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거칠지만 아름다운 손

김세영 기자 2024. 1. 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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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섯에도 여전한 경쟁력 신지애 인터뷰
연습은 질보다 양이 중요···누구보다 열심히
과정에 집중하라는 어머니 가르침 평생 간직
현역 손이 부드러우면 오히려 그게 창피할 일
신지애의 손. 신지애는 “거친 손 덕분에 많은 분들에게 받은 걸 되돌려 줄 수 있는 삶이 됐다. 내 손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도 생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손이 됐으니 자랑스럽다”고 했다. 사진=유영호
[서울경제]
한국 골프 선수 최초로 세계 1위에 오르고 통산 65승을 기록 중인 신지애가 말하는 부끄럽지 않은 손, 그리고 20년 넘게 사무친 사모곡

예전에 비해 부드러워졌다고 했지만 손을 비비자 마른 소리가 났다. 바짝 마른 낙엽의 작은 마찰음과도 같았다. 그래도 여자 손인데 어린 시절에는 항상 피가 나고 갈라져 있어 남 보여주기 부끄러웠다고 했다. 지금은 그 거친 손 덕분에 많은 사람에게 받은 걸 되돌려 줄 수 있는 삶을 얻게 됐고, ‘노력의 표식’이기에 자랑스럽다고 했다.

한국 선수 최초로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고 전 세계 여러 투어에서 통산 65승(아마 1승 포함)을 기록 중인 신지애의 얘기다. 1988년 용띠 동기들은 대부분 필드를 떠났지만 신지애는 여전히 치열한 샷을 날리고 있다. 단순히 오래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지난해에도 2승을 거두는 등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신지애의 손은 골프채를 처음 잡은 1999년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줄곧 거칠다. 신지애는 현역의 손이 부드러우면 그게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신지애의 가족사는 이미 데뷔 때부터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중학교 3학년이던 2003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어머니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았다. 살아계신 또 ‘한 분의 어머니’를 배려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런 신지애가 어머니를 추억했다. 돌아가시기 전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했던 어머니의 말을 평생의 가르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엄마가 남긴 친필 육아일기를 보면서 힘들 때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2024년 청룡의 해는 용띠 신지애가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는 원동력이다. 파리 올림픽 출전과 한미일 투어 상금왕 완성, 일본 투어 영구시드 획득 등 이루고 싶은 꿈도 남아 있다.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투어를 뛰고 있다. 남들은 모르는 보이지 않은 노력을 엄청 나게 했을 것 같다.>>>

“솔직히 특별한 건 없다. 글쎄, 일단 연습을 많이 한다. 양으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 질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양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끊임없이 반복훈련을 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몸에 맡길 수 있다. 근데 연습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건 체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었다. 일단 튼튼한 기초 체력을 부모님께서 주셨다. 좀 전에 ‘보이지 않은 노력’이라고 했는데 나는 노력은 한 만큼의 결과를 가져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노력은 늘 보이는 거다.”

그런 점에서 맞는 말인 것 같다. 1999년 처음 골프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의 노력은 한결 같나.>>>

“그렇다. 오히려 요즘엔 집중이 좀 더 잘된다. 예전에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유명한 선수’가 돼서 힘들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골프에 좀 더 몰입하고 싶은데 유명 선수가 되면서 몰입이 방해되니까 한 말이었다. 20대 때는 그나마 체력이 되니까 버틸 수 있었지만 서른이 넘으면서부터는 힘들었다. 작년에는 골프에 집중이 잘 되면서 즐겁게 시합을 할 수 있었다.”

부단한 노력을 하다 보면 부상도 많다. 허리 부상 외에 손바닥과 팔꿈치 수술도 했다.>>>

“부상을 자주 겪다 보니 무섭지는 않다. 부상 또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여긴다. 진통제 먹으면서 뛸 수 있을 정도면 당장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기에 감사하다고 생각한다. 몇 차례 부상과 수술의 경험으로 인해 부상에 대한 겁은 없는 편이다. 반대로 프로 데뷔 후 처음 아파본 친구들은 부상을 무서워한다. 치유의 경험이 없어서다. 타이거 우즈만 하더라도 온갖 부상을 겪고 수술을 자주 하지 않았나. 우즈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부상을 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신지애의 올해 목표 중 하나는 파리올림픽 출전이다.

올해 목표 중 하나는 파리올림픽 출전이다.>>>

“올림픽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지난해 어머니께서 문득 ‘그거 아니? 내년에 올림픽 있는 거’라고 하시더라. 마침 그때가 US 여자오픈 끝난 뒤 세계 랭킹이 많이 올라가 있을 때였다. 일본 투어에서는 세계 랭킹을 올리는 게 쉽지 않아서 올림픽은 먼 나라 얘기 같았는데 나에게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들었다. 현재 랭킹 포인트가 많이 주어지는 LPGA 투어 카드는 없지만 몇 개 나갈 자격은 있다.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파리올림픽 여자골프는 오는 8월 열린다. 6월 마지막 주 랭킹에 따라 출전 자격이 가려진다. 나라별로 상위 2명이 출전하는데 세계 15위 이내 선수가 많은 국가에는 최대 4명까지 출전권이 주어진다. 신지애는 현재 한국 선수 중에서는 고진영(6위), 김효주(7위) 다음인 15위다.)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특별히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

“솔직히 미디어 노출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설레발 치고 싶지 않아서다. 목표가 있으면 좀 더 집중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성적도 훈련의 결과일 뿐 특별한 건 없다. 지금처럼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일본 투어 상금 1위에 오르면 최초로 한미일 3개국 상금왕에 오른다. 지난해 출전 대회 수(22개)를 보니 상금 1위 선수(32개)에 비해 10개 대회나 덜 뛰었더라.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출전 대회 수를 더 늘릴 필요도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나도 36세다. 예전처럼 30개 이상의 대회를 소화하기 힘들다. 대회 수를 줄인 건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 덕분에 결과가 잘 나왔다고 본다. 물론 상금왕 타이틀을 얻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과정 자체에 몰입하고 싶다. 한동안 과정보다는 자꾸 결과만 생각하면서 골프가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연습하는 과정이 너무 즐겁다. 결과를 위해서 어떤 식으로 해야 한다가 아니라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바랄 뿐이다.”

2014년에 활동 무대를 일본으로 옮겼다. 돌아보면 그 당시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하나, 혹시 후회는 없나.>>>

“나를 꾸준히 봐온 분들은 내가 일본에 가자마자 얼굴이 많이 편해졌다는 걸 바로 느꼈다고 하더라. 물론 미국 LPGA 투어 카드를 반납할 때 실망하거나 안타까워했던 분들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일본에서 행복하게 골프를 하고 새로운 팬들도 만나고 더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미국 투어는 워낙 광대하고 골프에만 집중한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사람들과 훨씬 더 밀접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회 또는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많이 배웠다. 물론 미국에 있었으면 골프 기량은 의심할 여지없이 향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 신지애’가 아니라 ‘골퍼 신지애’만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이대로 흘러가고 싶다. 일본에 와서 그런 것들을 많이 배우고 얻고 있는 중이다.”

신지애가 올해 일본에서 2승을 더하면 통산 30승을 달성하면서 JLPGA 투어 영구시드를 받게 된다. 한국 선수가 일본에서 영구시드를 받은 적은 아직 없다.

인스타그램에 보니 ‘지애답게, 지애처럼, 지애스럽게’라는 말을 자주 올려놓더라. 어떤 의미인가.>>>

“늘 해왔던 그대로 하자는 의미다. 나에 대해 조금 더 집중하고 나다운 모습이 무엇일까 많이 생각한다. 행복하게 골프를 치는 모습을 잘 전달하고도 싶다. 그래서 ‘행복한 골퍼’라고도 써 놨다. 무엇이 행복할까? 감사하는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투어 뛰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진통제를 먹어도 이 정도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거에 감사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에 감사하고, 대회가 있음에 감사하고, 이렇게 앉아 인터뷰를 하는 것에도 감사하다. 지애다움이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면서 플레이하자는 다짐이다.”

프로 초기부터 집중력이 뛰어났다. 본인의 표현으로 하면 ‘존’에 잘 들어가고 오랫동안 유지한다. 비결은 뭔가.>>>

“그러려고 노력을 한다. 근데 그것도 체력인 것 같다. 체력, 정신력, 기술 중 뭐가 제일 중요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체력이 첫 번째라고 답한다. 체력이 있어야 기술을 올리거나 쓸 수 있고, 체력이 있어야 의지도 생기고, 그만큼 정신력도 유지되면서 강해질 수 있다.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제 동생들과 하는 말이 있다. 공부가 안 돼 스트레스 받을 땐 공부를 하면 되고 골프가 안 돼 스트레스 받을 땐 골프로 풀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잘 하고 싶어서 계속 연습을 했고, 연습을 하기 위해선 그만한 체력이 필요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1999년) 골프를 처음 시작했는데 입문 4~5개월 만에 지역 대회에 나가 우승했다. 6년 후인 2005년에는 프로 무대도 제패했다. 원래 운동을 잘 했나.>>>

“운동을 잘한 것보다는 몸에 대한 반응을 빨리빨리 알아챘다. 근데 그것도 일단 체력이 좋았기에 가능했다. 프로 무대 우승이 골프 입문 6년 만이었는데 그 6년의 연습은 남들 10년 못지않았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고된 연습을 한 건가.>>>

“보통 하루 연습시간이 13시간 정도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퍼팅 연습을 했다. 퍼팅 매트에서 볼 200개를 굴리지 않으면 아빠가 잠을 재우지 않아서 맨날 새벽 1시에 자고 그랬다. 그런 후 5시에 일어났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잠을 자지 않았다. 승부 근성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었고, 해야 할 몫을 해내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는 키가 컸던 걸로 알고 있는데.>>>

“골프 시작하고 성장이 딱 멈춰버렸다. 지금은 제일 작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반에서 큰 편(155cm)이었다. 또한 장타자였다.”

체중은 예전에 비해 빠진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한 20년간 체중 변화는 크지 않았다. 5kg 이상 왔다갔다 해본 적이 없다. 최근 12년 동안은 체중이 변하지 않았다. 젖살이 빠지고 운동을 하다 보니까 몸 형태가 조금씩 바뀌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 체중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도 하는데 사실 볼을 안 치면 살이 빠진다. 시합 때는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양이 훨씬 많다. 아침에는 진짜 오랫동안 앉아서 밥을 많이 먹고 나간다. ‘이게 내 하루의 힘이다’라고 생각하면 안 들어가도 밀어 넣어야 한다. 한국 선수들이 왜 골프에 강하냐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잘 먹어서 그런 것도 있다. 어디 가서든 잘 먹는다. 일본 애들이랑 한국 애들이랑 같이 훈련을 할 때 뷔페에서 음식 담는 걸 보면 일본 애들은 닭다리 하나, 밥 조금, 수박 하나 이걸로 끝난다. 근데 한국 선수들은 접시가 안 보일 정도로 담는다.”

음식 관리에도 철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니어 때부터 몸에 대한 반응을 빨리빨리 캐치하려고 계속 메모를 했다. 뭘 먹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왔고, 뭘 했을 때 내 몸이 어떻게 느꼈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 지금의 몸 관리가 가능했다. 나를 알지 못하는데 관리를 어떻게 하나. 일단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분석이다. 요즘 후배들한테 가장 많이 해주는 얘기도 그거다.”

어떤 음식을 피하나.>>>

“대회 때는 밀가루랑 유제품이랑 계란과 날것은 다 안 먹는다.”

그런 건 언제 먹나. 힘들지 않나.>>>

“일요일 저녁과 월요일에만 조금 먹는데 늘 안 먹다 보니 그것조차도 많이 못 먹는다. 나는 입을 위해서 먹지 않고 몸을 위해 먹는다고 생각한다. 입으로 먹는 시간은 30분 또는 1시간이지만 뱃속에서 소화시키는 건 6~8시간 동안이다. 내 몸이 먹는다고 생각하면 자제를 하는 게 어렵지 않다. 참는다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음식도 몸을 좋게 하려고 먹는 거다. 예를 들어 내가 슈퍼카라고 하면 그에 맞는 연료를 넣어줘야 한다. 그냥 경유를 넣는다면 아무리 좋은 차라도 고장이 난다. 어떤 걸 참는다가 아니가 내 몸을 잘 쓸 수 있게 잘 관리를 하는 거다.”

후배들이 스트레스 해소에 대해서도 궁금해 할 것 같다.>>>

“난 이렇게 얘기를 한다. 내 몸이 건강하게 운동하고 있을 때 제일 마음이 편하다고. 왜냐하면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안고 가는 거고 그건 반가운 거다. 목표가 뚜렷하고 우승을 하고 싶고 잘하고 싶으니까 부담감이 있는 거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시합을 나가면 나 역시 불안하다. 그래서 그런 불안감을 떨쳐낼 수 있도록 잘 준비를 하는 게 최선의 노력이고 과정이다.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안 받기 위해 계속 노력했고 잘 치고 싶었다.”

신지애 어머니가 남긴 육아일기 중 '이런 자녀' 기도문. 신지애는 힘들 때마다 어머니의 기도문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사진 제공=신지애

어머니가 2003년에 돌아가셨다. 지난해 딱 20주년이 됐더라.>>>

“맞다. 그때 산소에도 다녀왔다.”

어머니가 쓰신 육아일기 중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이 있더라. 그 기도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데 어머니가 본인의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나.>>>

“굉장히 크다. 어머니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지금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 가족 자체가 나한테는 가장 큰 의미다. 프로 데뷔를 빨리 한 것도 가족을 위해서였다. 내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을 하는 것도 엄마 말씀의 영향이다. 엄마가 그랬다. 기도를 할 때 결과를 바라지 말라고. 그러니까 기도를 할 때 ‘우승하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담대하게 집중할 수 있게, 저를 지켜봐주세요’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하라고 얘기를 해주셨다. 그러다 보면 결과는 따라오는 거라고 했다. 그 말씀을 자주 해주신 게 돌아가시기 전이었다.”

(이런 자녀. 배움에 철저하고 / 의무에 충실하며 / 과거를 돌아보고 / 미래가 뚜렷하며 / 현실에 강하면서 / 고난에 도전하고 / 정의에 용감하며 / 승리에 겸손하고 / 패자엔 관용하며 / 헛되지 않는 삶을 / 살아가게 하소서. 신지애 어머니가 쓴 육아일기 중에서.)

정확하게 언제인가.>>>

“그때가 국가대표 상비군에 막 발탁됐을 때다. 아무래도 상비군에서 국가대표로 가기 위해서는 시합에서 좋은 결과를 내야 되는데, 과정에 집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엄마에게도 보였나 보더라. 그 말씀 덕분에 지금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집중한다.”

어머니가 남긴 육아일기를 보면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게 있었나 보다.>>>

“당연하다. 지금도 동생들 것까지 육아일기를 다 가지고 있다. 엄마가 생전에 그 기록을 남겨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다. 지금은 엄마와 함께했던 기간보다 지나온 기간이 훨씬 길다. 돌아가실 때 엄마 나이가 43세였다. 우리 엄마 너무 예쁠 때 가셨구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또한 나를 27세 때 낳으셨다. 참 어렸을 때 우리를 키우면서 이런 생각을 해 주셨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아빠는 우리에게 엄마 같은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엄마가 그런 길잡이 역할을 지금까지도 잘 해주시고 계신 것 같다. 동생들이 워낙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셔서 아빠께서 재혼을 하셨는데 지금의 엄마께서도 너무 현명하시고 동생들도 잘 챙겨주셨다. 클 수 있었던 빈자리를 더 크게 채워주시는 등 가족에 대한 고민 없이 운동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드린다.”

신지애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가족이다. 사진 제공=신지애

어린 시절 가장의 역할을 잘 한 덕분에 동생들도 잘 성장했다. 이제는 본인만을 위한 골프를 할 것 같은데 어떤가.>>>

“나만을 위한 골프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근데 이제는 없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예전에는 주변에서 내 목표를 세워줬다. ‘저게 내 목표야?’라는 생각도 들었고 따라가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다. 근데 그 목표들을 프로가 된 지 4년 후인 2010년 미국에 가자마자 다 이뤘다. 그 후 스스로 세울 목표도, 방향도 없었다. 그때도 주변에서 방향을 잡아줬지만 괴리감이 컸다. 이게 과연 내 목표인가, 이 길이 맞나, 이런 고민을 했다. 그때 내 골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요 몇 년간 ‘나를 위한 골프를 하면 원래 안 되는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어쨌든 나를 보고 따라와 준 후배도 있고, 선배들도 있고, 응원을 해주는 팬들도 있다. 모두를 위한 골프가 나를 위한 거더라. 모두에게 그 감사한 마음을 베풀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게 그게 맞는 방향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위한 플레이? 글쎄, 지금이 진짜 많은 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때인 것 같아서 그것에 감사하다. 나를 바라봐주시는 분들에 대한 책임감 등을 이제야 조금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편해졌다. 내가 성장을 하면서 응원을 받은 만큼 희망을 되돌려줄 때 보람을 느낀다. 그게 나를 위한 골프다. 또한 내적이 아니라 외적으로 함께 어울려야 된다는 걸 이제 조금 안 것 같다.”

현재 일본 투어 통산 28승이다. 영구시드(통산 30승) 목표도 있을 텐데.>>>

“일본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응원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근데 내가 앞으로 2승만 더 할까? 아니다. 더 할 거다. 그 2승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우승하고 싶다. 그 중 2승이 빨리 오면 아무래도 성취감은 어마어마할 것 같다. 지금 영구시드를 가진 선수가 총 6명이 있는데 일본 선수가 5명이고, 대만 선수가 1명이다. 한국 선수는 아직 없다. 그런 영광이 내게 주어진다면 엄청난 보람을 느낄 것 같다.”

KLPGA 명예의 전당 트로피(가운데)는 신지애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트로피 중 하나다.

지금까지 모은 우승 트로피는 65개나 되고, 상금왕이나 대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그 중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건 뭔가.>>>

“2개를 꼽을 수 있다. 미국 신인상과 한국에서 명예의 전당에 입회할 때 받았던 트로피다. 신인상은 신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이어서 좋고, 명예의 전당 트로피는 내가 이런 큰 상을 받아도 되나 할 정도로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지금까지의 샷 중 멀리건을 하나 받을 수 있다면.>>>

“안 받을 거다. 다시 돌아가도 그 당시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그 샷을 당연히 또 선택할 거다. 대신 그런 샷을 마음에 잘 담고 있다. 그래야 발전을 위해 연습하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수가 나오더라도 그 다음 샷으로 만회를 하면 되니까 멀리건은 괜찮다. 대신 퍼팅 ‘오케이’(컨시드)는 가끔 받고 싶다. 솔직히 선수들도 짧은 거리의 내리막 슬라이스나 훅 브레이크를 별로 안 좋아한다.”

시합이 아니라 그냥 놀러 간다면 어느 코스로 가고 싶나.>>>

“주니어 시절 시합했던 코스에서 그 당시 친구들과 치고 싶다. V157 친구들과 중고등학교 때 쳤던 코스에 다시 가볼까 얘기한 적이 있다. 충주 임페리얼레이크나 제주 오라, 충남 도고나 대전 유성 등이다. 훨씬 경험이 많이 쌓인 지금 플레이를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V157’은 신지애, 박인비, 이보미, 최나연, 김하늘, 이정은, 유소연 등 7명의 모임이다. 유소연만 1990년생 말띠고 나머지 6명은 1988년생 용띠다. 157은 2018년 결성 당시 7명이 거둔 우승 횟수다.)

V157 멤버. 이정은(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보미, 유소연, 박인비, 최나연, 신지애, 김하늘.

예전에는 은퇴를 1~2년 앞두고 유럽 투어를 뛰면서 유럽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예전에는 역사나 아트 등에 관심이 있다 보니까 그런 꿈을 잠시 가지긴 했는데 나가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까 지금은 국내 쪽으로 더 눈이 돌아오더라. 막냇동생이 취미로 사진촬영을 하는데 우리나라 고궁 사진을 찍는다. 동생이랑 궁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다보니 우리나라에 예쁜 곳이 참 많고 우리나라 역사나 문화재를 먼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는 국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여동생은 서울대에서 나노 물리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남동생 역시 서울대에서 양자역학 석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동생들 자랑을 좀 한다면.>>>

“둘 다 나보다 자립심이 크다. 어릴 때 나는 늘 부모님께서 케어를 해주셨지만 동생들은 스스로 관리를 하면서 스스로 진로를 선택했다. 동생들이 너무 멋있다. 동생들이 공부를 잘 한 것도 있지만 나한테 늘 고맙다고 얘기를 해줬다는 게 나한테는 동생들 자랑이다. 여동생은 취직하고 나더니 카드도 딱 반납하더라. 언니 도움으로 여기까지 한 거 너무 고맙다면서 한동안 월급 받으면 꽤 큰 금액을 꼬박꼬박 보냈다. 그 돈은 못 쓰고 잘 간직하고 있다. 언니, 누나 덕분에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고 얘기하는 동생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이다.”

한때 드로잉을 배우기도 하고 음식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지금은 드로잉을 할 시간에 차라리 골프 연습을 더 하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음식도 딱 먹을 만큼만 한다. 뭔가 시간을 내서 할 에너지가 있으면 아직은 골프에 힘을 더 쓰고 싶다. 이제 현역으로서 몇 년이나 더 남았을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1~2년은 아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은 안 남은 것 같다.”

마지막까지 모든 걸 쏟아내겠다는 각오인가.>>>

“늘 후회는 없었지만 마무리까지 후회 없이 하고 싶다. 난 인생을 자주 산에 비유한다. 골프라는 산을 오를 때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아스팔트 도로가 생겨서 금세 꼭대기까지 편안하게 오를 수 있었다. 이제 반대쪽으로 내려갈 때다. 처음 몇 걸음은 모래산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미끄러지기도 했는데 점점 내딛다 보니 그것도 땅이었고 지금은 정상에서 잘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은퇴할 때까지는 온전히 잘 내려와야 그 다음 산을 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친구들은 이제 하나 둘 가정을 꾸렸다. 결혼에 대한 생각은.>>>

“누가 아까워서 보낼까? 하하. 각자의 역할이 그때그때 있다.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다. 좋은 사람 만나고 좋은 때가 오면 할 거다. 나도 혼자 살지는 않을 거다. 사람은 혼자 산다고 절대 생각을 안 한다. 나는 늘 누군가, 그러니까 늘 나를 지지해 주는 가족도 있었고 팬들도 있었다. 앞으로도 혼자는 아닐 거다.”

인스타그램에 까지고 굳은살 박힌 손 사진을 올려놨더라.>>>

“어릴 때는 ‘손 좀 보여주세요’ 이러면 그래도 여자 손인데 갈라져 있고 피나고 이러니까 보여주기 좀 창피했다. 근데 그 거친 손 덕분에 많은 분들에게 받은 걸 되돌려 줄 수 있는 삶이 됐다. 내 손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도 생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손이 됐으니 자랑스럽다.”

6년 전인 2018년 시즌을 앞두고 찍은 신지애의 손. 사진 제공=신지애

지금 손은 어떤가.>>>

“이 정도면 많이 고와진 거다. 예전엔 진짜 심했다. 맨날 사포랑 칼로 갈아 가면서 골프 했다. 그때는 무조건 공만 쳤지만 지금은 다른 식으로도 훈련을 많이 한다. 채를 놓으면 손이 금방 부드러워진다. 축구선수나 발레리나 분들도 아실 거다. 손은 딱 ‘노력의 표식’이다. 그래서 손이 좀 부드러워질 땐 오히려 그 손이 창피할 때가 있다. 아직은 현역이니까 내 손은 부드러워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부천사, 파이널 퀸, 초크라인 등 여러 별명이 있었다.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별명은 뭐라 생각하나.>>>

“그냥 ‘골프인 신지애’ 또는 ‘프로 신지애’였으면 한다. 프로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전히 고민을 하고 있다. 단순히 골프만 잘 친다 해서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는 영향력만큼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프로로서 가져야 할 지식과 마음가짐도 있어야 한다. 과연 프로란 무엇인가라고 늘 생각을 한다. ‘이 선수야말로 진짜 프로 골퍼다’ 또는 그냥 프로라고 했을 때 잘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다. 골프를 진짜 좋아하니까 ‘골프인 신지애!’, 이것도 좋다.”

PROFILE

출생: 1988년 | KLPGA 투어 데뷔: 2006년 | 소속: 스리본드

주요 경력: KLPGA 투어 21승(아마추어 1승 포함), LPGA 투어 11승(메이저 2승 포함), JLPGA 투어(28승), 기타(5승)

2023년 JLPGA 투어 2승

2018년 JLPGA 투어 한 시즌 메이저 3승, 최우수 선수

2017년 JLPGA 투어 평균타수 1위

2010년 한국 선수 첫 세계 랭킹 1위

2009년 LPGA 투어 데뷔 첫해 상금왕, 신인상

2008년 브리티시 여자오픈서 LPGA 투어 첫 우승, 요코하마 타이어 PRGR 레이디스컵서 JLPGA 투어 첫 우승

2006~2008년 KLPGA 대상, 상금왕, 다승왕, 평균타수 1위 3년 연속 수상

2005년 KLPGA 투어 SK엔크린 인비테이셔널서 아마추어 신분 우승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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