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태국의 감사에 당황한 한국 공무원
서울에서 유학하던 태국인 낫티차 마깨우(27)씨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을 찾았다 ‘핼러윈 참사’에 휩쓸렸다. 당시 주태국한국대사관은 비상근무하며 고인의 시신을 발 빠르게 태국으로 데려왔다. 직원들이 십시일반 사비까지 털어 유족에게 운구 비용 등도 지원했다고 한다. 딸의 주검을 마주한 유족은 슬픔을 억누르며 이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현지 언론 등 여론도 대사관 대처를 좋게 평가했다.
자연스러운 일 같은데, 한국 공무원들은 이런 반응을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감사 인사에 당황했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공무원 집단에 비판을 쏟아낸다. 공무원들은 ‘무조건 죄인 모드’에 돌입한다. 책임 소재를 밝히고 재발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종종 도를 넘는다. 참사를 정쟁화하며 정치권이 만만한 공무원들을 먹잇감으로 쓰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공무원과 군인들 처지를 복기해 본다. ‘세월호 영상 녹화 장치(DVR) 바꿔치기’ 의혹은 세월호 수색 작업을 하던 해군이 사고의 진상을 은폐하려 수중에서 DVR을 고의로 바꿔치기했다는 것이다. 방송인 김어준씨 등이 주장했다. 당시 김씨는 인터넷 방송에서 DVR 수색 작업을 마치고 나온 군인 인터뷰를 내보내며 깔깔대며 조롱했고, 김씨 말을 믿는 이들은 군인들을 향해 집단 사이버 린치를 가했다.
이 음모론은 김씨를 통해 공식적인 의혹이 됐고, 세월호 사참위·특조위 등을 거쳐 특검 수사 대상까지 올랐다. 해군·해경 등 10곳이 압수 수색을 받고, 공무원 등 관계자 78명이 조사받았다. 음모론 제기 7년 만에야 특검을 통해 실체 없는 의혹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오랜 시간 죄인 취급받은 이들에게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고 아무도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공무원들도 이런 수난을 이제 숙명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듯하다.
‘세월호 AIS(선박 자동 식별 장치) 조작’ ‘해경의 희생자 구조 방기’ ‘유가족 불법 도·감청 사찰’ 등 비슷한 의혹 대다수도 실체가 없다고 드러났다. 이미 공무원 수백 명이 세월호 업무에 투입된 죄로 손가락질당하며 수사기관에 불려 다닌 뒤다. 유가족 불법 사찰 의혹으로 2018년 검찰 조사를 받으며 공개 굴욕을 당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는 유서에 “세월호 사고 시 부대원들은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는데 사찰로 단죄한다니 안타깝다”고 적었다.
핼러윈 참사는 경찰 수사와 민주당 주도의 국정조사를 거친 뒤 용산서장 등 23명에 대한 사법 처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세월호처럼 이 역시 특조위를 구성해 조사하겠다며 9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단독 처리했다. 만약 핼러윈 특조위가 출범하면 세월호 이후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한 공무원들까지 억울하게 만드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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