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속 ‘문제의 한줄’ 뭐길래… 1000억짜리 소송 휘말린 스마일게이트RPG

노자운 기자 2024. 1.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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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로스트아크’ 개발사 스마일게이트RPG가 1000억원대 소송에 휘말렸다([단독] 스마일게이트RPG, 라이노스운용에 1000억원 손배소 당해… “200억 투자했으니 상장 추진했어야). 7년 전 200억원을 투자했던 회사가 상장 약속 미이행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나선 것이다. 1000억원은 소송을 위한 일부청구(채권 중 일부만 청구) 금액일 뿐, 진행 상황에 따라 늘어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건 계약서상 한 줄이다. ‘전환사채(CB) 만기 직전 사업연도 당기순이익이 120억원 이상일 시 상장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 스마일게이트RPG와 라이노스자산운용은 이 한 문장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할 전망이다. CB를 회계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가 관건이다.

(스마일게이트RPG 제공)

◇ 영업익 3600억 났지만 ‘1400억 적자’?

스마일게이트RPG는 스마일게이트홀딩스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오늘날 스마일게이트 그룹을 있게 한 대표작 ‘로스트아크’를 개발해 서비스하고 있다.

스마일게이트RPG는 상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해 11월 미래에셋증권으로부터 1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미래에셋증권은 법적 원고일 뿐, 실질적 소송 주체는 2017년 12월 20일 CB 형태로 200억원을 투자했던 라이노스자산운용이다. 라이노스가 펀드를 결성해 투자했는데, 펀드 출자자 중에는 모 건설사 부회장을 지낸 A씨 등 개인 투자자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마일게이트RPG와 라이노스는 계약서 속 상장 요건에 대해 정반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양측은 CB 만기(2023년 12월 20일) 직전 사업연도의 당기순이익이 120억원 이상일 경우 상장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 한 줄만 두고 다투는 상황이다.

CB 발행 이후 스마일게이트RPG는 로스트아크의 성공으로 성장가도를 달렸다. CB 투자를 받았던 2017년에는 273억원의 적자를 내는 회사였지만, 2022년엔 영업이익이 3641억원에 달했다.

이에 라이노스는 스마일게이트RPG가 계약상 요건을 충족했다고 판단, 상장 추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상은 달랐다. 수천억원의 영업이익이 났음에도 1426억원의 당기순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사업이 잘 안돼서가 아니었다. 기업가치 상승에 따라 파생상품 평가손실 5357억원이 발생하며 당기순손실로 계상됐기 때문이다. 스마일게이트RPG는 2019년 콜옵션을 행사해 200억 중 30%를 상환하고 나머지는 CB로 남아있었는데, 해당 물량의 공정가치가 2022년 말 190억원에 불과하지만 주식으로 환산할 시 가치가 5357억원으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이는 CB가 국제회계기준(IFRS)에 따라 부채로 인식되기 때문에 발생한 딜레마다. 우리나라는 2011년부터 전체 상장사에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을 적용하고 있다. 상장을 준비하는 회사도 일반적으로 K-IFRS를 적용받는다.

◇ 기업가치 상승분만큼 부채 늘어… 계약서 그대로 이행해야

상장 요건에 대한 별도의 조항이 없는 만큼, 양측은 계약서상 한 문장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할 전망이다.

먼저 스마일게이트RPG 측은 계약서 상 문구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존 K-GAAP은 부채를 CB 발행 가격 그대로 반영해 놓지만, K-IFRS 방식은 기업가치 상승분만큼 늘어난 부채를 회계상에 반영하도록 한다. 기업가치가 낮을 때 투자했던 투자자가 전환권을 행사해 현재 시가보다 현저히 낮은 값에 주식을 가져가면, 발행사 입장에선 현 시가와 CB의 전환가액의 차이만큼 손실을 보는 셈이기 때문이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계약서는 문언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고 기업공개(IPO) 시장 여건이 악화한 상황에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한 채 상장을 강행했다면, 배임 논란이 불거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도 “계약 당시 영업이익이 아닌 당기순이익 조건을 건 라이노스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라며 “라이노스 입장에선 억울하겠지만 계약서 내용이 저러니 별 도리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애초에 라이노스도 상장 실패를 염두에 두고 안전 장치를 마련해 놨던 만큼, 스마일게이트RPG 탓만 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계약 당시 스마일게이트RPG는 상장 여부에 관계 없이 연이자율 2.0%를, 상장이 안 될 경우 만기 상환 시 복리 3.5%의 수익률(YTM)을 보장해 주기로 합의한 바 있다. 2017년까지만 해도 금리 0%의 ‘무이자 CB’가 워낙 많았던 만큼, 라이노스도 상장 무산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놓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현재 스마일게이트RPG는 YTM 3.5%를 적용해 원금과 이자를 돌려주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라이노스가 상환받길 거부하자, 돈은 공탁해 둔 상태다. 라이노스가 이를 상환 받는다면 CB 투자를 통해 얻는 최종 수익은 약 50억원으로 추산된다. 투자 기간 내 내부수익률(IRR)은 5.1% 수준이다.

◇ “기업가치 7조인데 원리금만 받고 나가라고?”

반면 라이노스 측에서는 CB 전환가 상승에 따른 대규모 결손은 이론적인 결손일 뿐 ‘상장 부적격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CB는 단순한 회사채가 아니라, 회사 가치가 올라가면 그 상승분이 투자자에 귀속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는 상품”이라며 “기업가치가 수조원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음에도 원금과 이자만 받고 나가라는 건 자본시장의 근간을 해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IB 업계에서는 스마일게이트RPG의 기업가치를 고점 기준 7조원대로 추산한다. 2022년 영업이익(3641억원)에 주가수익비율(PER) 20배만 적용해 단순 계산해도 7조2820억원이 나온다. 현재 엔씨소프트와 크래프톤 등 대형 게임사들의 적정 PER이 약 20배 안팎이다.

CB를 꼭 부채로만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2011년 ‘질의회신 회제이-00094 신주인수권 회계처리’를 통해 전환권을 자본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다만 이는 유무상증자나 합병 등을 제외한 나머지 경우에 리픽싱(전환가액이나 비율 조정)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을 때만 예외적으로 성립한다. 이럴 때는 금액과 수량이 확정돼 ‘확정대확정’ 요건이 성립하기 때문에 자본으로 계상된다. 회계상 자본에는 확정적인 수치만 기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리픽싱이 가능해 확정대확정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면, 이는 부채로 봐야 한다는 게 IFRS의 관점이다.

이번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제31민사부에서 심리한다. 준비기일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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