훈련지인 호주로 먼저 출국하면서 선수단 분위기 수습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29일은 코치진이 모두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고, 선수들은 30일에 뒤따라 합류한다. 남은 코치진과 선수들이 호주에서 모이면 외부 이슈는 뒤로 하고 2024년 시즌을 준비하는 일에만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진 코치는 "나도 어제(28일) 언론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심재학 단장님과 잠깐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그냥 책임자라고 생각한다. 나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코치들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준비를 잘해야 할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아마 선수들이 많이 놀랐을 것이다. 가서 선수단 미팅을 하면 너무 동요하지 말자고 하려 한다. 항상 우리가 운동하는 식으로 준비를 하자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너무도 다사다난한 이틀을 보냈기에 선수들과 대화를 미리 나눌 시간도 없었다. 진 코치는 "대화를 지금 하는 것보다는 다 정리하고 호주에 가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가서 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선수들이 아마 더 잘 알 것이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아마 다시 생각할 것이고, 내일(30일) 준비 잘해서 올 것이라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KIA는 다음 달 1일부터 호주 캔버라 나라분다볼파크에서 1차 스프링캠프를 실시한다. KIA는 이번 스프링캠프에 대규모 인원을 보내면서 2024년 시즌 상위권 도약 의지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차 캔버라 캠프에는 코칭스태프 20명, 선수 47명 등 총 67명의 선수단이 참가한다. 선수단은 투수 22명, 포수 4명, 내야수 12명, 외야수 9명으로 구성됐고, 2024년 신인 가운데에서는 투수 조대현과 김민주가 합류해 눈길을 끌었다. 1차 캠프에 많은 선수를 데려가 옥석을 가리고, 2차 오키나와 캠프부터는 베스트 전력으로 추려서 새 시즌을 준비하는 계획을 세워뒀다.
KIA는 김 감독 체제에서 2022년 5위, 2023년 6위에 그치면서 만족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해마다 우승 전력으로 평가받았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나성범, 최형우, 김선빈, 양현종 등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자랑하는 베테랑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고, 김도영과 박찬호, 이의리, 정해영, 윤영철 등 KIA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질 선수들도 궤도에 올라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올해는 외국인 선수 영입에 공을 들이며 상위권 도약을 꿈꿨다. 지난해 외국인 투수 4명을 쓰고도 가을야구에 탈락한 아픔이 컸다. 올해는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있던 윌 크로우와 제임스 네일은 새 원투펀치 조합으로 꾸렸다. 크로우는 지난해 MVP를 차지하고 미국 메이저리그로 금의환향한 NC 다이노스 에이스 에릭 페디(현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연상케 한다는 이야기까지 듣는다. 지난해 KIA를 괴롭혔던 부상 악령만 멀리하면 올해 충분히 우승을 목표로 달려볼 만했다.
우승 전력을 제대로 요리하려면 분명 사령탑의 힘이 필요하다. KIA는 김 감독의 빈자리를 이른 시일 안에 채우는 과제를 안고 스프링캠프를 맞이하게 됐다. 전 단장과 감독 모두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난 만큼 이번에는 평판 조사까지 철저히 할 것으로 보인다.
새 사령탑의 윤곽은 아직이다. 팀을 빨리 수습하려면 구단을 잘 아는 인사가 팀을 맡는 게 좋은데,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는 아예 새로운 얼굴을 사령탑으로 앉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구단은 선수단이 감독 공백 속에 동요하지 않도록 빠르게 새 감독을 물색하고 선임하려 하고 있다.
KIA는 한국시리즈에 통산 11차례 진출해 모두 우승한 KBO리그 최고 명문 구단이다. 그러나 2년 연속 수뇌부의 불미스러운 일로 명문 구단의 자존심을 구겼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부담은 선수들에게 넘겨졌다. 선수들은 김 감독 문제를 뒤로 하고 차질 없이 시즌을 준비하며 타이거즈를 명문 구단으로 재건할 수 있을까.
KIA 구단은 김 감독 계약 해지와 함께 사과문을 내고 'KIA는 이번 사안에 대해 큰 책임을 통감하며 과오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감독 및 코칭스태프 인선 프로세스 개선, 구단 구성원들의 준법 교육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 또한, 향후 구단 운영이 빠르게 정상화 될 수 있도록 후속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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