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진실은 스토리다…'추락의 해부'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명쾌하게 딱 떨어지는 결론을 원하는 이들에게 쥐스틴 트리에(Justine Triet·46) 감독의 새 영화 '추락의 해부'(1월31일 공개)는 최악의 답안지다. 한 남성이 3층 짜리 집 꼭대기에서 추락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되는 이 작품에는 공식이니 정답이니 하는 정석이 없다. 무엇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끝에 가서 마주하게 될 것을 보기 위해 손을 더듬어 가며 전진하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떡밥 회수'를 하지 않는다. 초점이 맞춰진 부분은 회수가 아니라 떡밥. 떡밥은 어떻게 뿌려졌고, 왜 뿌려졌는가. 그리고 이 떡밥은 뭘로 만들어졌고 과연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되돌아 오는가. '추락의 해부'는 끝맺음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토의를 끌어내려 한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는 언뜻 추리물이자 법정물처럼 보인다. 남편 사뮈엘이 집 3층에서 추락했고, 집 안에는 유명 작가인 아내 산드라만 있었다. 문제는 사뮈엘 머리에 난 상처. 부검에 따르면 둔기에 맞았을 수도 있고, 어딘가에 부딪혔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타살일 수도 있고, 자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사고사일 수도 있다. 아들 다니엘은 아버지가 추락하던 시간에 산책을 나가 있었기 때문에 목격자도 없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자살 또는 사고사라고 했을 때 머리를 부딪혔을 거라고 추정되는 곳에서 사뮈엘의 DNA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반대로 타살을 입증할 증거도 없다. 이제 관객은 사건의 전말이 밝혀져 이 추락이 온전히 해부되길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추락의 해부'는 장르를 경유하며 관객을 기만한다. 변사체로 발견된 한 남자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산드라가 기소된 이후 주무대를 법정으로 옮겨 아내의 살인을 주장하는 검사와 그의 무혐의를 입증하려는 변호사가 공방을 주고 받는 모습을 담는 데 러닝 타임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평범한 영화였다면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이 사건에 얽힌 정황과 관계가 명료하게 드러나겠지만 트리에 감독은 오히려 이 사건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흐릿하게 몰아 간다. 사뮈엘이 누구에게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혹은 어떤 경로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에 관한 사실 관계는 추가하지 않고, 이 죽음과 직접 관련 없는 세 가족의 관계에 관한 팩트만 하나 둘 던져 놓는다. 산드라가 변호사에게 "난 사뮈엘을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 그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던 것처럼 말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추락을 해부하는 게 아니라 추락이 해부해버리는 것들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추락의 해부'는 사뮈엘이 떨어진 이유를 규명하는 덴 애초에 관심이 없다. 대신 그가 사망한 원인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과 알게 된 것을 들여다본다. 그건 열등감과 우월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꾸만 엇나가기만 하는 부부 관계이고, 죄책감과 연민이 어른거리는 부자 관계이기도 하며, 사회가 규정한 도덕과 개인이 가진 윤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인간들이기도 하다. 다만 '추락의 해부'는 이 지점에서 한 번 더 도약하며 이야기를 확장한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사실들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공백이 존재하고, 사뮈엘의 죽음으로 최소한의 교차 검증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단일한 진실이 성립되지 못하게 한다. 이제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진실이란 건 무엇입니까.'
어떤 죽음이 주는 충격으로 시작해 온갖 의혹과 추리가 난무하는 법정 다툼의 스릴로, 결국 폭로되고만 어느 가족의 내밀한 관계를 지나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진실의 애매함을 통과한 '추락의 해부'는 이쯤에서 멈출 만도 하지만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트리에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끝내 도착하려는 장소는 스토리텔링이란 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다. 어떤 증거도 목격자도 전무한 상황에서 검사·변호사·산드라·증인 등이 주장하는 것은 모두 결국 창조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들은 구멍 난 사실 관계 사이 사이를 상상력으로 채워 하나의 완성된 스토리로 만드는 작가들이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산드라와 그의 학생이 주고 받는 소설 작법에 관한 대화는 이 작품의 방향을 처음부터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추락의 해부'는 아들 다니엘의 '작가 되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검사가 타살을, 변호사가 자살을 주장할 때(각자 스토리를 써내려 갈 때) 판사·배심원(독자)이 가장 관심 있고 판결에 가장 큰 영향을 줄(채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증언(스토리)은 아들 다니엘에게서 나온다. 다니엘은 몇 차례 번복 끝에(시행착오 끝에) 재판 관계자 대부분이 수긍할 만한(가장 그럴싸한) 증언을 하고(스토리를 쓰는 데 성공하고) 그의 발언은 재판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가장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스토리가 된다). 그리고 온갖 주장과 추측이 난무하던 이 사건은 마치 진실에 도달한 듯한 형태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진실이란 어쩌면 드러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 결정하는 것이다.
다니엘이 고도 근시를 가진 장애인이라는 건 작가라는 존재에 관한 메타포다. 작가는 기자가 아니다. 보고 들은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건 기자의 일이고, 본 것과 들은 것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해 가상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게 작가의 일이다. 다니엘은 정확하게 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가 들은 것의 맥락 역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는 기자가 될 수 없지만, 대신 작가가 될 순 있다. 전혀 볼 수 없거나 아예 들을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반대로 완벽하게 볼 수 있거나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니엘은 사실과 사실 사이의 빈 곳을 자기 나름의 상상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말하자면 그는 작가가 된 게 아니라 작가가 될 수밖에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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