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이후, 성인지 감수성 새 관점 제시한 2018년 대법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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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29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성폭력 피해 뒤 상당 시간이 지나 사건을 고발하는 미투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직접증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판단할 때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에 갇히지 말라는 첫 판시로 여성들의 용기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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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29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인 ‘이프로스’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검찰 내에서 벌어진 강제추행 피해 사실과 인사 불이익의 과정이 기록돼 있었다. 미투의 시작이었다. 수많은 여성이 유폐됐던 성폭력을 증언하고 또 연대했다. 그렇게 6년이 흐른 오늘, 한겨레는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서지현을 만났다. 서지현의 7번의 재판과 그 이후 법정에 선 미투 사건들을 살피며, 법원의 변화와 한계도 짚었다.
‘미투 운동’은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는 질문을 사법부에 정면으로 던졌다. 성폭력 피해 뒤 상당 시간이 지나 사건을 고발하는 미투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직접증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판단할 때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에 갇히지 말라는 첫 판시로 여성들의 용기에 화답했다.
오랜 기간 법원은 ‘경험칙’에 비춰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이 믿을 만한지 판단해왔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경험에 비추어 말이 되는지 따져보겠다는 취지였지만, 피해자 중심주의가 결여된 경험칙은 수많은 피해자의 진술을 배척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별다른 항의 없이 가해자와 기존 관계를 유지했다’는 등의 사정은 법정에서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런 ‘경험칙’이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2016년까지 선고된 성폭행 사건 판결문을 분석한 사법정책연구원의 ‘성폭력 사건 판결문을 통한 경험칙 연구’(2020년)는 “성폭력 사건 판결문 속 ‘경험칙’은 내용이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있다”며 “전형적인 피해자상에서 벗어나 매 사건마다 개별적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고정관념에 제동을 건 대법원의 새 판례는 2018년 4월에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학생들의 성추행 신고로 해고된 대학교수가 제기한 징계취소 청구 소송에서 ‘평소 대학교수와 격의 없이 지내던 피해 학생들이 지난 일을 신고한 정황이 이례적’이라며 교수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파기했다. 아울러 “성희롱 관련 소송 심리를 할 때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판단할 때 ‘성범죄가 구조적 폭력’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법원의 선언이었다. 대법원은 같은 해 10월 이 판례를 성범죄 형사재판으로도 확장했다.
수도권에서 성범죄 사건을 전담하는 부장판사는 “2018년 판례는 그동안 성범죄 형사재판에서 완전히 배제됐던 피해자의 존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분기점”이었다고 평가했다. 법원 내 연구모임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현성연) 간사를 맡은 조정민 부장판사는 “판사들 사이에서 쉬운 사건으로 여겨졌던 성폭력 사건은 이제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는 중요 사건으로 인식된다”며 “미투 이후 법원에서 피해자 의견 진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고 피해자들도 진술을 신청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가 재판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조 부장판사는 “지금은 사법절차를 통해 피해자가 피해자임을 입증해야만 최소한의 명예를 건질 수 있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물론 사법절차는 중요하지만 재판의 결과와 관계없이 피해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해줄 수 있도록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단계”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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