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 가던 동네목욕탕 사라져…'원정 목욕' 가는 사람들

김혜지 기자 김경현 수습기자 2024. 1. 3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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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는 목욕탕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힐링 장소예요."

지난 25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한 목욕탕 입구에서 만난 한모씨(24)가 목욕 바구니에 든 괄사마사지기(피부를 문지르며 나쁜 혈액을 쓸어내 인체 순환을 돕는 기구)를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목욕탕에는 온·냉탕과 다양한 종류의 사우나가 갖춰져 있고 수압도 세서 씻고 나오면 정말 개운하다"며 "나이가 들면 혈액 순환이 중요해 매일 1~2시간씩 반신욕이나 사우나를 즐기는 중장년층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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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새 전주지역 목욕탕 11곳 폐업…"쉼터·만남 공간 역할"
손님 줄고 연료비 올라 경영난에 코로나 이후 목욕문화 바뀌어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에서 25년째 운영 중인 목욕탕. 업주 이진석씨(60대)는 3년째 요금(8000원)을 올리지 않고 매일 카운터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2024.1.30./뉴스1 김경현 수습기자.

(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김경현 수습기자 = "저한테는 목욕탕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힐링 장소예요."

지난 25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한 목욕탕 입구에서 만난 한모씨(24)가 목욕 바구니에 든 괄사마사지기(피부를 문지르며 나쁜 혈액을 쓸어내 인체 순환을 돕는 기구)를 보여주며 이같이 말했다.

한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매달 첫째 주 주말마다 어머니와 함께 목욕탕을 찾고 있다. 어릴 땐 어머니가 가자고 하면 따라나섰지만, 성인이 된 후부터는 오히려 한씨가 먼저 목욕탕에 갈 채비를 한다.

모녀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목욕탕이 최근 문을 닫으면서 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으로 이른바 '원정 목욕'까지 다니고 있다.

'이렇게까지 목욕탕을 찾는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씨는 "엄마와 반신욕을 하면서 평소 못 나눴던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사우나에서 찜질을 하면 누적된 피로가 풀리기 때문"이라며 "목욕탕 가는 게 제 일과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매일 오전 7시에 효자동 한 목욕탕에 가서 '출석 체크'를 한다는 김모씨(62)도 "결석하면 업주가 '무슨 일 있느냐'고 전화가 온다"고 웃었다. 김씨는 "목욕탕에는 온·냉탕과 다양한 종류의 사우나가 갖춰져 있고 수압도 세서 씻고 나오면 정말 개운하다"며 "나이가 들면 혈액 순환이 중요해 매일 1~2시간씩 반신욕이나 사우나를 즐기는 중장년층이 많다"고 했다.

한씨와 김씨의 말처럼 동네 목욕탕은 씻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더 이상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경영난에 시달려 문을 닫는 목욕탕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동네 목욕탕이 조만간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갈수록 치솟는 공공요금이다.

한국도시가스협회에 공시된 이달 기준 전주시 난방용(상업용) 가스값은 1메가줄(MJ)당 25.7원으로 지난 2021년 1월(14.6원)과 비교하면 76%가량이 올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손님이 30%가량 줄어든 상황에 공공요금까지 오르니 버티지 못하는 목욕탕이 상당수라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국목욕업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주지역 목욕탕은 총 43곳으로, 지난 2020년(54곳)보다 무려 11곳이 줄었다.

목욕업중앙회 관계자는 "연료비가 안정되지 않는 이상 목욕탕 업주 입장에서는 운영이 힘들 수밖에 없다"며 "매년 폐업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이대로 가다간 목욕탕이 영영 사라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의 한 목욕탕 업주 이진석씨(60대)도 "25년 동안 목욕탕을 운영하면서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3년 전에는 연료비로 매달 2500만원가량 지출했는데 지금은 3500만원을 내고 있다"며 "손님까지 계속 줄고 있으니 직원 한 명 쓰는 것도 부담이라 온 가족이 돌아가면서 카운터를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요금을 올릴 수도 없다.

이씨는 "요즘 경기도 어렵고 다들 힘들지 않느냐"며 "단골손님 상대로 장사를 하다 보니 쉽게 요금을 올릴 순 없어 3년 전(8000원)과 똑같다"고 했다.

김모씨(30·효자동)는 "코로나 사태 이후 위생 문제가 중요해지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목욕탕 가는 걸 망설이는 것 같다"며 "예전에는 목욕탕에 가면 혼자 온 사람끼리 서로 등도 밀어주고 목욕용품도 빌려주며 정(情)을 나누는 모습이 참 좋았는데 이제는 집에서 반신욕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질 정도로 시대 흐름에 따라 목욕 문화도 점점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iamg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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