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정치 테러'에도…여전한 '혐오·막말' 팬덤정치
음모론·공격언어, 유튜브 타고 '혐오의 정치' 심화…현실서 혐오범죄 일으키는 자양분
"혐오정치, 사회 지도층이 주도" 지적도…전문가들 "양극화된 정치 문화부터 개선해야"
최근 한 달 동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연이은 '정치 테러'를 당하면서 당분간 모방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극단적 정치 콘텐츠가 유튜브 등을 통해 증폭되는 인터넷 미디어 환경이 현실에서 혐오범죄를 일으키는 자양분이 됐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배후' 음모론…진영 간 갈등 부추기는 유튜버·정치인들
이 대표 피습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지난 29일 피의자가 편협한 시야로 정치적 이념과 사상에 맹목적으로 몰두한 결과 특정 정치인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을 표출했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런 가운데 국회 거대 양당이 '양극단의 정치'를 끝내자고 호소하고 나섰다.
하지만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는 여전히 상대 정당을 향한 비방이나 범인의 정치 성향을 두고 각종 음모론이 퍼지는 등 정치 진영 간 대립을 부추기는 극단적 콘텐츠가 넘쳐나고 있다.
배 의원 피습 사건 직후인 지난 26일 강성 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는 A군에 대해 "이놈 왠지 이준석과 민주당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한 몸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29일 강성 보수 유튜브 채널 '이봉규TV'은 '배현진 사고는 이재명 책임'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이재명이 사법질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놨으니까 테러도 자꾸 일어나고 범죄자들이 법에 대한 두려움을 못 느낀다"며 민주당 이 대표의 책임으로 몰아갔다.
비슷한 성격의 보수 유튜브 채널 '뉴스위크'는 26일 올린 영상에서 "학생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은 전교조의 결과물"이라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직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 배후 세력을 언급하거나 상대 정당을 비방하는 내용으로 진영 간 갈등을 부추기는 건 비단 유튜버뿐만이 아니었다.
전여옥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지난 27일 자신의 블로그에 '애들은 가만두자, 제발!'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배현진 의원 머리를 돌로 17번이나 내리친 중학생이 민주당 지지자로 밝혀졌다"면서 "문제의 그 중학생은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민주당 집회에 나간 사진도 올렸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와 관련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28일, A군이 지난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 집회에 참여한 자기 모습을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있는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공유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지난 29일 만난 A군의 1년 선배 B(16)군은 "(A군의) 정치 성향은 그렇게 크게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냥 (양쪽 정당을) 다 욕하고 다녀서 (A군 정치 성향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 대표 피습사건과 관련해선, 민주당 김홍태 서울시당 청년부위원장이 지난 6일 트위터에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부산대학교 병원장의 배후 세력에 의문이 생긴다"며 지난해 11월 해당 병원장을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지역 필수의료 혁신 TF 민간위원으로 임명했다는 사진기사를 함께 올렸다. 이 내용은 같은 날 친명 성향 유튜브 채널 '새날'을 통해 재확산됐다.
고려대학교 이신화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철을 앞두고 (정치인 피습) 사건에 대해 유튜브, SNS 등에서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현상 자체가 사회를 두 쪽으로 쪼개지게 한다. 이번 사건이 특정 정치 집단에 원인이 있다는 식의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대 막론, 정치혐오 내면화…증오가 폭력으로 표출"
전문가들은 최근 정치 테러를 '혐오 정치'의 극단적 표출로 보고 있다. 세대를 막론하고 기존에 만연한 정치혐오를 내면화한 탓에 특정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증오가 폭력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는 "배 의원을 피습한 학생이 무슨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테러를 저질렀다고 보진 않는다"며 "우리 사회에 정치 혐오가 있고 나이가 어린 피의자는 (뚜렷한) 가치관 없이 휩쓸린 것이다. 어른들의 정치혐오를 그냥 쫓아간 것이다"고 진단했다.
우석대 배상훈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정치인들이 막말하는 게 일상적"이라며 "(이러한 혐오범죄는) 정치 지도자나 사회 지도층이 주도하고 있다. 일종의 배리어(심리적·윤리적 장벽)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배 의원 사건과 관련해선 '정치인 피습' 피의자의 연령대가 낮아진 점에도 주목했다.
성균관대학교 구정우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엔 중장년층이 (정치인 피습을) 저지른다는 인식이 있었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나 테러가 이제 젊은 세대로 옮겨가는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다"며 "(이번 피습 사건으로) 정치 폭력이 특정 세대나 집단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게 됐다"고 해석했다.
단국대 임명호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이 SNS에서 무분별한 정보에 노출돼 공격적이고 편향된 정보를 흡수할 수밖에 없다"며 "잘못된 정보로 인해서 (정치인 테러 등이) 사회 정의나 공정성을 실현하는 것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상대 정당 향한 원색적 비난 자제…양극화된 정치 문화 개선해야"
전문가들은 양극화된 정치 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혐오가 폭력 행위로 이어지는 현상을 막을 수 없다고 봤다.
실제로 사건을 전후로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치인을 대상으로 폭력을 저지르고 싶다는 게시글 및 댓글이 게재됐다.
사건 전날인 24일 온라인 커뮤니티 에프엠코리아에는 '尹과 한동훈 갈등, 이준석-김기현과 달랐다'는 한 언론보도 화면을 캡처해 올리며 '이전 당대표인 이준석, 김기현의 숙청 과정'이란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다. 해당 게시글에는 "이거 보면 볼수록 배현진에 대한 진짜 혐오가 차오른다", "배현진 잊지 말자", "X 패고 싶다 XXX들" 등 40여 개 댓글이 달렸다.
구 교수는 "피습 사건의 원인 중 하나는 상대와 타협하지 않고 한쪽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상대를 악마화하는 정치 풍토"라고 분석했다. 이어 "상대를 적대시하고 악마화 하는 정치인들의 정치 행태, 발언을 해결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곽 교수도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깔린 '편 가르기 (문화)' 또 건강하지 못한 혐오(문화)를 융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에서는 원색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상대 정당을 깎아내리는 비난을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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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영 기자·나채영 수습기자·주보배 수습기자 mat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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