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선점에만 2000억대 웃돈 불사···‘통신 영토’ 주파수가 뭐길래
SKT, 5G 대역 추가 할당 ‘촉각’
제4이통사, 이르면 오늘 결정
알짜 땅 두고 '알박기 논란'까지
주파수 높을수록 땅 넓어지지만
개간 비용 부담···28㎓ 성패 주목
이동통신사들이 통신사업의 기반이 되는 영토 ‘주파수 대역’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1위 통신사 SK텔레콤은 조만간 정부 발표를 통해 매물로 나올 새로운 5세대 이동통신(5G) 주파수 대역을 매수 추진할 전망이다. 매수금액만 2000억 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회사는 2018년 처음 5G 주파수 대역을 할당받을 때부터 주변 확장에 유리한 ‘사통팔달(四通八達) 입지’를 선점하는 데만 2500억 원을 쏟아부었을 정도로 이 대역에 눈독을 들여왔다. 그런가 하면 중소기업들까지도 제4이통사를 꿈꾸며 주파수 비용으로 14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부른 상황이다.
3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새로운 주파수 공급 계획인 ‘디지털 스펙트럼 플랜’을 31일 발표한다. 과기정통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는 SK텔레콤이 2년 전 할당을 요청한 3.7~3.72㎓(기가헤르츠·10억㎐) 대역 20㎒(메가헤르츠·100만㎐)폭을 포함해 총 3.7~4.0㎓ 대역 300㎒폭의 공급 계획이 나올 것으로 내다본다.
SK텔레콤이 3.7~3.72㎓ 대역을 할당받으면 이와 인접한 기존 주파수 대역과 합쳐 총 120㎒폭의 5G 주파수 대역을 차지하게 된다. 대역폭은 데이터가 오가는 도로의 폭으로 비유되는 만큼 경쟁사보다 더 빠른 통신 서비스 구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전례를 참고하면 SK텔레콤이 이 같은 도로 확장에 2000억 원에 달하는 지출도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LG유플러스는 비슷한 20㎒폭을 1521억 원에 사들였다. 롱텀에볼루션(LTE) 시대가 꽃폈던 201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KT가 자사가 아닌 SK텔레콤과 인접한 800㎒ 대역 10㎒폭을 2610억 원이나 들여 사놓고 관련 투자를 하지 않아 단지 경쟁사를 방해하려는 게 아니냐는 ‘알박기 논란’을 부른 일도 있었다. 결국 해당 주파수 대역은 2020년 정부가 회수해갔다.
한편 당장 이날에는 제4이통사 전용 주파수인 28㎓, 정확히는 26.5~27.3㎓ 대역 800㎒폭을 차지할 사업자가 가려질 가능성이 있다. 후보 업체인 스테이지엑스와 마이모바일은 주파수 경매 사흘 만인 전날까지 입찰가 1414억 원을 부르며 한치의 양보도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저 입찰가였던 742억 원의 2배이자 2018년 통신 3사가 각자 이 주파수 대역에 쓴 2000억 원에 임박한 수준이다. 후보 업체들의 자금력을 고려할 때 1000억 원 내외에서 낙찰가가 나올 것이라는 업계 예상을 크게 웃도는 입찰가가 매겨지면서, 이날 바로 승부가 가려진다고 해도 승자에게는 어느 정도 재정 출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통신사들이 서로 앞다퉈 차지하려고 수천억 원의 비용을 마다하지 않는 주파수 대역이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주파수와 전파부터 알아야 한다. 주파수는 파동, 즉 전파나 음파(소리)처럼 ‘무언가’(어떤 물리량)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현상이 1초 동안 반복되는 횟수다. 단위는 ‘초’의 역수, 더 보기 편하게는 ㎐(헤르츠)로 표시된다. 120㎐는 무언가가 1초에 120번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뜻이며 스마트폰 화면의 깜빡임 속도를 뜻하는 주사율 역시 이 단위를 쓴다. 음파의 주파수는 성대나 악기가 만들어낸 공기의 진동 속도를 말하며, 주파수가 높은 음파는 사람에게 ‘고막이 찢어질 듯한’ 고음이나 심할 경우 초음파로 느껴진다.
우리가 ‘빛’이라고 부르는 ‘전자기파’도 파동의 일종으로 주파수를 갖는다. 마이클 패러데이부터 제임스 맥스웰까지 전자기학을 정립한 19세기 물리학자들은 양(+)극과 음(-)극에 의해 발생하는 전기와 N극과 S극에 의해 발생하는 자기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정확히는 전기가 생기고 사라지는 변화가 자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자기가 생기고 사라지는 변화가 전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오늘날 반드시 필요한 기술인 발전(發電) 역시 연료로 물을 가열해 수증기를 만들어낸 후, 이 수증기가 터빈을 돌리고, 이 회전으로 말미암아 터빈 주변 자석이 만든 자기가 변하고, 결국에는 자기 변화가 전기를 만들어내는 원리를 가졌다. 설명이 길었지만 결국 전기는 자기를, 그 자기는 다시 전기를, 그 전기는 다시 자기를 반복해서 만들어내며 공간상에 퍼지는 파동을 전자기파라고 한다. 그리고 그 주파수는 이 같은 전자기 상호작용이 1초 동안 반복되는 횟수로 정의된다.
전자기파는 주파수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우리가 좁은 의미의 빛으로 부르는 가시광선은 400~800㎔(테라헤르츠·1조㎐)의 주파수를 갖는다. 우리의 시신경을 자극해 ‘빨주노초파남보’ 빛깔로 인식되는 전자기파다. 이보다 주파수가 높은 전자기파는 조류의 눈에만 보이며 사람에게는 피부에 악영향을 주는 자외선이 된다. 주파수가 더 높아지면 투과력이 강한 X선, 더 높아지면 방사능 물질이 내뿜는 감마선이 된다.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인체에 해로울 정도로 강한 에너지를 갖는 전자기파가 되는 셈이다. 반대로 가시광선보다 주파수가 낮은 전자기파가 적외선, 그보다 더 낮은 전자기파가 바로 통신과 TV·라디오 방송에 쓰이는 전파다. 법적으로 전파는 3㎔, 즉 3000㎓ 이하 주파수를 갖는 전자기파로 정의된다.
전파는 특정 디지털 정보에 대응하는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데이터 송수신을 구현한다. 이때 사용되는 전파는 3.6~3.7㎓와 같은 특정 주파수 범위, 즉 대역폭을 갖고 대역폭이 커질수록 데이터 전송속도가 빨라진다. 심병효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당 하나의 정보 단위 전송을 담당할 수 있으며 대역폭이 커질수록 전송속도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정보 단위’는 상황에 따라 다르며 통상 수 bit(비트)의 정보량을 의미한다고 한다. 대역폭이 데이터가 오가는 도로의 폭으로 비유되는 이유이자 통신사들이 기를 쓰고 이를 넓히려 하는 이유다.
특히 SK텔레콤은 과기정통부가 집계한 지난해 11월 국내 5G 가입회선이 전체(3251만 개)의 절반 수준인 1552만 개에 달하는 데도 KT(975만 개), LG유플러스(698만 개)와 동일한 100㎒의 5G 대역폭을 가지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가입자가 많을수록 데이터 처리량도 늘어나는 만큼 경쟁사보다 넓은 데이터 도로를 가져야 마땅하다는 얘기다. SK텔레콤은 2018년 5G 주파수 대역을 처음 할당받을 때부터 장차 대역폭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현재 3.5㎓라고 부르는 5G 주파수는 그 근방인 3.4~3.7㎓ 대역을 의미한다. 이 구간을 3사가 0.1㎓, 즉 100㎒씩 나눠가진 것은 물론 그 위치까지 경매를 통해 결정했는데 SK텔레콤은 KT(0원), LG유플러스(351억 원)보다 훨씬 많은 2505억 원을 부르고 3.6~3.7㎓ 대역을 선점했다. 미할당 주파수와 거의 맞닿은 LG유플러스의 3.4~3.5㎓나 경쟁사들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낀 KT의 3.5~3.6㎓와 달리 3.6~3.7㎓는 그 이상의 주파수로 대역 확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처럼 통신속도를 높이기 위해 대역폭을 넓혀야 하고 다시 이를 위해서는 더 높은 주파수의 전파를 써야 한다. 일례로 1~2㎓ 근방의 LTE는 10㎒폭, 3.5㎓ 근방의 5G는 100㎒폭씩 3사가 나눠가지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보다 빠른 28㎓ 5G는 800㎒폭을 자랑하며 6G는 그 이상일 것이다. 하지만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전파의 사거리가 짧아지고 이는 현실적으로 통신사에게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많은 기지국을 세워야 할 의무를 지운다. 이동통신 세대가 거듭될수록 주파수와 대역폭이 증가해 광활한 영토가 주어지지만 정작 이를 개간(開墾)할 능력이 없다면 황무지에 불과한 셈이다. 지난해 통신 3사는 개간 능력 또는 의지의 부족으로 28㎓ 대역을 정부에 반납했고, 정부는 이를 다시 제4이통사에게 할당할 계획이다. 제4이통사가 앞으로 조(兆) 단위의 사업비를 들여 3년 간 6000개의 기지국을 포함한 28㎓ 망을 구축하고 기존 3사와 차별화한 통신 서비스로 시장 안착에 성공할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김윤수 기자 sook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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