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중국기업에 우리의 안방을 내주려 할까
글로벌 디지털 경제 패권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미래 성장 동력인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일찌감치 자국의 기술 플랫폼 기업을 육성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미래산업 동력을 훼손한다는 판단에 따라 기존에 발의된 플랫폼 규제 법안을 대거 폐기하였으며, 중국은 바이두, 텐센트 등을 AI 혁신 플랫폼으로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어이없게도 토종 플랫폼 기업을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토종 디지털 플랫폼을 보유한 유일한 나라다. 구글과 페이스북에 대항해 네이버와 카카오가 선전하고 있고, 쿠팡은 로켓배송이라는 혁신적인 서비스로 세계 최강 아마존의 국내 진출을 막아 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플랫폼 기업들은 GDP의 상당 부분에 기여하며 고용이나 국민들의 편익을 담당하고 있다. 2022년 기준 4800만 명이 이용하고 있는 네이버에는 55만 개의 스토어가 입점하여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으며, 쿠팡은 5만 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여 2000만 명이 넘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국내 대표 배달 앱인 배달의민족에는 30만 개가 넘는 음식점이 입점해 있으며 매일 수만 명의 라이더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기업협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인터넷 기업의 총 매출액은 490조 원으로 국내 GDP의 25.4%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네이버와 카카오는 팬데믹으로 전 국민이 고통받을 때 코로나19 발생 현황, 백신 접종 현황 및 관련 정보를 제공했으며 음식점에 입장할 때 QR코드 시스템을 제공하는 등 공공의 이익에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최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국내에서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면서 국내 플랫폼 기업들은 엄청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 중국기업은 모두 시가총액 기준으로 네이버, 카카오의 8~10배나 크고 특히 자금력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중 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정치적 상황에서도 작년에 미국에서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제치고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으로 젊은 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렇게 막강한 중국 플랫폼이 미국 시장을 장악하고 여세를 몰아 국내에도 진출하면서 우리 기업들의 위기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 플랫폼 기업들을 더욱 맥 빠지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작년 12월 정부는 느닷없이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이라는 칼을 꺼내 들었다. 이법은 시장 지배력이 큰 대형 플랫폼 기업을 미리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자사 이용자에게 경쟁 플랫폼의 이용을 금지하는 것), 최혜대우 요구 등의 행위를 집중 감시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으로 알려졌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사후규제' 방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위법 여부를 상시 들여다보는 '사전규제'를 도입하고 입증책임을 기업에 부과하는 것이 포함되는 것으로, 이 법이 통과되면 기업의 혁신이 제한돼 우리나라 기술 및 산업 경쟁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특히 토종 플랫폼 기업의 역량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 중인 우리나라 AI 발전에도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꼴이 된다는 의견이다. 법안이 면밀한 검토 없이 신속하게 추진되는 것에 반해 산업과 시장에 미칠 영향은 굉장히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우려를 인식해 공정위는 해외 기업도 규제 대상으로 하겠다고 하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통상마찰 가능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지난 2021년 통과된 인앱결제 규제 법도 구글과 애플을 상대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플랫폼공정경쟁촉진법이 통과되면 국내 플랫폼 기업에만 적용돼 해외 기업들에게 국내시장을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시장점유율이 낮아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중국 플랫폼들이 우리의 안방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또한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어렵게 키워낸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규제 환경은 글로벌 평균보다 높으며 이는 기업의 생존과 혁신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공정위가 추진하려는 사전규제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편하고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우리 정부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유럽의 DMA 입법 취지가 거대한 글로벌 플랫폼으로부터 EU의 IT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기술은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 기술에 대해 충분히 잘 아는 전문가지만 안타깝게도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과 기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 의해 지배된다'라는 유명한 '퍼트 법칙'(Putt's Law)이 있다. 아치볼드 퍼트가 쓴 '퍼트 법칙과 성공적인 경제관료'(Putt's Law and the Successful Technocrat)에 나오는 내용이다. 퍼트의 법칙은 기술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기업 또는 국가의 각종 프로젝트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에도 흔히 나타난다. 그래서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정책 방향이 모호하지 않고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또한 끊임없는 의사소통을 통해 모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의사 결정권자가 권력의 힘으로 밀어 부치거나 자신의 무지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서 잘 모르는 부분을 피해 가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힘겹게 벗어났지만 그 후폭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동전쟁도 격화되고 있으며,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이라는 돌발 악재와 함께 글로벌 경기 침체, 경제 불확실성도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상황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블랙스완처럼 나타난 것들이다. 이처럼 세상은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그것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생성형 AI 열풍은 불과 탄생 1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과연 이러한 변화를 누가 꿈에서라도 예측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혁신 생태계의 변화는 어지러울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사전 규제를 굉장히 우려하게 되는 이유이다.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더욱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손발을 묶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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