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첫 사망에 바이든 “보복”… 얽히고설킨 중동 전쟁, 확전 우려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4. 1. 30.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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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자유주의 대결 격화

이스라엘과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 간 전쟁으로 중동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27일 친(親)이란 무장 세력의 드론(무인기) 공격으로 미군 3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이슬람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미군이 중동에서 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즉각 “우리가 선택하는 시기와 방식으로 이 공격에 책임 있는 이들을 처벌하겠다”며 보복을 천명했다.

그래픽=백형선

백악관에 따르면 이날 시리아 국경 인근 요르단의 전초기지 ‘타워 22′에서 미군 3명이 사망하고 최소 34명이 부상당했다. 미국의 우방 요르단에는 미군 3000여 명이 주둔 중이다. ‘타워 22′는 시리아·이라크·요르단 3국 접경에 있다. 친이란 민병대 연합 조직 ‘이라크 이슬람 저항군’은 이번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부상자 상당수가 중상을 입어서 사망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CNN 등 미 언론들은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팀이 가장 두려워했던 날이 왔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습격과 민간인 학살로 촉발된 중동 전쟁의 전선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면서 미국까지 빨려 들어가는 국면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양인성

바이든이 보복을 확언한 이상 미국의 본격 개입은 시간문제로 분석된다. 미국은 최근 홍해에서 상선을 무차별 공격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을 영국과 합동으로 공습했지만, 이보다 강력한 군사적 개입을 단행할 경우 어떤 방향으로든 전장(戰場)의 확대는 불가피하다. 이미 이번 전쟁은 이슬람권의 수니·시아파 종파 분쟁, 세속·원리주의 이념 갈등, 중동 내 민족 갈등 수많은 분쟁 요소와 얽히면서 확전 양상을 보여왔다. 미국이 실제 보복 공격에 나설 경우 이미 중동 주요 국가로 전선이 빠르게 확대돼 온 이번 전쟁이 재작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도 얽히면서 중동·아시아·유럽까지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래픽=양인성

최근 2주간 중동은 최소 10여 국과 무장 세력이 개입한 다양한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서 ‘난장판’이라는 말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대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후티·헤즈볼라 등 이스라엘과 싸우는 이른바 ‘저항의 축’ 지원 세력으로 지목돼 온 이란은 이라크·시리아·파키스탄 등 인접국 내 반(反)이란 무장 세력에 공격받자 보복을 명분으로 이 지역들을 타격했다. 이는 핵탄두 260여 개를 보유한 핵보유국 파키스탄이 이란을 겨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란과 파키스탄은 갈등을 봉합하겠다고 밝혔지만, 확전 위기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하마스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작년 11월부터 홍해 통과 상선을 무차별 공격하며 세계 해운업계를 마비시킨 예멘의 이슬람 단체 후티는 미국 등의 공습에도 위축되지 않고 러시아산 석유 제품을 실은 유조선까지 오인 공격하는 등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의 충돌도 전면전 수준으로 격화하고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일원이면서도 중동에서는 반정부 쿠르드 세력 소탕을 명분으로 러시아와 협력했던 튀르키예는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기지를 공격하면서 새로운 분쟁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문제는 확전 일로의 중동 전쟁이 곧 러시아의 침공 2주년을 맞는 우크라이나는 물론 한반도 정세와도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스라엘과 맞선 이슬람 무장 세력에 북한 무기가 투입된 물증이 잇따라 포착됐다. 국제사회는 북한제 무기의 투입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동 내 반(反)이스라엘 세력 구심점인 이란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선 러시아의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제 샤헤드 드론을 띄워 우크라이나 곳곳을 공습해 왔다.

이 사례들은 중동·유럽·아시아 지역이 하나의 거대한 글로벌 전쟁터로 통합되는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 속에 남북한 군사적 대결 구도가 한반도에서 7500㎞ 떨어진 우크라이나 전선(戰線)으로 확장되는 극단적 상황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북한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을 전후해 본격화한 러·북 군사적 밀착은 러시아가 북한제 탄도미사일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정도로 탄탄해졌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장기화시킬 위협 요소로 북한의 지원을 꼽고 있다. 반면 한국은 미국 등 제3국을 거쳐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간접 지원했다. 일본 역시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을 간접 지원하기로 했다.

세계의 안보는 전체주의와 자유주의의 거대 양자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이스라엘을 기습한 하마스, 이 둘에 무기를 공급한 북한, 중동 내 반이스라엘의 구심점 이란, 북한과 러시아의 핵심 우방으로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중국이 범전체주의 진영을 이룬다. 나토와 한국·일본·대만·이스라엘 등 친미·서방을 중심으로 하는 범자유주의 진영이 이에 대항하고 있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 뒤 80년 가까이 대규모 전면전을 치르지 않고 이어지던 냉전(冷戰) 구도가 일촉즉발의 열전(熱戰) 구도로 급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8일 독일 ARD방송 인터뷰에서 “서방 동맹들의 도움으로 러시아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면 (이번 전쟁은)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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