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왕이 극찬하며 포옹한 한국인…“지리산을 전달했을 뿐인걸요”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4. 1. 30. 06: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국 ‘첼시 플라워쇼’ 금상 황지해 정원작가
약초 군락과 건조탑 모티프
英 왕실 별장에 보존하기로
“인간·자연의 공생을 표현
한국식 정원 알려서 뿌듯해”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와
내년 현지 협업 전시도 계획
황지해 작가. [사진 출처=본인 제공]
영국인의 정원 사랑은 유별나다. 가난을 이야기할 때 ‘손질할 정원 한 뼘도 없는 처지’라고 말하는 곳이 영국이다. 영국은 정원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매년 5월 런던에서 개최되는 ‘첼시 플라워쇼’는 2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정원·원예 박람회로, 영국 왕실의 공식 일정 중 하나이며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다.

지난해 첼시 플라워쇼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품은 황지해 작가(47)의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지리산의 약초 군락을 모티프로 한 이 작품으로 그는 금상을 수상했고, BBC 등의 현지 언론은 “첼시의 스타가 된 황지해 작가는 한 편의 시”라는 찬사를 쏟아내며 집중 보도했다. 최근 영국 왕실은 그의 작품을 별장에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지리산의 원시성,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그를 매일경제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지난해 첼시 플라워쇼에서 금상을 수상한 황지해 작가의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작품. [사진 출처=본인 제공]
수상 소감을 묻자 황 작가는 “한국 산야의 독특한 기후와 환경이 가지고 있는 힘과 저력, 잠재된 가치를 인정받아 기쁘다”고 답했다. 가로 10m, 세로 22m 크기의 땅에 조성된 그의 작품엔 지리산에만 자생하는 지리바꽃 외에도 나도승마, 산삼, 더덕 등 토종 식물 300여 종이 자리 잡았다. 개울이 흐르는 산비탈, 약초꾼들의 건조장을 참고해 만든 5m 높이의 탑을 통해선 지리산의 야성적인 모습을 재현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의 ‘어머니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에는 원시적인 힘이 보존돼 있다고 황 작가는 말한다. 그는 “한국 최후의 원시림인 지리산에는 여전히 이름 없는 산봉우리와 계곡이 있다”며 “예로부터 약성이 좋은 약초가 가장 많이 나고 현재도 천여 종의 약초가 자생하는, 한국 식물의 종자은행과도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는 그저 운 좋게 그 힘을 전달했을 뿐”이라고 황 작가는 덧붙였다.

작품을 통해 황 작가는 ‘자연의 원시성을 지켜주는 것이 인간과 자연이 공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병원과 약국이 생겨나기 전 우리의 생명과 건강, 삶의 질을 담당했던 공간은 바로 산이었다”며 “식물엔 원시로 돌아가고자 하는 관성이 있다, 이를 존중하는 것이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기 위한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첼시 플라워쇼에서 황지해 작가가 찰스 3세 영국 국왕과 포옹하고 있다. [사진 출처=본인 제공]
찰스 3세 영국 국왕도 황 작가의 메시지에 주목했다. 그는 예정과 달리 황 작가의 정원 안으로 들어가 포옹까지 나눴고, 이는 현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왕실 인사들이 외부인과 악수 이외의 신체 접촉을 하는 일은 흔치 않다. 당시 상황을 묻자 황 작가는 “저는 영국 왕실의 예법을 잘 모르고 영어도 익숙지 않다”며 “단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영국의 반가운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하는 인사법으로 포옹해도 되겠냐고 물어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황 작가는 “포옹 사건으로 작품의 메시지가 주목받지 못할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한국의 정원과 식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만든 ‘지리산 약초 건조탑’은 최근 찰스 3세의 샌드링엄 영지에 설치됐다.

지난해 첼시 플라워쇼에서 금상을 수상한 황지해 작가의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작품 속 지리산 약초 건조탑 내부 사진. [사진 출처=본인 제공]
올해 런던디자인페스티벌에 초청받은 황 작가는 한국 식물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 선보인다. 내년엔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와 첼시 플라워쇼에서 협업 전시를 한다. 국내에선 한국 최초의 철학 학교인 함평군 기본학교에 한국의 정신적인 힘, 고유한 철학을 담은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시가 녹으면 정원이 될 것”이라는 황 작가는 정원이 억압된 감정을 흐르게 하는 통로라고 말한다. 정원 작가를 정의해달라는 물음에 그는 “정원은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균열되고 상처 난 곳에 새롭게 살아갈 힘을 부여한다”며 “저는 단지 꽃과 나무를 심고, 자연이 하는 일에 동참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답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