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 아니, 저 사람 귀가 왜 저런 거야?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2024. 1.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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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남편 귀 묘사, 문학의 ‘낯설게 하기’
플래카드·표어 천지 한국… 천편일률적 언어는 낭비·공해일 뿐
익숙한 것과 결별… 낡고 의미 없는 것 거부하고 새롭게 봐야
일러스트=이철원

‘낯설게 하기’라는 문학 용어가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문학이란 무엇인가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으로, 문학은 낯익은 것(언어, 감정, 풍경, 사고 등)을 새삼스럽게 만든다는 얘기다. 단골 예시가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귀 묘사 부분이다. 소설 초반부에 나오는데, 여주인공 안나는 며칠간 모스크바 오빠 집에 다녀오는 길이고, 페테르부르크 기차역에는 남편이 마중 나와 있다. 기차에서 내린 순간 그녀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이 남편의 귀. 그런데 그 귀가 영 낯설다. 그녀는 생각한다. ‘아니, 저 사람 귀가 왜 저런 거야?’

여러분은 귀를 자세히 본 적 있으신가? 사실 우리가 평소에 그냥 지나쳐 그렇지, 좀 이상하게 생기기도 했다. 절망에 찬 반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른 것도 거울로 본 귀가 낯선 이물질처럼 눈에 거슬렸기 때문인지 모른다. 귀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발가락도, 막상 들여다보면 생경하게 느껴진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나태주) 이전에, 오래 볼수록 낯설다.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 남편 귀의 낯섦은 부부 관계의 낯섦을 의미한다. 여행길에 마주친 멋진 장교와 열정의 싹을 틔운 그녀에게 남편은 이미 육체적으로 타인이 되어버렸다. 애초에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았던 터, 혐오스러운 귀는 그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문학을 읽고 공부하는 일에 효용성이 있다면, 다름 아닌 ‘낯설게 하기’의 효력 아닐까 싶다. 작가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보여주며, 또 항상 봐온 것도 달리 보고 보여준다. 이른바 문학의 ‘기법’이다. 이 기법을 읽어내는 일에 친숙해진 독자는 때론 자신의 일상까지도 낯설게 읽기 시작한다. 익숙한 나머지 눈길조차 주지 않던 것을 새롭게 바라보기도 하고, 자동화된 시선을 거둔 채 멈춰 서기도 한다. 삶의 관성이나 일반론 같은 것에 거리를 두며 딴 곳을 바라보려고 한다. 낯설게 본다는 것은 어쩌면 제대로 본다는 것이다.

언어에도 민감해진다. 언어는 생각의 전달체이므로, 생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낡아 빠진 것, 더는 의미 없어 보이는 것은 거부하기에 이른다. 사회적 상투어, 집단적 캐치프레이즈와도 작별을 고한다. ‘아니, 저 말이 왜 저런 거야?’, 자각하는 것이다. 큰소리로 펄럭이는 것일수록 우습고,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확신을 품는다.

말 나온 김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큰소리’ 즉 구호 관련하여 한마디 덧붙인다. 외국 나가 다녀본 나라 중에 선거철이나 축제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처럼 사시사철 방방곡곡 구호가 난무하는 곳을 보지 못했다. 나라 전체가 플래카드 왕국이고, 일상이 표어 천지다. 혹 외국인의 낯선 눈에는 ‘다이내믹 K컬처’의 증표로 신기하게 여겨질지 모르겠으나(’이것이 한국이다!’), 익숙해진 눈에는 뻔한 아우성 같다. 원색적이면서 천편일률적인 언어는 일상적 삶의 수준을 그렇게 전염시키고, 급기야 상상력과 심미안의 싹마저 잘라버린다. 사회적 낭비요 공해요 해악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개를 돌린다.

성공한 구호는 낯설고도 익숙하다. 메시지를 향한 무의식의 눈을 뜨게 한 후, 입에 붙는 말로써 순식간에 각인시켜 전파한다. 그런 목적을 위해 빌려 쓰는 수단이 언어의 시적 기능이다. 일상어를 낯설게 만드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그 옛날 미국 대통령 캠페인 구호였던 ‘I Like Ike’(아이 라이크 아이크). 아이젠하워의 애칭(Ike)과 ‘나는 좋다’(I Like)는 동사구의 메아리 효과를 이용한 일종의 말장난(pun)인데, 미국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캠페인 문구로 손꼽힌다. ‘좋다’는 단어 안에 이미 후보 이름이 들어 있어 그를 지지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고, ‘좋다’라는 평범한 말은 덩달아 비범해진다. 최근 등장한 서울 브랜드 ‘Seoul, My Soul’(서울 마이 소울)도 비슷한 사례다. 고유명사 ‘서울’과 영어 단어 ‘소울(마음, 영혼, 생명)’이 서로 메아리친다는 사실을 이전엔 미처 인식 못 했다. 끄덕이게 된다. 덕분에 서울이 의미를 찾았다.

말장난이 다는 아니다. 유사 기법의 유머, 조롱, 폭언을 무수히 보지만, 저질 말장난은 지루함만 유발하며, 시적 언어 유희의 격을 떨어뜨린다. 억지스럽고, 기계적이고, 그 너머의 메시지가 텅 비었기 때문이다. 한편,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도 있다. 숲속에서 작은 현수막을 발견한다. “도토리는 저의 소중한 식량입니다”라 적혔고, 옆에 ‘도토리 수호대’가 세운 ‘도토리 저금통’이 놓였다. 다람쥐가 공손하게 말하고, 다람쥐가 알뜰하게 저축한다! 그러니 사람도 함부로 도토리를 쓸어가기 어렵겠다.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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