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한국전 무승부 자신감' 요르단, '잔디 먹방→퇴장' 이라크 3-2 꺾고 8강 진출

맹봉주 기자 2024. 1. 3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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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르단 선수들이 포효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맹봉주 기자] 대회 득점 1위 선수가 어이 없는 세리모니로 인해 퇴장당했다. 아시안컵 역사에 남을 황당한 장면이었다.

요르단은 29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칼리파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이라크를 3-2로 이기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전 상대는 타지키스탄이다. 타지키스탄은 이번 대회 최고의 다크호스로 꼽힌다. 28일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아랍에리미리트(UAE)를 승부차기 끝에 5-3(1-1)으로 제압하고 8강에 올랐다.

서아시아 라이벌인 요르단과 이라크의 맞대결은 치열했다. 경기 전 이라크의 승리를 보는 예상이 많았다. 조별리그서 보여준 경기력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조별리그서 3전 전승을 거뒀다.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는 일본마저 물리쳤다. 그 중심엔 이번 대회 득점 1위 아이멘 후세인이 있었다. 이라크가 FIFA 랭킹 63위인 반면 요르단은 24계단 낮은 87위. 3전 전승을 거둔 이라크와 달리 1승 1무 1패로 조별리그 성적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 감독은 요르단과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우린 매우 비슷한 팀이다. 요르단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토너먼트에서 어떤 경기에서든 승리할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 경기에선 200%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팀이든 어떤 경기에서든 이길 수 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이긴 것을 보라. 축구에서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계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 됐다.

팽팽한 경기 초반이 흐르고 침묵을 깬 건 요르단이었다. 전반 추가 시간 선제골이 나왔다.

역습 기회에서 최전방에 야잔 알 나이마트에게 공이 투입됐다. 나이마트는 빠른 스피드로 이라크 최종 수비수들을 따돌린 뒤 로빙슛으로 골키퍼마저 속이며 선제골을 성공시켰다. 이라크가 주도하는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한방이었다.

한 골을 앞서간 요르단은 더욱 수비를 굳혔고 이라크는 공세를 높였다. 후반 67분 이라크가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 왼쪽 측면에서 올린 코너킥을 사드 나틱이 헤딩슛으로 연결해 닫혀있던 요르단 골문을 열었다.

기세 올린 이라크는 후반 75분 경기를 뒤집었다. 이번에도 후세인이 해결사였다.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가 수비 머리에 맞고 반대편에 있던 후세인에게 향했다. 후세인은 오른발로 트래핑한 공을 곧장 발리슛으로 연결해 역전골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후 행동이 문제였다. 후세인은 너무 신을 냈다. 이해할 수 없는 세리모니를 펼쳤다. 관중석을 향해 무언가 먹는 제스쳐를 취한 뒤 그라운드에 앉아 잔디를 뜯어 먹었다. 벤치에 있던 동료까지 나와 말릴 정도였다. 세리모니가 과하게 길었다.

심판은 옐로카드 경고를 줬다. 후세인은 이미 옐로카드를 하나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조항 제12조에 따르면 세골대를 차거나 시간을 과도하게 낭비하는 세리머니는 처벌할 수 있다.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기쁨을 표한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지나쳐선 안 된다는 뜻이다. 또 서아시아 축구 전문가이자 축구 전문매체 바바골을 만든 울리 레비 기자는 "이라크 공격수 후세인이 요르단을 상대로 역전골을 넣었다. 후세인은 전반전에 요르단의 세리머니에 보답하듯 만사프(요르단 전통 요리 중 하나)를 먹었는데, 이란 심판 알리레자 파가니는 이를 도발적이라고 판단해 퇴장시켰다"고 주장했다.

놀란 후세인은 양팔을 벌려 주심에게 항의했다. 이라크 벤치도 펄쩍뛰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이라크는 다 잡은 경기를 놓쳤다.

후세인의 퇴장 여파는 단순히 골을 넣을 선수가 사라졌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패배할 경우 다음이 없는 요르단은 전원 공격으로 이라크를 압박했다. 수적 열세는 수비수까지 페널티박스 안으로 가담할 수 있는 세트피스에 특히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후세인은 이라크 선수단 내에서 장신으로 꼽혔다.

경기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요르단의 역전 드라마 서막이 오르는 순간. 수적 열세에 놓인 이라크는 수비 라인을 내려 요르단의 강한 공세에 맞섰다. 요르단이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여러 차례 잡았지만 베테랑 잘랄 하산 골키퍼가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모두 막아 냈다.

수적 우위를 잡은 요르단은 부지런하게 이라크 골문을 두드렸다. 여기에선 이라크 잘랄 하산 골키퍼가 빛났다. 요르단의 결정적인 기회를 연달아 동물적인 선방으로 막아 냈다.

그러나 하산 골키퍼도 후반 추가시간을 버텨내지 못했다. 요르단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렸다. 이때 페널티박스 안엔 이라스 선수 3명이 있었던 반면 요르단 선수는 무려 5명이 자리잡고 있었다. 혼전 상황에서 따낸 공이 요르단 쪽으로 흘렀고 감아찬 슈팅을 사디 하산 골키퍼가 막아 냈다. 하지만 자리잡고 있던 아부 알-아랍이 빈 골문 안으로 가볍게 차넣어 경기를 2-2 원점으로 돌렸다.

이라크 벤치가 연장 전략을 생각할 무렵 요르단이 아예 경기를 뒤집어놓았다. 1분 뒤 다시 페널티박스 안에서 공격 기회를 잡았다. 요르단은 이라크의 촘촘한 수비를 뚫는 대신 지공을 택했다. 뒤로 내준 공을 니자르 알 라쉬단이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연결했고, 역전골로 연결됐다.

후세인이 퇴장당한 이후 동점골과 역전골이 나왔고 이라크는 2-3으로 무릎을 꿇었다. 카사스 감독의 경계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3-2로 경기를 뒤집고 8강에 오른 요르단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 단체로 모여 잔디를 뜯어먹는 세리머니를 했다. 후세인이 했던 그 세리머니다.

이라크는 1996년 대회 이후 꾸준히 토너먼트에 참가하고 있다. 2007년 대회에선 정상에 섰고 2015년 호주 대회에선 4강까지 올랐다. 조별리그에서 일본,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D조에서 경쟁한 이라크는 일본을 2-1로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3전 전승으로 D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16강에서 한 수 아래인 요르단을 잡고 8강에 가볍게 오를 것이라고 바라봤으나 잘못된 행동 하나에 짐을 싸게 됐다. 또 6골로 득점 순위 1위에 올라 있는 후세인은 득점왕을 지키기가 불확실해졌다. 이강인 등이 이루고 있는 2위 그룹과 3골 차이다.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 대표팀 감독은 "요르단전 승리는 심판이 훔쳐간 것이다. 아시안컵과 같은 큰 대회에선 세리머니하는 선수가 퇴장당하지 않는다"고 분노했다.

조별리그서 한국과 2-2로 비겼던 요르단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내친김에 대회 4강까지 노려본다.

당시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87위에 불과한 요르단에 패배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것도 손흥민이 경기 시작 4분 만에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하며 기분 좋게 출발하고도 역전패 위기를 허용했다. 이른 시간에 잡은 리드로 확실하게 승기를 잡아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해지는 경기 운영이었다.

한국은 요르단의 강한 압박에 중원부터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박용우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허리는 달려드는 요르단을 이겨내지 못하고 패스미스를 반복했다. 요르단의 강점이라 익히 알려졌던 측면 플레이도 좌우 풀백들이 제어하지 못해 계속 위기를 허용했다.

▲ 요르단은 축제 분위기다.

시작은 좋았다. 전반 8분 손흥민이 박스 안으로 침투하며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주심은 비디오판독시스템(VAR) 체크 끝에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키커로 나선 손흥민은 상대 골키퍼를 속이는 파넨카 킥으로 선제골을 만들었다. 이후 손흥민은 기쁨 대신 김승규의 유니폼을 들어 올렸다.

한국의 주전 수문장인 김승규는 이날 경기 직전 훈련 도중 십자인대 파열을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에 손흥민은 김승규를 위한 셀레브레이션을 펼쳤다. 하지만 선제골 이후 요르단의 공세가 계속됐다. 요르단은 한국의 공격 전개를 철저히 막아내며 추가 실점을 내주지 않았다. 한국은 마치 지난 15일에 있었던 바레인전의 전반전같은 모습을 보였다. 당시에도 공격 전개에 애를 먹었던 한국은 이번 경기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요르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볼을 잡을 때마다 위협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한국은 요르단의 공세에 당황했고, 결국 전반 37분 동점 골을 내줬다. 요르단의 코너킥 상황에서 골문 앞에 있던 박용우가 통한의 자책골을 기록했다. 요르단은 내친 김에 역전까지 만들었다. 전반 추가시간 알 나이마트가 예상치 못한 중거리 슈팅으로 한국의 골망을 갈랐다. 결국 한국은 1-2로 끌려간 채 전반전을 마무리했다.

한국은 후반전과 동시에 이기제와 박용우 대신 홍현석과 김태환을 투입하며 변화를 줬다. 하지만 동점 골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한국은 계속해서 다급한 모습을 보이며 세밀한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결국 시간은 추가시간까지 흘렀다. 그러던 도중, 하늘이 한국을 도왔다. 후반 추가시간 박스 왼쪽 부근에서 볼을 잡은 손흥민이 달려들어오던 황인범에게 패스했다. 황인범은 곧바로 슈팅을 시도했고, 이 슈팅은 골문 앞에 있던 알아랍 맞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후 더 이상의 골은 나오지 않았고, 한국은 요르단과 승점 1점씩을 나눠가졌다.

한국의 우승 확률은 뚝 떨어졌다. 한국이 바레인과 첫 경기에서도 전반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거나 요르단전 부족한 경기력을 반영했고, 대진에 따른 난이도까지 더해진 결과다. 대회 전만 해도 축구 통계 사이트 '옵타'는 아시안컵 참가국의 우승 확률을 점치면서 한국을 14.8%로 바라봤다. 일본이 24.2%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이었다.

요르단전 충격 무승부 탓에 2위에서 5위로까지 추락했다. 대외 평가도 달라졌다. 지난 1차전만 하더라도 AFC가 선정한 베스트11에 이강인과 황인범이 포함됐다. 하지만 2차전 베스트11에 한국 선수는 하나도 없었다.

베스트11엔 요르단의 알나이마트, 이라크의 아이만 후세인, 카타르의 아크람 아피프가 공격수에 이름을 올렸다. 중원은 우즈베키스탄의 아보스베크 파이줄라예프, 사우디아라비아의 모하메드 칸노, 바레인의 알리마단으로 구성됐다. 포백 수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압둘하미드, 오만의 아흐메드 알카미시, 인도네시아의 저스틴 휘브너, 이란의 밀라드 모함마디가 뽑혔다. 골키퍼는 아랍에미리트의 칼리드 에이사였다.

한국은 최전방 투톱에는 조규성(미트윌란),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뛰었다. 중원에는 황인범(츠르베나 즈베즈다),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이재성(마인츠05), 박용우(알 아인)가 선발 출전했다. 백4는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정승현, 설영우(이상 울산HD), 이기제(수원 삼성)으로 구성된 최정예 멤버를 내세우고도 승리하지 못했다. 반대로 말하면 요르단은 자신감을 얻었다. 할 수 있다는 정신력은 이라크전 역전승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요르단은 한국 공격의 플레이 메이커 이강인을 잘 막았다. 이강인을 향한 집중 견제가 빛났다. 이강인은 지난 15일에 있었던 바레인전에서 멀티 골을 폭발했다. 당시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바레인에 동점 골을 내줬다. 요르단전과 비슷한 경기 양상을 선보였다. 하지만 바레인은 이강인을 잠시 놓쳤고, 이강인은 날카로운 왼발 두 방으로 한국에 승리를 안겼다.

하지만 요르단전은 달랐다. 이강인은 집중 견제에 막히며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요르단의 협력 수비가 완벽히 통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 앞서 경미한 부상을 당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축구 통계 매체 ‘풋몹’에 따르면, 이날 이강인은 8번의 드리블 시도 중 단 3개만을 성공시켰다. 드리블 성공률은 38%에 그쳤다. 또한 총 4번의 크로스를 올렸는데, 성공은 딱 한 번이었다. 날카로운 왼발도 쉽게 보기 힘들었다. 후반전에 나온 강력한 슈팅이 있긴 했지만, 상대 골키퍼 정면이었다.

이번 대회에선 유독 강팀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조별리그는 물론 16강전에서도 이변이 쏟아졌다. 요르단의 파죽지세로 아시안컵은 재미를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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