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홍콩 ELS와 금융중심지

이은정 기자 2024. 1.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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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만기도래 10조 원, 지수 폭등 없으면 큰 손실…중국 금융정책 바꿔 위기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부산을 금융허브로 육성”

연초부터 금융권은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대규모 원금 손실 때문에 흉흉하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이 판매한 홍콩 H지수 ELS 만기 손실액은 올들어 2300억 원으로 확정됐다. 확정 만기 손실률은 53% 수준으로 원금이 반토막난 것이다. 게다가 홍콩 H지수가 고점이던 지난 2021년 판매된 상품들의 만기가 올해 속속 돌아올 예정이다. 앞으로 손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올 상반기 만기 도래를 앞둔 관련 상품 규모만 10조2000억 원으로, H지수가 폭등하지 않는 한 손실 규모는 절반인 5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우려된다.

ELS는 기초자산인 주가지수나 특정 종목의 주가 움직임에 따라 수익과 손실이 결정된다. 보통 2,3개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해 만기(3년) 중 6개월마다 조기 상환 조건을 충족하면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한다. H지수는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 중 50개 종목을 추려 산출한다. 상품별로 차이는 있으나 만기 시점의 H지수가 3년 전의 70% 수준은 돼야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저금리 시절, 은행 예금보다 이율이 높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금리 상품으로 여겨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홍콩 H지수가 급락하면서 투자자들은 좌불안석이다. 2021년 초 1만2000대를 넘어섰던 H지수는 2022년 10월 말 4938까지 급락했다. 지난해 1월 말 7773까지 급등했으나 다시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지난 22일 장중 4943으로 급락했다.

해당 상품을 판매한 은행에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은행들은 상품가입 과정에서 설명을 충분히 했고 사모펀드 사태 이후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준수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반박도 만만치않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5대 은행에 접수된 홍콩 ELS 관련 전체 민원 건수만 1410건에 이른다. 이들은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고, 대면 설명 과정에서 일부 녹취가 없었다면서 ELS 위험성이 충분히 고지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이 불완전 판매를 인정하면 금융권은 천문학적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반대로 불완전 판매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집단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안전한 상품이라고 생각해 은퇴자금을 올인한 노년층이 많아 걱정스럽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홍콩 H지수 기초 ELS 총 판매잔액은 19조3000억 원이다. 65세 이상 고령투자자에게 판매한 ELS금액은 전체 판매잔액의 30.5%인 5조4000억 원이나 된다. 90세가 넘는 초고령층 투자자 22명에게 판매한 잔액도 90억8000만 원에 달했다. 홍콩 H지수 ELS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 2015년, 2020년 등 수차례 원금 손실 공포를 안겼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모럴해저드에 빠진 금융회사 못지않게 금융당국의 책임도 크다.

2021년 홍콩 H지수 ELS에 가입한 투자자 대부분은 “설마 지수가 반토막날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증시가 뜨겁게 달아올랐고 최악의 경우는 오지 않을 것으로 짐작했지 싶다. 금융허브도시 홍콩에 대한 믿음도 컸다. 낮은 세율과 최소한의 규제 등 다양한 혜택으로 홍콩은 미국 뉴욕, 영국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허브였다. 하지만 미중 갈등, 중국 본토와의 경제 밀접화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홍콩 증시는 끝 모를 추락세다. 중국 정부가 홍콩의 금융 중심 도시로서의 기능을 축소해 상하이로 옮기려는 것도 홍콩 금융의 몰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홍콩의 찬란했던 과거와 현재 위기는 정부의 금융정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홍콩이 위기를 겪는 틈을 타 싱가포르가 금융허브로 발돋움하고 있다. 10여 년 전 홍콩이 금융허브로 잘 나가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부산은 ‘금융중심지’라는 허울 좋은 이름만 가진 채 제자리 걸음이다. 정부가 다른 강점이 많은 서울 대신 부산을 집중적으로 금융중심지로 육성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 부산에는 본사를 둔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와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주요 금융회사들이 있고 해양과 관계된 거의 모든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이 집중돼 있다. 금융 관련 기초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는 이야기다. 부산이 싱가포르와 비교해 경쟁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부산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은 부산이 진정한 아시아의 금융허브로 도약할 기회다. 부산이 이름 그대로 글로벌 금융도시만 된다면 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화 등 많은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다. 금융기관을 위한 혁신적 세제 혜택과 해외 인재 맞춤형 교육시설, 주거 혜택 등 파격적인 지원은 기본이다. 부산이 홍콩을 능가하는 금융허브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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